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화원

2025-06-11

근대 유럽 과학계에는 ‘공개 문제’라는 문화가 있었다. 권위 있는 기관이 문제를 내고 답을 심사했다.

1727년 프랑스 왕립 학술원은 “배의 돛대는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낸다. 이때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사진)는 스위스 바젤에서 공부를 막 마친 스무 살 청년이었다. 바다를 본 적조차 없었지만, 그는 호기롭게 논문을 제출했다. “내 이론은 경험적 증명이 필요 없을 만큼 확실하다.”

실험 결과의 부재 때문인지, 오일러는 아쉽게 2등 상에 그쳤다. 그랑프리는 ‘조선 공학의 아버지’ 피에르 부게(1698~1758)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순수 이론으로 해(解)를 제시한 오일러의 논문은 심사위원을 매료시켰다. 청년의 비범함을 보고 부게는 라틴어 경구를 외쳤다.

“발톱을 보아하니 사자로구나! (Ex ungue leonem!)”

예견은 적중했다. 오일러는 훗날 왕립 학술원 그랑프리를 무려 열두 번이나 수상했다. 당시 스위스는 영토와 재정 면에서 유럽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18세기 유럽에서 발표된 수학 논문의 삼분의 일 이상은 이 변방 출신의 걸작이다.

신진 연구자에게서 문득 사자의 발톱을 본다. 단 하나의 결과지만, 그 생각의 촘촘함에 경탄한다. 막다른 모든 길을 파악하고 나서야 찾아낼 수 있는 미로의 해법으로 느껴진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1885~1962)의 지적이 생각난다. “전문가란 가능한 모든 실수를 해본 사람이다.”

꽃밭은 왜 꽃밭이라 불릴까. 부피로나 무게로나 대부분 흙과 미생물일 텐데. 연구자의 삶 또한 실패와 우회의 연속이다. 풀리지 않는 수많은 방법을 시도하고 나서야, 하나의 해법이 모습을 드러낸다. 꽃도, 싹도, 결국 실패의 자양분 위에서만 움틀 수 있다.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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