시장에서 사라졌던 ‘하프 카메라’가 ‘세로 사진’의 인기에 힘입어 돌아왔다. 아날로그 필름의 감성에 더해 해상도를 유지하면서 세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강점에 젊은 층의 인기를 얻고 있다.
신제품도 나온다. 22일 후지필름이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 ‘X 하프(Half)’를 발표했다. 대부분의 디지털 카메라는 3:2, 4:3, 16:9 등 가로로 긴 비율로 촬영하는데, X 하프는 세로로 긴 3:4 화면비를 채택했다.
후지필름은 이 제품을 ‘하프 카메라’라고 소개했다. ‘버티컬(세로)’ 대신 ‘하프(절반)’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X 하프가 필름 카메라 시대에 등장했던 ‘하프 프레임 카메라’의 개념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하프 프레임 카메라란?
필름 카메라가 유행하던 당시 사진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였다. 필름 자체의 가격도 비싸거니와, 사진을 현상·인화하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부 카메라 제조사는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필름 한 매로 사진을 두 번 찍는 하프 프레임 카메라(하프 카메라)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올림푸스 펜과 EE 시리즈, 캐논 데미 시리즈, 야시카 하프 17, 후지필름 후지카 하프 등이 있다.
이후 필름 가격이 하락하고 현상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진 촬영 비용 부담이 줄었다. 점점 필름을 절약할 필요성이 줄어듦에 따라 하프 카메라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최근 등장한 하프 카메라 2종, 차이는?

그런데 최근 들어 하프 카메라가 다시 등장했다. 펜탁스는 지난해 6월 35mm 필름 하프 프레임 포맷을 채택한 하프 카메라 ‘펜탁스 17’을 발표했다.
수동 와인딩 방식을 채택하고 목측식 존 포커스 시스템을 적용하는 등 과거 필름 카메라의 특징을 그대로 담았다. 필름 카메라를 써본 경험이 있는 소비자라면 “그땐 그랬지”라며 향수를 느낄 만하다.
펜탁스 17 출시 당시에 국내 카메라 시장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필름 카메라와 콤팩트 카메라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펜탁스 17은 주문을 일시 중단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후지필름에서 발표한 X 하프는 디지털 카메라다. 필름 대신 1인치 이미지 센서를 내장했다.
디지털 카메라지만 필름 카메라 시절 느꼈던 사용감을 되새길 수 있다. 필름 사진 특유의 느낌을 재현한 ▲빛샘 ▲할레이션 ▲빛바랜 필름 등 필터 3종을 추가했으며, 필름 사진처럼 이미지 오른쪽 아래 날짜를 각인하는 ‘스탬프’ 기능을 적용했다.

‘필름 카메라 모드’를 활성화하면 후면 모니터가 꺼지고 광학 뷰파인더를 보면서 촬영할 수 있다. 사진을 한 장 찍은 뒤에는 필름 카메라처럼 상단 우측에 위치한 레버를 움직여야 다음 촬영이 가능하다. 또한 사진을 정해진 매수만큼 찍고 나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필름 한 롤을 전부 사용한 뒤 현상하던 필름 카메라의 감성을 옮겨온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하프 카메라의 의미
필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지금 디지털 포맷으로 하프 카메라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들어 구형 제품을 찾는 레트로 열풍이 세계적으로 불고 있으며, 하프 카메라에 유리한 형태의 콘텐츠가 유행하는 점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유튜브 쇼츠,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 세로로 긴 비율의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사진 피드에 나타나는 미리 보기 비율도 정방형에서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바뀌는 등 세로 구도 콘텐츠의 중요성이 차츰 늘고 있다.
기존 카메라를 사용해 세로로 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려면 손목을 틀어 카메라를 세워야 한다. 촬영자의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일부 제조사는 촬영 영역을 줄여 세로로 긴 사진·영상을 찍는 설정을 지원하지만, 이 경우 해상도가 줄어든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하프 카메라는 별다른 설정이나 번거로운 회전 없이 있는 그대로 들고 찍는 것만으로 세로로 긴 사진이나 영상을 담을 수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병찬 기자>bqudcks@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