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득달

2024-10-20

그는 동물이다. 너무 빨라서 멸종했다. 누구도 본 사람은 없다. 털은 윤기 나고 피부는 미끄러울 것이다. 그는 야행성. 응달의 습생이랄까, 그믐달 무늬를 닮았다 하겠다. 미끄러질 달. 그는 도구를 사용했다. 조개와 전복을 돌로 내리쳐 깨부수어 자셨다. 발가락 물갈퀴로 헤엄의 고수. 수염은 스무 남은 올 정도면 좋겠다. 눈알은 툭 불거지고 주둥이는 口 모양에 이빨이 날카롭겠다. 꼬리는 짧고 족제비 몸집에 성미가 몹시 급해 화를 참지 못했다. 그럴 땐 쌍시옷 발음을 내며 발톱 부러질 때까지 땅 긁는 버릇이 있었는데, 남편이 무슨 사고를 치고 들어왔을 때 아내의 반응을 연구한 자료에서 그의 이름과 혼동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닦달! 수달과 해달은 외모는 엇비슷하지만 빠르기로 그를 당할 수 없고, 건달은 대체로 덩치가 크고 동작이 둔해서 점점 퇴화하고 있다. 총알 질주 본능을 가진 그는 그것도 하도 빨라서 대를 잇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급기야 털이 빠지고 눈이 멀었다. 굼뜬 틈 타 모피를 탐낸 인간들이 총을 들고 설치기 시작했고 제 부아를 참지 못한 그의 종족은 득달같이, 라는 부사 하나만 남기고 멸족되었다. 이조차도 아는 이가 나밖에 없어 딴은 서글퍼지기도 하는 여름밤이다.

◇손준호=경북 영천 출생. 2021년 『시산맥』 신인문학상에 당선. 시집 『어쩌자고 나는 자꾸자꾸』 『당신의 눈물도 강수량이 되겠습니까』. 2022년 대구문화재단 문학작품집 발간지원. 2023년 제2회 기후환경문학상 수상.

<해설> 시가 쫄깃한 맛이다. 그만큼 이미지의 충돌이 조밀하다는 뜻이다. 진술 또한 막힘이 없다. 상황의 반전에 있어서 유사한 동음의 어휘를 데려와서 상상의 얼레를 짜고 있다. 기교로 보아 언어적 연금술이 나름 뛰어난 그런 시인 것이다. “득달”이 라는 부사를 통해 행위의 한 장면이 어떻게 변신을 꿈꾸며, 의미의 안과 밖을 허물기도 하고 쌓기도 하는지, 사라진 인류 호모 에렉투스의 본성을 건드리는가 하면 어느새 현실 속 아내의 “닦달”에도 가 닿는 “달”의 변신은 수달 건달 해달도 그냥 놔두지 않는다. <가야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언어 감각과 세련미 능청 시적 완성도 또한 골고루 갖추었다는 평을 이 시를 통해 받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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