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돌보는 일의 가치

2024-10-20

결국 찾아내 강제출국시켰다.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선발되어 지난 8월 한국에 왔던 필리핀 노동자 2명이 숙소를 떠난 것은 지난달 15일이었다.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개별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막 지났을 때였다.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쳤다는 서울시 설명대로 가사업무 관련 국가공인 자격증을 가지고, 한국어시험과 영어면접까지 통과한 실력 있는 노동자였다. 이런 노동자가 단기간에 일터를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갔다면 사업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도망간 사람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점을 되짚어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지만 그런 노력은커녕 언론에 접촉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며 입단속하기 바빴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민특수수사대’가 ‘추적 검거’해 ‘강제출국’시켰다는 언론보도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

처음부터 시작되어선 안 되는 사업이었다. ‘싼값에 외국인을 쓸 수 있다’는 노골적 이유로 시작된 인종차별적 정책이었다. 일하는 노동자는 국적과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대한민국 헌법과 노동법의 오래된 가치를 너무도 쉽게 내쳤다. 한 달 100만원, 80만원에 사람을 쓸 수 있다고 설명하는 정치인의 모습에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의 삶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더 부끄럽다. 정부는 왜 돌봄노동에서만 ‘싼값’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이 설계된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 사업을 위해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게 하고서 월급을 제때 주지 않았다. 임금체불이라 했더니 고용노동부는 오히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줬다. 숙소로 정해진 원룸텔은 1인실은 1.45평, 2인실은 1.96평인데 한 달에 많게는 45만원씩 숙소비를 공제한다. 6개월의 시범기간 중 한 달 꼬박 교육을 받았는데, 201만원의 교육수당 중 숙소비, 교통비, 소득세, 통신비 등을 떼고 실제 노동자가 손에 쥔 월급은 147만원에 불과했다.

교육기간 이후엔 주 30시간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벌써부터 제대로 배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실수령 급여는 더 낮아지거나, 오전·오후 서울시내 장거리를 오가는 열악한 노동이 강요될 수밖에 없다. 가사노동자 고충처리 현황자료에 따르면, 배정된 가정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한국어 소통이 어렵고, 오전과 오후 가정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 지하철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거나, 돌봄업무 이외에 가사업무에 대한 요청이 많아 힘들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열악한 처우를 현장에선 10시 통금제와 같은 통제로 대응하고 있다. 준비가 부족한 총체적 부실사업이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사업으로는 ‘가사노동 부담 완화로 여성 경력단절 방지’라는 정책 목표 달성이 요원하다. 시범사업 신청자의 상당수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주된 돌봄이 아닌 ‘추가적 돌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편이 넉넉한 가정에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제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과 상처가 너무 크다. 인종차별적 정책이 아닌 공공돌봄의 확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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