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지배하는 사회

2025-02-20

미국 주식시장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하는 지표 중에 공포지수가 있다. VIX(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 지수)라고 불리는 이 지수는 주가의 변동성을 기반으로 산출하는 변동성 지수다. 주가 변동성은 통상 시장에 공포가 확산돼 시장의 두려움이 커질 때 확대되다보니 VIX를 공포지수라 부르기 시작했다.

요 몇주 정치 여론조사가 요동을 쳤다. 한때 48%까지 올랐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36%로 급락했다. 반면 24%로 떨어졌던 국민의힘 지지율은 39%까지 올라 양당이 역전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지지도 한 달여 만에 75%에서 57%까지 낮아졌다(한국갤럽 조사 기준). 극우의 목소리가 과표집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 같은 극심한 변동성은 주식시장처럼, 12·3 비상계엄 이후 극심해진 한국 사회의 공포감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진보성향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전례 없다. 그저 평화롭고 조용하던 12월의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뜬금없는 최고통수권자의 선언을 라이브로 맞닥뜨린 사람들이라면 그 충격을 쉽게 잊기 어렵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공포감은 ‘윤석열의 귀환’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한다면 그건 단순히 대통령직 원상복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귀환은 곧 ‘2차 계엄’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이 계엄설을 제기하자 “괴담 확산을 반복하고 있다”(정해전 대통령실 대변인)고 반박했던 그들이다. 석 달도 안 돼 계엄을 현실화시킨 이들이 한 번 했다고 두 번 안 할 리도 없을뿐더러 한 번의 예행연습을 거쳤으니 훨씬 치밀하고 교묘하게 진행할 수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비상계엄 당일 국회에 있었어도 표결에 참여 안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차 계엄에서 군경이 발빠르게 움직인다면 계엄 해제 결의를 위한 의원 정족수를 채우기가 쉽지 않겠지만 설사 채우더라도 여당의 거부로 계엄을 해제시킬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는 한동훈 전 대표도 없다.

보수성향 시민들이 느끼는 공포감도 상당하다고 한다. 이들은 윤 대통령 탄핵을 단순한 대통령직 상실만으로 보지 않는다. ‘윤석열 탄핵’은 곧 ‘이재명 당선’으로 본다. 그간 사법심판에 임하는 모습이나, 행정부에 대응하는 모습으로 봤을 때 180석의 의원을 업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서운 정치보복이 진행될 것이라 이들은 믿고 있다. 지금도 행정부 수장 탄핵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권력까지 주게 되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정치보복이 없다”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진보가 “제2계엄은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만큼이나 보수도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체가 있든, 없든 보수가 느낀 이 같은 공포감은 탄핵 반대의 명분이 됐고, 아스팔트 우파와 손잡는 계기가 됐다.

계엄 정국에 정신이 팔려버려 그렇지, 한국 사회에 닥친 진짜 공포는 따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전쟁, 중국의 생성형 AI 딥시크가 몰고온 공포야말로 우리 생존에 위협이 되는 진짜 공포다. 우방 여부를 가리지 않고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광적 행보는 한국 수출산업의 목을 빠르게 죄어가고 있다. 중국의 천재 청년들이 만든 딥시크는 한국 AI 생태계를 아래로부터 허물어뜨리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광풍에, 장기적으로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중국에 우리 밥그릇을 죄다 뺏길 판이다. 이는 빨갱이를 다 잡아들인다고, 반국가세력을 절멸시킨다고 해결되는 공포가 아니다.

산업 전선에 서 있는 기업인들은 우리가 마주한 공포를 이미 체감하고 있다. 계엄 정국에 약속했던 해외투자자의 투자가 미뤄지고, 원화 약세에 수출 여건이 악화되는 피해도 덤으로 받았다. 12·3 비상계엄은 이같이 어려운 시국에 국민을 둘로 쪼개 분열시켰다는 데서 더 악마적이다. 공포감은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국민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몬다. 그 결과 국민 모두 화가 나 있다.

급등하는 공포지수를 제어하지 못하면 금융위기를 마주할 수 있다. 파국을 막기 위해 한국 사회도 공포지수 관리가 필요하다. 공포심리를 낮출 수 있는 방향으로 헌재의 결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보수의 불안감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야당의 변화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대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리더 부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길 기대한다. 한국 사회가 살길은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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