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단순한 물체 아닌 생명·우주·존재의 상징”
판스페르미아 이론에 확신 들어
전시장 작업에 ‘순환론적 세계관’
단순 접근 넘어 다층적 개념 투영
돌·석탄 등 사용 물감도 직접 제작
인간을 미미한 존재·소우주 병치
억겁의 시간성 투영해 순환 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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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원 작가 작업의 요체는 돌이다. 거대한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돌의 조각들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고, 돌에 내재된 생명성이나 시간성 등의 개념들을 형상화한다. 돌이 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계기는 판스페르미아 이론 (Panspermia Hypothesis)을 접하면서다. TV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외계의 생명체나 유기 화합물이 혜성, 운석 또는 먼지 등의 형태로 지구에 도달하여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판스페르미아 이론을 만나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가 다큐멘터리 방송을 시청하며 확신한 것은 돌의 생명 기원설이다. 물 등의 유기화합물을 머금고 우주를 떠돌던 돌이 지구에 떨어지면서 지구에서 생명의 기초가 되는 분자들이 형성됐다는 것이 확신의 근거였다. 이후 그는 작업을 통해 돌을 생명의 씨앗으로 형상화해 갔다. 판스페르미아 이론을 접하기 이전에도 그에게 돌은 친근한 물성이었다.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시절, 돌을 던지고, 쌓고, 굴리며 놀았던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그가 확신하는 돌의 생명 기원설의 역사는 이렇다. 약 137억년 전 대폭발로 우주가 형성됐고, 약 46억년 전 태양계가 탄생했다. 태양계 중 하나인 지구는 약 45억년 전에 형성됐다. 그는 지구에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형성된 근원으로 우주에서 떨어진 물을 머금은 돌이라고 믿는다. “판스페르미아 이론을 접하면서 돌이 생명체의 기원이라는 보다 철학적인 개념으로 접근하게 됐습니다.”
조동원 개인전이 갤러리 오모크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시에는 돌 조각을 평면 위의 오브제로 활용하거나 설치, 그리고 사진 작업으로 표현한 작품 50여점을 소개하고 있다. 돌은 그에게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그 보다는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사회현상, 그리고 순환론적 세계관 등 우주와 인간을 설명하는 매개로 돌을 위치시킨다.
그가 “우주에는 지구가 있고, 지구에는 생명이 있고, 물은 생명의 뿌리”라고 했다. “우주에서 지구 어딘가로 돌이 날아왔고, 그 안에는 물의 뿌리가 있었고, 물은 생명의 시작이었습니다. 돌에 생명의 씨앗이 있었죠. 저는 그런 위대함과 신비함으로 돌을 단순한 물체로만 볼 수 없었습니다. 돌을 생명의 상징이자, 우주의 상징이자, 존재의 상징으로 인식했죠.”
돌 이전에 먼저 빅뱅이 있었다. 우주와 생명의 탄생이 빅뱅, 즉 대폭발로 촉발했다. 빅뱅 이후, 우주는 폭발하면서 떨어져 나온 물을 머금은 작은 조각들이 뭉치며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이뤘고, 우주의 조각들은 점차 소우주들을 생성하며 각기 다른 형태로 분화해 갔다. 그 속에서 생명체들이 태어났고, 생명체들은 죽음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흙이 압축되어 단단한 돌로 변환했다. ‘순환’이었다.
전시장 바닥에 구현한 설치 작업에 작가의 순환론적 세계관이 짙게 묻어난다. 그가 신었던 신발 표면에 돌조각을 붙이고, 신발 아래 표면에는 날카로운 못을 빼곡하게 박아놓은 작품이다. 못과 돌조각으로 구현한 각각의 신발들은 원의 형태로 전시장 바닥에 설치됐다. 그가 “밑창에 박은 못은 새싹에 대한 은유”라고 했다. 존재에서 흙으로, 다시 또 다른 존재로 순환해가는 과정을 신발과 돌조각, 그리고 못으로 표현한 것이다.
작업 초기에는 돌을 회화적으로만 묘사했다.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터치로 돌과 돌, 존재와 존재의 관계, 그리고 그들 간의 조화를 표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돌에 다양한 개념들을 투영하고 싶은 열망이 올라왔고,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됐다. 그는 단순한 회화적 접근을 넘어, 인간이나 사회적인 관계 등의 보다 심층적이고 다층적인 개념들을 돌에 이입하고 싶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직감했고, 입체나 반입체로의 작업 방식의 전환을 감행했다.
이후 그의 작업은 돌을 오브제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돌의 시간성, 돌에 내포된 존재의 본질적인 특성들은 더욱 직관적이고 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예를 석탄 가루를 바탕에 바르고,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돌조각을 표면에 붙이는 식이었다. 비록 돌의 파편인 조각의 규모는 미미하지만 생명체의 씨앗이라는 강렬한 메시지와 개체성, 조화에 대한 염원 등의 다양한 개념들은 입체적인 돌과 함께 더욱 깊이를 더해갔다.
“돌의 외적인 형상보다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성 등 좀 더 내적인 서사에 더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경우 평면 회화로는 한계가 있었고, 돌의 조각을 붙이는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보다 조각을 붙여서 나열하는 방식에서 작가 스스로 더욱 큰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최대한 자연적인 서정을 획득하기 위해 물감도 직접 제작한다. 석탄, 조개껍질, 돌 같은 거친 자연물들을 자르고, 부수고, 미세하게 갈아 표면에 바른다. 그리고 수집한 수십에서 수백 개의 돌조각은 색을 칠한 바탕 위에 배열한다. 그것은 인간일 수도 있고, 자연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우주일 수도 있다. 석탄, 돌 등의 자연물은 흑색이다. 흑색은 그가 선호하는 색이기도 하다. “연탄 같은 검정 색은 광석에서 나온 색입니다. 제가 그런 색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돌의 조각들은 거대한 돌의 축소판으로 크기는 제각각이고, 생김새 또한 각양각색이다. 그는 각기 다른 돌들을 규칙에 따라 배열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율배반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다. 하나의 유일성을 가진 개체의 강렬한 존재감과 우주 속의 개체로서의 미미한 존재감이 동시에 병치돼 있다.
그가 “우주에서 보면 인간의 존재는 모래알처럼 미미하다”며 “우주 속에서 존재감조차 없는 미미한 인간을 표현했다”며 작은 규모에 얽힌 사연부터 소개했다. “‘우주에서 보면 먼지 같은 존재인데 복작대며 살 이유가 뭐가 있겠나’ 하는 이야기를 규칙적으로 배열해 놓은 돌을 통해 묘사했습니다.”
또한 그는 “인간이 다 비슷할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하나의 소우주 같은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며 인간 개체들이 가진 고유성을 언급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존재들이 있고, 그들 모두 고유의 사연들을 품고 하나의 소우주 같은 존재감으로 살아갑니다.”
돌조각의 배열 방식은 수직이나 수평, 원형 등의 형식을 띤다. 이런 공식 속에서 통일성이 부여된다. 모든 존재는 각각의 개체성 속에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런 작동원리 속에서 “조화와 균형은 필수”라는 의식이 수직이나 수평, 원형 등의 질서 속에 깔려있다. 여기에 세모, 네모 등의 기하학적 도형들을 추가하기도 한다. “화폭 속 기하학적 도형들은 존재를 떠받치는 하늘이나 땅, 인간이 만든 문명 등을 의미합니다.”
그의 작업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개념은 ‘시간성’이다. 돌조각에는 빅뱅에서부터 현재와 미래로 연결되는 순환이라는 억겁의 시간성이 투영돼 있다. 시간성과 순환은 그에겐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물린다. “돌이 저를 잉태했지만 저 또한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서 돌을 잉태하게 됩니다. 순환이죠. 이 과정에서 시간성은 필연처럼 함께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존재의 근원, 존재와 존재와의 관계,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맞물리는 순환의 관계가 규칙적인 배열에 의해 의미를 더해가는 조동원 작가의 갤러리 오모크 개인전은 2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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