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에도 명시된 바와 같이, 모든 권력의 근원은 국민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의 목소리에 있으며, 이는 국민의 권리로 보장된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의 외침과 집회는 이러한 민심을 대변해 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 광화문 광장은 연일 ‘집회 없는 날이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지만, 때로는 법과 질서보다 앞서는 군중의 외침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3·1절과 같은 국경일까지도 대규모 집회로 인해 국민적 기념일이 아닌 갈등의 장이 되어가는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을 안긴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조차 이제 ‘광화문 집회’는 관광 목록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 과거에는 천막을 치고 자리까지 마련하며 장기간 집회를 이어가는 모습도 흔했다. 단식투쟁을 하며 명상하듯 시위를 벌이는 이들도 있었고, 정부를 향한 항의의 목소리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집회 문화는 과연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인가.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둘러싼 찬반 집회는 전국을 뜨겁게 달궜다. 의회민주주의가 해결하지 못한 갈등이 거리에서 표출되며, 집회는 다시금 국민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는 반정부 시위대가 의회와 궁전을 불태우겠다고 모였을 때, 한 교통경찰관이 나서서 “의회로 갈 사람은 이쪽, 궁전으로 갈 사람은 저쪽”이라며 길을 정리해 군중을 자연스럽게 해산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이는 국가와 국민이 갈등을 조율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방식의 한 사례로 꼽힌다.
대한민국 역시 집회의 역사를 지나왔다. 1960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며 “데모로 해가 떠서 데모로 해가 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유당 시절 연간 50건에 불과하던 집회가, 1960년에는 불과 10개월 만에 1000건을 넘었다. ‘데모한다, 고로 민주주의는 존재한다’는 구호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한국의 집회 문화는 3·1운동(1919), 6·10 만세운동(1926), 광주학생운동(1929) 등 역사적 사건을 통해 발전해 왔다. 해방 이후에는 반탁·찬탁 시위가 국토 분단과 6·25 전쟁으로 이어졌으며, 4·19 혁명은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 전야의 민주당 정권 시기의 혼란스러운 시위는 한국 집회 문화의 가장 어두운 단면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데모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도한 집회로 인해 외국 기업들이 한국을 기피하는 나라로 인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광화문의 외침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목소리가 중요하지만, 그 방법 또한 성숙해야 한다. 법과 질서 속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