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X세대의 사랑과 우정 사이

2024-10-27

남녀 관계에서는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부지기수다. 지금은 이런 관계를 언급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 됐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노래로 나올 정도로 한국의 남녀 관계는 보수적이면서도 유교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명확한 선을 지키는 게 사회 덕목이었다. 그런데 록밴드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가 나와 히트하던 시기에 점차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곡은 5인조 밴드 피노키오가 1993년에 불러 히트한 것으로 노래를 작곡한 인물은 김현식의 노래 ‘내 사랑 내 곁에’를 만든 오태호였다.

흥미롭게도 이전의 가요계는 이런 애매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것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곡이 히트하면서 공일오비(015B) ‘친구와 연인’, 홍경민 ‘흔들린 우정’ 같은 유사한 노래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또한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같은 삼각관계를 다룬 노래들도 나오면서 가요계는 신파류의 노래보다는 자기중심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노래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이유는 바로 X세대(1970년대에 태어난 세대)의 등장이었다.

현재는 X세대가 빠른 경우 은퇴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그들은 1990년대 초반에 막 성인이 돼 한국 사회에 등장하며 이전에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유교적인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며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

한편 ‘사랑과 우정 사이’의 인기 이면에는 구조적인 탓도 있었다. 당시 한국 사회는 불법복제 테이프를 파는 일이 암묵적으로 용인됐다. 이 때문에 지하철역, 유흥가,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인기곡을 담은 불법복제 테이프를 팔던 노점상들이 많았다.

이것은 얼핏 보면 범죄에 해당하여 큰 피해를 주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유행을 선도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인지도가 없는 노래도 노점상이 틀어대면 히트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노점상들을 길거리와 빌보드를 합쳐서 ‘길보드’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사랑과 우정 사이’는 길보드에 간택돼 전국적으로 불렸고, 피노키오의 유일한 히트곡이 됐다.

찬바람 불면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친구다. 아마도 X세대에게 ‘사랑과 우정 사이’는 남녀 친구 모두가 떠오르는 추억의 노래일 것이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