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미국에 통큰 투자를 결정했다. 보조금 등 별다른 인센티브 없이 투자를 선택한 것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나온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력에 결국 굴복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TSMC의 이같은 결정에는 미국 정부의 '인텔 구하기' 압박을 피해가려는 포석도 깔려있었다는 풀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기업인 TSMC는 미국에 1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TSMC의 회장인 웨이저자가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 함께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이번 결정으로 TSMC의 미국에 대한 총 투자 금액은 1650억달러에 달한다. 이번 신규 투자는 애리조나주에 5개의 제조시설을 건설하는데 활용될 예정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바이든 정부에서 TSMC는 60억달러의 보조금을 받았으며 이는 그들이 650억달러를 투자하도록 촉진했다"며 "그들은 관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 온 것"이라고 밝혔다.
TSMC의 결정은 보조금이 아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때문에 투자를 했다는 뜻이다. TSMC는 앞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국 기업인 인텔을 제외한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았던 바 있다. 미국 상무부가 확정한 보조금 규모는 66달러로 인텔(78억6600만달러) 다음으로 많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는 사실상 같다.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게 주된 목적으로 이들은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차이점을 꼽자면 이를 위해 바이든은 보조금을, 트럼프는 관세를 무기로 삼고 있다.
TSMC의 이번 통큰 결정과 함께 시선이 쏠리는 것은 그 배경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평가처럼 점차 높아지는 관세 압박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와 함께 TSMC의 여러가지 셈법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해석된다. 우선 '인텔 구하기' 대신 투자를 택했다는 것이다. 최선의 선택은 아닐 수 있지만 차악이었다는 얘기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은 한때 강자로 군림했지만 최근 들어 경영난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미국 정부가 직접 인텔 살리기에 나섰고 그중 한가지 안이 TSMC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지난달 대만 언론 등 외신들을 통해 미국 정부가 TSMC에 인텔과의 협업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미국 정부는 두 회사간 합작법인을 만드는 등의 안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당시 대만 언론들은 TSMC의 핵심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앞다퉈 지적했다.
당시 류페이전 대만경제연구원(TIER) 연구원은 "경쟁 관계에 있는 인텔과 협력할 경우 TSMC는 기술 유출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글로벌 시장에서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TSMC가 경쟁력의 근원인 기술 유출될 위험에 직면하느니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를 택했다는 풀이다.
더불어 TSMC가 보다 안정적인 생산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의도도 녹아들어 있다고 보여진다. TSMC의 주요 고객들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인데다, 자국인 대만의 경우 그간 지진, 태풍 등으로 인해 공장 가동이 일시 중단되면서 생산에 차질을 빚는 사례들이 있어왔다. TSMC는 금새 복구에 나서긴 했으나 여전히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 차질 이슈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에 TSMC 입장에서도 미국에 제조시설을 투자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TSMC의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 결정은 관세 압박도 있었겠지만 그보단 미국 정부가 인텔과의 합작법인 등 협업을 추진하려고 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TSMC 입장에서는 인텔과의 합작으로 정보를 넘겨줄 위험에 처하느니 추가 투자를 택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