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어 한국서도 대사 맡은 안데르손 신임 스웨덴대사
칼 울르프 안데르손 신임 주한 스웨덴대사가 처음 서울을 찾은 건 2013년 여름이었다. 2012년부터 주북한 스웨덴대사를 맡고 있던 그는 당시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후 미래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며 “첫인상부터 강렬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한국 사람들 모두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첨단 도시가 이토록 거대하면서도 잘 구조화돼 역동적으로 굴러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평양에서 200㎞도 채 떨어지지 않은 서울의 전혀 다른 모습에 놀라 언젠간 꼭 한국 대사로 다시 오겠다 다짐했다.”
그의 바람은 11년이 지나 이뤄졌다. 지난달 28일 주한 스웨덴대사로 정식 임명되면서다. 이번엔 북이 아닌 남에서 대사 임무를 시작한 안데르손 대사를 서울 성북동 스웨덴대사관저에서 중앙SUNDAY가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났다.
평양냉면 즐겨 먹어…금강산 산세에 반해
9월부터 대사 내정자로 활동해 왔는데.
“두 달 남짓한 기간에 많은 분의 환영을 받아 마치 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외교관으로 전 세계를 돌면서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 도시는 몇 되지 않는다. 함께 일하면서 한국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한국인의 성실함 덕분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북한대사도 지냈는데 평양 생활은 어땠나.
“평양에서 산다는 건 개인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경험이었다. 평양은 북한 내에서 일종의 쇼케이스 장소라고 여겨졌다. 북한 인구의 10%만 평양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큰 혜택을 누리는 계층에 속했다. 평양엔 대사관 근무자나 봉사단체 등 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이 따로 있었다. 외교관도 외국인 중에서는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었지만 평양을 제외한 지역을 다니는 데는 여전히 제약이 많았다.”
주한대사가 북한과 관련한 외교 업무를 겸직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남북한에서 각각 대사를 맡은 건 콜린 크룩스 현 주한 영국대사 이후 두 번째다. “콜린도 주북대사를 지낸 공통점 때문에 서로 친하게 지냈다”고 소개한 그는 “남과 북의 경험을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되겠느냐.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잘 살려 나갈 것”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을 지낸 그가 스웨덴 외교부에서 처음 맡은 직책은 동아시아 지역 담당관이었다. 이후 아시아태평양국 심의관과 주북대사, 주중국 스웨덴대사관 차석과 대사 등을 잇따라 역임한 그는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아·태 지역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안데르손 대사는 북한 재직 시절에 대해 “경직된 표정이었지만 정이 참 많았던 주민들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며 “김치나 국수·만두처럼 한국 전통음식도 그때 처음 접했는데 평양에서 즐겨 먹은 평양냉면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도 어딜 둘러봐도 산이 보이는 풍경이 평양과 비슷하다”며 “북에서 금강산의 산세에 반했는데, 서울 생활이 좀 적응되면 한국의 산도 꼭 올라가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당시 북한은 어떤 모습이었나.
“봉사단체들과 함께 틈나는 대로 북한 구석구석을 다니려고 애썼다. 특히 수도 시설 개선 등 인도적 차원의 프로젝트에도 힘썼다. 대부분의 수도관이 1960~70년대 만들어진 거라 낡고 부식돼 깨끗한 물을 공급받기 어려웠다. 여전히 소가 밭을 갈고 손으로 경작하는 모습도 잊히질 않는다. 트랙터를 돌릴 연료가 부족해 모든 걸 주민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게 당시 실상이었다.”
크게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아내와 내가 살던 빌라는 과거 사회주의 국가 건물처럼 똑같이 생긴 여러 동의 회색 건물 중 하나였다. 스웨덴 사람이라 추위에 강한 편인데도 평양의 겨울 추위는 너무나 혹독했다. 영하 20~30도의 한겨울엔 아무리 난방을 해도 20도 이상 오르지 않았다. 난방 공급도 제한적이었고 물도 제대로 쓰기 힘들었지만 ‘살면서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냐’는 생각에 최대한 적응하며 지내려고 했다.”
스웨덴은 지난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1812년 이후 200년 넘게 지속해온 중립·비동맹 외교 기조에서 탈피해 미국·유럽으로 대표되는 진영과 연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외교·국방 정책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국방비도 국내총생산(GDP)의 1%에서 두 배로 늘린 데 이어 2026년까지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에 대해 안데르손 대사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오랜 중립국 지위에 대한 작별이자 강력한 안보 정책의 실행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주한 국방무관도 임명했는데.
“스웨덴은 인구가 1000만 명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나라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방위산업을 갖추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전투기·잠수함·장갑차 등에 들어가는 첨단 레이더 시스템이다. 특히 한국은 스웨덴 회사 사브(SAAB)의 포병 위치 탐지 레이더 시스템의 최대 고객이다. 유럽에서 위성 발사 능력을 갖춘 나라도 스웨덴과 프랑스뿐이다. 한국 방산도 최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나. 그런 만큼 앞으로 양국이 방산 분야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국방무관 임명도 양국 국방 협력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스웨덴은 전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스웨덴은 6·25전쟁 중 부산에 야전병원을 세웠고 1000명이 넘는 의료지원단이 남북한 군인과 민간인 등 200만 명을 진료했다. 6·25전쟁이 끝난 뒤엔 중립국 감독위원회의 일원으로 줄곧 한반도의 분단 현장을 지켰다. 이후에도 오랜 협력 기간 양국은 민주적 가치뿐 아니라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에 대한 믿음을 공유해 왔다고 생각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제질서가 공격을 받을 경우 동일한 생각을 가진 파트너들은 옳다고 믿는 것을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했다는 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는 국제법과 유엔 헌장의 기본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지난 9월엔 스웨덴 외교관이 평양으로 복귀했다. 북한이 코로나 팬데믹을 이유로 폐쇄한 북한 주재 대사관을 4년 만에 재가동하면서 유럽연합(EU) 국가로는 처음으로 스웨덴 외교관의 평양 근무를 허용한 것이다. 안데르손 대사는 “스웨덴이 그 어느 나라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역사적 배경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3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 국가
올해는 한국과 스웨덴이 수교한 지 65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의 양국 교류 협력을 어떻게 평가하나.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스웨덴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 국가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엔 한국 문화가 스웨덴에 활발히 진출하고 있다. MZ세대들 사이에서 한국 음식이 유행하고 있고 식료품점에선 김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톡홀름을 방문할 때마다 한식당이 하나씩 느는 것만 봐도 양국의 문화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는 걸 실감한다.”
그는 그러면서 “영화 분야의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대사관은 10년 넘게 한국에서 영화제를 개최해 왔다. 올해는 서울·부산·대구·인천 등 4개 도시에서 스웨덴 영화제를 열었는데 다녀간 관람객만 5000명이 넘을 만큼 성황을 이뤘다. 외국 영화를 접하는 건 그 나라에 대해 보다 깊이 배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란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최근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이 선정하는 노벨 문학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것 또한 긍정적이다. 이를 계기로 양국 간 문화 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협력을 더 확대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경제 대국으로 스웨덴 입장에선 세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 국가다. 스웨덴과 한국은 모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 중 하나로 꾸준히 평가받아 왔다. 배터리·6G·모빌리티·반도체 등 전략기술 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는 중이다. 스웨덴은 이를 바탕으로 5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과학기술 개발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등 한국의 성장과 번영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는 스웨덴과 한국의 상위 8개 대학이 ‘교육·연구 및 혁신 협력’ 프로젝트도 공동 진행하고 있다. 그뿐인가. 에너지·원자력·우주·사이버 안보 분야의 협력도 한층 공고해질 전망이다. ‘혁신’이란 공통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양국 협력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