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가을을 대하는 자세

2024-10-20

봄은 사람을 감탄하게 하고 여름은 사람을 떠나게 하며 겨울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면, 가을은? 가을은 사람을 한사코 혼자이게 한다. 여럿이 있어도 자꾸 혼자가 된다. 혼자 우두커니 서서 이쪽저쪽으로 후드득 지는 것들을 바라보게 한다. 여름 내내 무자비하게 털을 뿜어내던 집 고양이들도 FW(fall+winter·가을~겨울) 시즌을 준비해 털옷을 갈아입었는지 몸통에 털이 빼곡하다. 고양이들은 공기가 차가워진 것을 알고 창문에서 달아나 방석에 코를 묻고 잔다. 만물이 기류가 변한 것을 느끼고 있다.

풀도, 꽃도, 사람도 자꾸 눕게 만드는 여름이 끝나자 바야흐로 가을이 도착했다. 풀도, 꽃도, 사람도 뒷목을 세우고 먼 곳을 서서 보게 하는 가을이다.

시를 두어번 연속해 읽고 나니 발치에 낙엽처럼 뒹구는 시어들이 보인다. 귀뚜라미, 가을 나비, 마른 풀들, 단풍, 이별, 강가……. 곧 서쪽으로 기울어질 쓸쓸한 것들이다. 시인은 돌연 “가을에는 이별해도 소용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떨어지는 것, 저무는 것, 기울어지는 것 천지인 지구에서 누가 누구와 헤어진들 이별이 무사히 성사될 수 없을 거란 뜻이다. 저무는 것들 속에서 저물지 못하는 마음 하나가 강가에 서서 울게 될 일이다.

쉬운 언어로 방심하게 하다 순식간에 마음을 허공에 매달아놓기, 텅 빈 존재로 글썽이게 만드는 마술은 김용택 시인의 전매특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이즈음엔 그저 아슬아슬 오는 가을을 서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쪽 강가”에서 누가 또 울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면서.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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