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0일 JP모건체이스의 주가가 갑자기 곤두박질쳤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은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주가는 이날 무려 4.5%나 급락했다. 발단은 이날 열린 JP모건 투자자 행사였다.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질의·응답 때 남은 임기에 대해 “더 이상 5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05년부터 JP모건을 이끌어온 다이먼 회장은 그동안 은퇴 시점을 묻는 말에 항상 “5년”이라고 농담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장은 이 발언을 조기 은퇴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주가는 급락했다. 1956년생인 다이먼 회장은 당시 68세였다. 3~4년을 더 재임한다면 70세를 훌쩍 넘긴다. 그런데도 시장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건 그의 리더십과 경영 능력 때문이다. 지난 20년간 JP모건은 세계 1위 은행으로 올라섰고 주가는 6배 이상이나 뛰었다. JP모건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이 585억 달러(약 85조원)에 달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이익 500억 달러를 넘어선 은행이 됐다. 그래서 그에겐 ‘월가의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한국, 지난해 말 초고령사회 진입
정년 연장에 대한 발상 전환 필요
우주·방산·디지털이미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는 텔레다인 테크놀러지스의 로버트 메라디안(84) 회장 이력은 독특하다. MIT대 교수, 카네기멜론대 총장 등을 거치며 30여년간 학계에 몸담은 그는 2000년부터 2018년까지 텔레다인 테크놀러지스 회장을 18년간 맡은 뒤 77세의 나이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은퇴 후 22개월만인 2021년 10월 다시 회장으로 복귀해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활동적인 장년층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 S&P500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평균 연령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2009년엔 50세 미만 CEO는 16%였으나 지난해에는 7%에 불과했다. 많은 기업이 CEO의 의무 퇴직연령도 폐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75세) 등 S&P500 기업 중 60%가량이 70~80세를 의무 퇴직연령으로 정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이사회 의결로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12월 23일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1024만4550명)를 넘어서며 UN이 규정한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한국의 법적 노인 연령은 65세다.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기대수명이 66세였던 점을 고려한 때문이다. 그사이 세월이 44년이 지났고 평균 수명도 17년가량이나 늘었다. 하지만 노인 연령은 그대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인 연령을 높이고 정년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중근 대한노인회 회장은 지난해 10월 노인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5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했다. 정부는 즉각 화답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서 노인 기준 연령 상향에 대한 논의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활동적 장년)의 등장을 주요 이유로 꼽는다. 액티브 시니어는 이미 사회 현상이 됐다. 지난해 말 기준 70세 이상 인구 네 명 중 한 명(고용률 24.8%)은 ‘취업중’이다. 국회에서는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행정안전부는 공무직 근로자의 정년을 최대 65세로 늘렸다.
이런 흐름에 따라 금융권에서도 ‘70세 룰’ 적용이 유연해지고 있다. KB금융과 우리금융에 이어 하나금융도 대표이사가 중도에 만 70세가 넘어도 남은 임기를 보장하도록 내부 규범을 바꿨다. 40여년 전 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낡은 제도에 대한 혁신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0년간 ‘JP모건 제국’을 세계 1위로 올려놓은 다이먼 회장 사례처럼 선임 기준은 나이가 아닌 능력이 돼야 한다. 1992년 미 대선 당시 빌 클린턴 캠프의 슬로건을 빗대서 말하면, “바보야, 문제는 능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