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비디아는 지난 1996년 NV2라는 게임기 그래픽 칩을 개발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일본 게임기 업체 ‘세가’에 공급 계약을 하고 열심히 만들어 왔었는데, 그 동안의 시간과 비용을 모두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엔비디아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NV2를 만들어도 시장에서 버림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당시 엔비디아는 무어의 법칙에 따른 시장의 변화를 예상하지 못하고 NV2의 메모리를 너무 작게 설계했었다. 또 1996년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95가 표준으로 자리잡던 시기여서, 엔비디아의 독자적 개발 기술은 개발자 생태계에서 외면받을 처지였다.
1996년 엔비디아는 이제 겨우 설립된 지 3년차의 스타트업이었다. 모든 역량을 갈아 넣어 만들던 제품을 포기했으니 후폭풍은 거대했다. 남은 자금은 9개월 가량 회사를 운용할 정도밖에 없었다. 엔비디아는 어쩔 수 없이 70%의 인력을 내보냈다. 다행히 6개월만에 개발에 성공한 후속 모델 RIVA 128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면서 현재의 엔비디아가 될 수 있었다. 엔비디아 역사에서 NV2 사건과 같은 파산위기는 서너 번 반복됐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엔비디아 같은 회사의 주식 30% 국가 보유론’에 대한 논쟁이 가열차다. 내가 이해한 바로 이 대표의 주장은 “AI나 반도체처럼 가능성은 크지만 자본 투자가 많이 들어가는 산업은 정부가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성공을 거두면 그 과실을 국민 전체와 공유하자”로 정리할 수 있다.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국가도 벤처캐피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나는 해석했다.
역대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에 많은 세금을 썼지만, 그 동안은 ‘투자’가 아니라 ‘지원’이 많았다. 모태펀드 등을 통한 투자도 있기는 했지만, 정부가 스타트업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그 과실을 직접적으로 공유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지원을 투자 관점으로 바꾸면 기업 성공의 과실을 전국민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인 듯하다.
이 대표의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 나오는 정파적 찬반논쟁에 의견을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이 대표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하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알다시피 한 기업이 태어나서 성공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우여곡절을 겪는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훨씬 많다. 스타트업의 실패율은 90%에 달한다. 국민의 혈세는 이런 실패를 용인할 수 있을까? 정부 차원의 투자인 국민연금 운용 사례를 볼 때, 작은 투자 실패에도 큰 비난과 책임론이 불거진다. 투자보다 실패를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또 엔비디아는 NV2 실패 이후 70%의 인력을 정리해고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엔비디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재 국내 환경에서는 정부의 혈세가 들어간 기업이 직원의 70%를 해고하는 결단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외에도 생각해볼 지점은 많다. 투자가 성공했다면 어떻게 수익을 회수할 것인지, 그렇게 얻은 수익은 어떻게 국민에게 배분할 것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하다. 지금은 큰 틀에서의 화두만 던져졌을 뿐이지만, 논쟁이 계속되면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논의도 할 필요가 있겠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회사가 하나 있다.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퓨리오사AI’다. 퓨리오사AI는 몇 안되는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1630억원의 누적 투자를 받은 촉망받는 회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미국 빅테크 기업에 매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가 퓨리오사AI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퓨리오사AI가 어떤 회사가 될 지 아직은 모른다. 1996년의 엔비디아 같이 퓨리오사AI는 아직은 확고한 제품도 없고, 특별한 고객도 없다. 앞으로 퓨리오사AI가 전세계 AI 반도체 시장을 흔들게 될지, 아니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도 않을지 알 수 없다.
이재명 대표의 생각이 퓨리오사AI와 같은 회사에 정부가 투자하는 것이라면 그 생각에 기대해 볼만 하다. 전세계가 반도체와 AI를 두고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해외에 매각하는 것보다는 정부의 힘을 빌리더라도 국내에서 성공이든 실패든 끝까지 달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형평성, 안정성, 보편적 가치 대신 효율성과 속도, 이윤 극대화를 중시하는 기업 특유의 가치관을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말이다. 아울러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더 함께 진척되길 바란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