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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가 냉골 그 자체다. 출퇴근길에 고개만 들면 문 닫은 가게가 듬성듬성 눈에 들어온다. 상가 곳곳에 ‘임대’ 간판도 확연히 늘었다. 지난해 소매판매액지수는 전년보다 2.2% 감소했다. 3년 연속 마이너스, 역대 처음 있는 일이다. 최근 3년간 물가상승률을 모두 더하면 11.4%였다. 실질임금 증가율은 마이너스다. 지갑 열기가 겁난다. 그나마 수출로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발(發) ‘관세 비상등’이 커졌으니 소비는 더 어려워질 게 뻔하다.
골목상권 온기 돌도록 지원하되
‘1000원 가치’ 보여준 다이소처럼
자생력 갖게 하는 게 핵심 돼야
이 와중에, 생활용품 소매점 다이소는 잘나간다. 집이나 사무실 근처에, 워낙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고 있어 “다이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칭찬을 듣는다. “화장품부터 와인 잔, 비상약까지 거의 모든 생필품을 해결한다”는 팬도 상당하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이소는 올리브영·무신사와 함께 반드시 찾아야 할 ‘올다무 쇼핑 성지’로 꼽힌다. 리들샷(바늘 모양 물질을 함유해 피부 재생 효과를 높인 화장품)이나 물광팩,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 같이 이름도 생소한 품절템이 한몫을 했다.
요샌 대형마트에 이어 프리미엄 아울렛에서도 숍인숍 형태로 모셔가는 ‘귀한 몸’이 됐다. 최근 10년 새 다이소 매장은 500개 이상 늘었다. 매출은 2023년 3조원, 지난해 4조원을 찍었다. 올해는 5조원에 도전장을 냈다.
모두 어렵다고 하는데 다이소가 이렇게 고공 행진하는 이유는 뭘까. 기본적으로 사업 셈법이 다르다. 이 회사 박정부 회장은 직원들에게 가격을 먼저 정하고 상품을 구현하라고 강조한다(『천원을 경영하라』). 지나가던 행인에게 1000원짜리 지폐와 다이소 상품을 중 어느 쪽을 갖고 싶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상품을 고르면 합격이다. 가격이 정해져 있으니 품질을 확보하고 마진을 내는 데 있어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스테인리스를 구하기 위해 인도로, 접시 공장이 밀집한 브라질로 날아간다. 이런 식으로 매달 600개의 신제품을 쏟아낸다. 그는 또 “매장은 매일 갈고 닦아라”고 주문한다. “소매업은 싫증과의 싸움이다. 매장은 늘 생동감과 활력이 넘쳐야 한다. 같은 상품이라도 매일 조금씩 진열을 바꿔줘야 한다.”(같은 책)
다이소 얘기를 들여다본 건 자영업 생존 내지 자생력 확보에 대한 힌트를 찾기 위해서다. 일단 사상 초유의 내수 절벽 상황이니 긴급 대책이 필요하다. 골목상권에 다시 온기가 돌도록 해야 한다. 사정이 긴박한 만큼 타이밍이 관건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에서 내수 진작은 가장 앞 순위가 돼야 할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추경은 빠를수록 좋고, 전 국민 지원보다는 자영업자 타깃이 맞다”고 했다.
나아가 자영업 공급 과잉을 해소하고, 스스로 버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게 핵심이다. 기초 체력을 키우는 처방전이 더 중요한 이유다. 금융 지원이나 전기요금 보조, 택배비 지원 같은 일회성 대책은 잠시 숨통만 틔워줄 뿐이다. 빚을 탕감해주면 되레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도 있다.
최근 20년 새 꾸준히 하락했으나 전체 취업자 중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여전히 20% 수준이다. 미국(6%)이나 일본(9%), 캐나다(7%)의 두세 배 수준이다. 50대 이후 퇴사하면 떠밀리듯 생계형 창업에 나서는 사례가 많은 탓이다. 더욱이 올해부터 2차 베이비붐 세대(1964~74년생) 950만여 명이 은퇴 연령대에 들어선다. 전 국민의 18%가 ‘자영업 예비군’인 셈이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자영업의 길로 가는 건 실패 가능성이 크다. 사업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보다 큰 절박함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기술, 차별화 노하우도 필요하다. 여기서 자영업자 정책엔 디지털 전환이나 온라인플랫폼 연계 같은 경쟁력 제고, 폐업·재교육·구직 등 재기 지원이 비중 있게 포함돼야 할 것이다.
다시 다이소 얘기. 2021년 초 아이돌 문화를 좋아하는 매장 담당자가 OPP 포장지와 바인더 등으로 매대를 꾸미다가 아이돌 포토카드와 서로 규격이 비슷한 걸 발견했다. 이후 틱톡·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유행하는 포토카드를 유심히 살폈다. 틈날 때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 혜화동 텐바이텐, 연남동 소품 편집숍 등을 다니면서 유행을 파악했다. 이듬해 봄 다이소는 탑로더(플라스틱 케이스), 슬리브(보관용 OPP 비닐 ), 포토카드 등으로 구성된 폴꾸 용품을 내놓았다. 10대들에게 선풍적 인기인 폴꾸가 탄생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린 것. 지금도 매년 30~50%씩 매출이 늘고 있다. 소비자에게 ‘돈의 가치’를 전달하고, 더 치열하게 차별화 요소를 고민하는 것. 자영업 자생력을 키우는 첫 번째 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