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럽·한국 데이터 동맹, 글로벌 표준 전쟁의 변곡점

2025-12-01

데이터 스페이스는 기존 중앙집중식 데이터 공유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업 비밀을 보호하면서도 안전한 데이터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 개별 기업이 데이터 주권을 유지한 채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유럽연합(EU)이 가장 먼저 제도화했다. GAIA-X 프레임워크 하에서 산업별 데이터 스페이스를 구축했고, 자동차 산업을 위해 글로벌 표준(Catena-X)까지 확보했다. 유럽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이를 주도하면서 이미 144개 기업이 참여하는 거대 생태계를 형성했다.

EU는 법적 강제력까지 부여했다. 내년부터 배터리 여권 규제를 시행하고, 디지털 제품 여권(DPP) 규제를 확대하면서 모든 공급망 기업에 데이터 스페이스 참여를 실질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국내 상황은 다르다. 산업통상부가 2021년부터 추진 중인 자동차데이터플랫폼 사업이 있고, 개별 기업이 부분적으로 데이터 공유를 시도하고 있지만 통합된 국가 전략이 부재하다. 한국형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을 위한 기술표준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첫째, 글로벌 규제 대응 역량의 격차다. 국내 차 부품업체는 다단계 공급망 구조 속에서 유럽 완성차 업체의 탄소 데이터 요청에 직면했다.

둘째, 해외 표준 종속성 심화다. 기술표준을 확정하지 않으면 해외 플랫폼에 수용되는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의 데이터 주권은 본질적으로 침해된다.

셋째, 디지털 솔루션 생태계 구축 기회 상실이다.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 과정에서 요구되는 DPP 생성, 탄소배출 산정, 데이터 무결성 검증 등은 새로운 산업이다. EU는 이러한 부가가치 사업이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는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국토교통데이터진흥협회(KALDA)가 EU 모빌리티 데이터 스페이스, 국내 기업 와이메틱스와 체결한 양해각서(MOU)는 글로벌 데이터 산업생태계 전쟁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선제적 행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배경에 명확한 전략적 선택이 있었다. 국토교통 분야 모빌리티 데이터 생태계 개발에서 유럽 선진 기술과 경험을 도입하고, 동시에 국내 기업과의 협력으로 한국형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앙 연락 지점 설립'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을 모빌리티 데이터 스페이스의 아시아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선언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국내에서는 아직도 '자동차는 기계산업, 데이터는 정보기술(IT)산업'이라는 이분법이 존재한다. 산업 간 칸막이가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을 가로막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데이터 공유 불신도 크다.

우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데이터 스페이스를 국가 핵심 인프라로 지정하고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관련 부처가 수평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글로벌 기술표준 확정을 서둘러야 한다. 산학연 컨소시엄을 구성해 내년 상반기 내에 한국형 모빌리티 데이터 스페이스 기술표준을 확정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

셋째, 중소기업의 데이터 주권 보호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데이터 공유가 강제되어서는 안 되며, 데이터 생성자의 영업비밀이 보호되어야 한다.

넷째, 아세안 및 인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KALDA의 협약이 의미 있으려면 한국이 단순한 참여국이 아니라 필수 경유지가 되어야 한다.

다섯째, 부가가치 산업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 디지털 제품 여권 생성, 탄소배출 산정 검증, 공급망 이력 추적, 인공지능(AI) 기반 공급망 최적화 등 고부가가치 솔루션 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글로벌 데이터 생태계 재편이 이미 시작됐다. 한국이 늦게 출발했지만, KALDA의 협약을 계기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쪽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핵심은 '선제성'이다. 규제를 선도할 수 있는 기술표준과 산업생태계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면 한국은 데이터 시대 주도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데이터는 21세기 석유다. 그 채굴지, 정제소, 운송로의 중심에 한국을 위치시키는 것이 진정한 경제 성장의 길이다. 협약이 그 첫 번째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고인석 한국국토교통데이터진흥협회장·제타럭스시스템 대표 star@zetalu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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