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최가 저희 집에서는 보배지요

2024-12-1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아가씨는 7시 45분에야 나타났다.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8시까지 출근하지 않으면 아가씨는 벌금을 물어야 하니까. 아가씨가 먼저 제안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보스에 가서 식사하고 술이나 한 잔 하자고. 김 교수는 원래 식사만 하고 그냥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쁜 아가씨가 미소를 보이면서 유혹하니 순간적으로 마음이 변했다. 지갑의 두께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조금 뒤에 두 사람은 웨이터의 영접을 받으며 보스로 들어갔다. 아가씨는 김 교수를 룸으로 안내한 뒤 옷을 갈아입으러 대기실로 갔다. 노크 소리가 나더니 사장님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강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장사 잘 되십니까?”

“그저 그렇지요.”

“요즘 신문에서는 불경기라던데, 장사하시면서 그저 그렇다는 것은 잘 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희 가게는 아직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장님, 미스 최라고 있지요. 그 아가씨 어때요?”

“미스 최가 저희 집에서는 보배지요. 상냥하고 잘 웃고, 찾는 손님들이 많답니다”

“제가 미스 최를 만난 지 딱 1년 되는데, 이 아가씨가 애만 태우지 주지를 않네요.”

“그래요? 미스 최가 헤픈 여자는 아니지요. 그렇다고 정조대를 찬 것은 아닌데... 교수님을 좋아하는 눈치던데요.”

“제 이야기를 합디까?”

“예, 친구들에게 교수님을 만난다고 자랑하면서 교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단단히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던데요.”

“그런데, 미스 최가 돈 씀씀이는 어때요?”

“알뜰하지요. 여기 나오는 아가씨가 30명 정도 되는데, 대개 돈을 벌어서 그냥 쓰고 말아요. 옆에서 보기에도 참 딱하지요. 그런데 미스 최는 돈을 모아 얼마 전에 양재동에 집을 샀습니다. 제가 은행 융자를 알선해 주었어요. 그런 아가씨가 드물지요.”

“예, 제가 보기에도 돈을 낭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아마 동생하고 같이 살지요?”

“정신박약아인 남동생을 끔찍이 돌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업소에 나오는 아가씨치고는 신문날 일이지요.”

노크 소리가 나더니 미스 최가 들어왔다. 검은색 브라우스와 검은색 원피스가 1년 전에 보았던 바로 그 옷이다. 사장님은 “좋은 시간 되십시오” 하면서 방을 나갔다. 김 교수는 볶음밥을 시켜 먹었다. 옆에서 아가씨가 밥시중을 들었다. 아가씨는 장사 끝나고 밥을 먹는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뒤 김 교수는 6달 전 춘분날에 와서 마시다가 남겨두고 간 양주를 가져오라고 했다. 아가씨가 나갔다 오더니 가게 규칙상 첫 병은 주문하고 그 뒤에 가져올 수 있다고 알려준다. 최소한 한 병은 사서 마시라는 이야기다. 그래야 장사가 되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긍할 수 있는 영업 방침이다. 양주 한 병과 안주 하나를 시켰다. 6달 만에 만나 술을 같이 마시자, 아가씨는 기분이 좋은 듯했다. 술 먹고 기분이 좋아지면 남자나 여자나 말이 많아지는 법. 그날은 아가씨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전에 잠깐 들은 적이 있는 자기 집안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에도 맨날 속을 썩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두 달도 안 지나서 새장가를 가더란다. 얼마 전에도 노래방 사업자금으로 필요하니 1,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하더란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돈을 꾸어다가 드리기도 했지만, 몇 번 신용을 잃은 뒤에는 이제 아버지와는 돈거래를 안 하기로 했단다. 동생은 정신질환을 보이는데, 요즘도 매주 한 번씩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약을 타다 먹는다고 했다.

술집에 나오는 아가씨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나름대로 어려운 사정들이 있다. 세상 살아가기가 만만치 않은 것은 대학교수나 술집 아가씨나 목사님들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세상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다 똑같다. 목사님들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어려운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이다. 구원을 확신하는 교인은 아니지만 김 교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설교 말씀을 듣고서 위로를 받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미스 최 역시 누군가에 의지하면서 위로를 받고 싶어 할 것이다.

어느 소설 제목에서 나오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용감무쌍한 사람은 드물다. 그녀는 아마도 가끔 나간다는 절에서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할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약한 존재다.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 대부분 은 근본적으로 약한 사람들이며 누군가의 도움을 갈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인하여 부부가 함께 살고 또 종교가 필요한가 보다.

아가씨는 모처럼 보스에 나오는 다른 아가씨들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희애라는 아가씨는 예의도 밝고 제일 예쁘고 친구들에게도 잘 해주어서 참 좋은 아가씨인데 옷을 너무 자주 바꾸기 때문에 돈을 못 번다고 한다. 진실이는 미소가 매우 매력적인 아가씨인데 전문학교에 다닐 때 미스 충북에 나가기도 했단다. 진실이는 남자친구가 많은 것이 흠이다. 돈 벌어서 남자친구들하고 놀면서 다 써 버린단다. 김 교수와 손말틀(휴대폰) 통화를 했던 지난번에, 세 사람이 청평에 수상스키 타러 같이 갔단다. 수상스키는 그날 처음으로 타 보았는데, 자꾸 물에 빠져서 물을 많이 먹었단다. 올 때는 약간 후회가 되더란다. 돈을 너무 쓴 것 같아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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