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매 관리에 관심이 많은 서경제(28·가명) 씨는 500원짜리 동전만 한 패치를 팔뚝에 부착하고 다닌지 두 달쯤 됐다. 패치의 정식 명칭은 연속혈당측정기. 줄여서 ‘CGM(Continuous Glucose Monitoring)’이라고도 불린다. 손가락 끝을 바늘로 찌를 필요없이 피부 아래에 부착한 센서가 세포 간질액에서 포도당 농도를 5분 간격으로 측정해 스마트폰의 전용 앱 또는 수신기에 전송한다. 센서 유효기간은 제품마다 7일~14일 가량이다. 하루 종일 팔에 붙인 채 생활하는 데 따른 번거로움은 감수하더라도 계속해서 센서를 교체해야 하다보니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서씨가 사용 중인 제품은 2주치에 10만 원이 넘어 벌써 수십 만원을 썼다. 사실 서씨가 CGM을 착용하는 이유가 당뇨와는 무관하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소셜미디어(SNS)에서 '혈당 스파이크'를 접한 후 패치를 사용하게 됐다. 혈당 스파이크란 식후 혈당이 급격히 상승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로 엄밀히 의학용어는 아니다. 영양소를 섭취하는 순서만 바꿔도 혈당 스파이크를 줄일 수 있고 체중조절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시글을 무심코 누른 게 시작이었다. 식사할 때 섬유질이나 단백질부터 먹고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식으로 순서를 바꿨더니 식후 혈당이 뚝 떨어졌다는 인증글을 보고 흥미롭다고 여겼는데, SNS 알고리즘을 타고 유사한 정보가 쏟아졌다. 스마트폰에 연동된 '혈당 그래프' 인증 글을 연달아 읽다보니 실시간 혈당을 확인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CGM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팔에 작은 센서를 부착하고 스마트폰 앱을 깔면서부터였다. 점심시간이 되어 직장 동료들과 분식을 먹고난 후 스마트폰 화면에 뜬 172㎎/dL라는 수치를 확인한 순간 서씨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SNS에서 140㎎/dL을 넘으면 위험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그날부터 강박적으로 혈당 수치를 확인하며 본격적인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2030 ‘당뇨병전단계’ 300만 돌파…CGM 시장 확대 속 혈당관리 유행
20~30대를 중심으로 혈당관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당뇨병이 더이상 40~50대에서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는 문제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한당뇨병학회가 발간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국내 19∼39세 청년 인구의 2.2% 상당인 30만 8000명이 당뇨병 환자로 추산됐다. 당뇨는 아니지만 정상인보다는 혈당이 높은 '당뇨병전단계'는 303만 명으로 10배가량 많았다. 당뇨병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 이상 또는 각 장기의 인슐린저항성으로 인한 작동 이상으로 체내 혈당 관리가 되지 않는 만성질환이다. 당뇨병전단계인 경계성 당뇨는 크게 공복혈당장애와 내당능장애로 나뉜다. 각각 8시간 이상 공복상태에서 측정한 혈당 수치가 100~125㎎/dL, 식사 후 2시간 혈당이 140~199㎎/dl 사이인 경우다. 당뇨병전단계에서는 약물치료 없이 생활습관 개선만으로도 정상 혈당으로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 홍은경 대한내분비학회 이사장(한림대동탄성심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젊은 층에서 비만을 포함한 대사질환 유병률이 증가하면서 잠정적 당뇨병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균형잡힌 식단,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을 통한 체중감량으로 당뇨병전단계에서 2형 당뇨병으로의 진행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공복혈당장애의 경우 저녁 7시 전에 식사를 마치고 걷기 같은 가벼운 운동을 병행하기만 해도 2~3달 만에 공복 혈당이 정상 범위에 도달하기도 한다. CGM의 도입으로 일상 속 혈당관리는 한결 쉬워졌다. 현재 국내에는 프리스타일 리브레, 덱스콤G, 가디언4 등의 CGM 기기가 도입돼 있다. 1형 당뇨병 또는 인슐린 투여가 필요한 2형 당뇨병처럼 혈당을 자주 측정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장비다. 일부 환자 대상으로는 CGM 센서 비용의 일정 부분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고 있다.
◇ 학계에선 “비당뇨인의 CGM 사용 권고 안해…과학적·의학적 근거 불충분”
당뇨병이 없는 사람의 CGM 사용을 체중감량 또는 질환 예방 효과와 연결 짓는 건 별개의 문제다. 홍 이사장은 "혈당관리에 대한 관심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비당뇨인이 호기심에 의해 CGM 센서를 부착하는 건 비용대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의 식사 또는 생활습관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데 단기간 도움이 될 순 있으나, 장기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비만학회도 지난해 성명을 통해 “당뇨병이 없는 사람의 체중 감량을 위한 연속혈당측정기 사용은 적절하지 않다"며 "비만 관리 목적으로 CGM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의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혈당 모니터링과 식단 조절을 통해 혈당 상승을 억제하면 과도한 인슐린 분비를 방지해 체중 증가를 억제할 수 있다는 가정이 언뜻 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아직 과학적, 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혈당 수치를 해석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의학적으로는 혈당값 자체보다 혈당변동성이 중요한 개념이다. 혈당변동성은 혈당 변화의 폭과 변화에 소요된 시간으로 그 정도가 결정된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에서도 혈당변동성이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당뇨병 환자들은 훨씬 더 심하다. 홍 이사장은 "생활습관을 변화시키는 데 CGM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며 "CGM을 통해 실시간 제공되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당뇨병과 그로 인한 합병증 예방 효과로 이어지려면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