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세상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미국은 연합국 전쟁물자를 도맡아 공급해 세계 최대 채권국이 되었다. 산업 경쟁력도 최고조에 달해 ‘메이드 인 USA’는 품질의 대명사였다.
역사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압도적인 국가는 자유무역을 기치로 내걸었다. 19세기 영국이 그랬고 20세기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양국 모두 무역장벽을 낮추며 수출을 확대하고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했다. 미국은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확립해 전 세계에 뿌렸다.

조지 마셜 국무장관은 유럽부흥계획(ERP)을 추진해 1948년부터 4년간 130억 달러를 서유럽에 지원하고 기술도 이전했다. 일본도 민주 국가로 개조해 경제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미국의 강력한 후원 아래 독일과 일본은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펼쳤다. 미국은 두 나라가 만든 물건을 기꺼이 사주었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통해 관세를 낮추고 무역장벽을 제거했다. 저력 있는 독일과 일본 제품이 미국 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따라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0년대 초가 되자 이들에게 밀린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보기 시작했다. 베트남전 참전으로 재정적자도 심각해졌다. 미국 내에서 보호주의의 기운이 자라났다. 슈퍼 301조 같은 통상 압력 수단을 동원해 대미 흑자국을 견제했다. 동시에 감세를 시행해 재정적자를 악화시켰다. 그 여파로 금리가 올라 경기침체의 질곡에 빠졌다. 민주당 정부는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섰지만, 그 대가는 더 큰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였다.
1980년대 이후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나선형으로 늘어나는 쌍둥이 적자 행렬이 줄곧 이어졌다. 무역적자는 산업 공동화를 의미했고 재정적자는 나라의 곳간이 비어감을 뜻했다. 경제의 펀더멘털이 무너져 내렸지만, 사람들은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했다. 달러 남발로 유동성이 증가해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그나마 물가 오름세가 2% 아래로 유지되면 저금리에 기반해 경제가 굴러갈 수 있다. 국채 금리 부담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십 년간 전 세계는 중국이 디플레이션을 수출해 주는 바람에 저물가를 만끽했다. 저물가의 대가는 눈덩이처럼 늘어난 무역수지 적자였다. 트럼프는 관세 부과로 불균형 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관세 부과는 저물가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그러면 금리가 올라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유일한 해법은 중국이 내수를 성장시켜 무역흑자를 줄이고 미국은 앞선 분야에서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경제에 만병통치약은 없다. 스몰 딜 등을 통한 점진적 해결과 인내심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