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누아르 거장 "한국영화 위기, 스타 배우 위주 시스템 개선돼야"

2024-07-07

“배우들의 과도한 출연료로 인해 투자금 대비 수익률이 점점 줄어드는 게 영화 시장 현실이죠. 창작자에게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데 제작비의 절반 정도를 배우가 가져가니, 창작자는 발전할 동력이 떨어집니다. 한국영화가 위기라고 하는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 아닐까요.”

홍콩 누아르 대부 조니 토(杜琪峰‧두기봉, 69) 감독이 한국영화 위기론에 대해 스타 배우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벗어나, 독창적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마스터클래스 참석차 내한한 그는 5일 본지 인터뷰에서 “영화는 독립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콩영화 몰락 속 세계적 거장 등극

그간 한국영화계에선 스타를 앞세운 관습적 상업영화가 주를 이룬 시기마다 ‘홍콩영화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위기론이 나왔다. 홍콩영화는 1980~90년대 전 세계 극장가를 주름잡았지만, 자기 복제적인 아류작을 양산하며 추락했다.

조니 토 감독은 홍콩영화 황금기엔 코미디‧무협‧액션 등 상업 영화를 주로 했다. 저우룬파(周潤發‧주윤발), 량차오웨이(梁朝偉‧양조위), 장샤오치(张晓祺‧주성치), 류더화(劉德華‧유덕화) 등 스타들과 흥행작을 냈지만, 90년대 초 천문학적 몸값의 스타들에게 좌지우지되는 제작 방식에 염증을 느꼈다.

96년 오랜 친구인 웨이자후이(韋家輝‧위가휘) 감독과 영화사 ‘밀키웨이 이미지’를 설립한 후 건조한 누아르 스타일을 완성하며 2000년대 들어 거장으로 떠올랐다. ‘흑사회’(2005)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익사일’(2006)과 ‘매드 디텍티브’(2007)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등에 초청됐다.

스타 영화 찍어내는 '엔지니어' 탈피…밀키웨이 설립

그는 1995년 1년간 작품활동을 멈춘 게 전환점이 됐다고 돌아봤다. "어느 순간 유명 배우를 위한 상업영화를 찍어내는 '엔지니어'로 전락했다고 느꼈다"면서 “영화사를 세우며, 남의 작품을 베끼지 않고 ‘내가 영화고, 영화가 곧 나’라는 마음으로 창작에 전념했다”고 말했다. 홍콩영화 침체기에 오히려 작품 세계를 꽃 피운 비결이다.

그는 대표작 ‘미션’(1999)을 17일 만에 찍을 만큼 빨리 촬영하고, 배우에게 당일 대본만 주는 제작 방식을 고수해왔다. 또 독창성을 강조한 엄격한 연출 방식으로 후배 감독을 배출해왔다.

'독전' '설계자' 한국 리메이크 잇따른 비결은

‘조니 토 사단’ 영화는 한국에서 자주 리메이크됐다. 그가 연출한 ‘마약전쟁’(2013)은 한국영화 ‘독전’(2018)으로 리메이크돼 520만 관객을 동원했다. 강동원 주연작 ‘설계자’는 그의 적자로 꼽히는 정 바오루이 감독의 ‘엑시던트’(2009)가 원작이다. 후배들에게 “나의 길 안에서 너의 길을 찾으라”고 늘 말한다는 그는 “젊을 땐 일본영화‧드라마를 많이 보고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올해 부천영화제가 4K 디지털 복원판으로 상영한 ‘용호방’(2004)은 그가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스패로우’(2008)와 함께 옛 홍콩에의 애정 어린 시선을 담은 작품. 일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를 오마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사스' 홍콩 위로하려 '파이팅' 외치는 일본영화 오마주"

'스가타 산시로'는 한 청년이 유도 대결을 통해 성숙해가는 내용. 구로사와 아키라의 ‘광팬’을 자처하는 조니 토 감독은 이를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한 유도 선수가 젊은 유망주의 도전장을 받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재해석했다.

리메이크 배경에 대해 그는 “‘용호방’을 촬영한 2003년 당시 전염병 ‘사스’(SARS)로 인해 홍콩이 경제난을 겪고 사회 분위기가 우울했다”면서 “늘 ‘파이팅’을 외치는 일본 영화‧드라마처럼 열정과 꿈을 갖고 미래로 달리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좋은 영화는 영원해…이창동 '밀양' '오아시스' 인간적"

영화를 통한 이런 문화 교류를 '조용한 혁명'이라 일컬은 조니 토 감독은 최근 10년간 한국영화의 발전상을 주목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과 ‘오아시스’(2002)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홍콩영화는 전성기에도 칸 영화제에 초청된 건 왕자웨이(王家衛‧왕가위) 작품 뿐이었는데, 한국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늘 뜨겁다”면서도 “특정 배우가 아니면 영화가 돈을 못 벌 거란 인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에 일흔, 10년은 더 현역 활동할 것"

대표작 ‘미션’(1999)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영화는 책과 같아서, 작가의 사후에도 재밌으면 계속 팔리고 후대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원동력을 묻자, "44년간 연출했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최고작이 아직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촬영할 땐 현실을 벗어나 영화 세계에 속한 느낌이 들어 즐겁습니다. 내년에 일흔인데 앞으로 10년 넘게 더 찍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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