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변에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정치 집회나 유명 정치인과 찍은 사진이 게시돼 있다면 아예 지워버리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의 정치적 성향을 검열하고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평소처럼 단골 맛집에 들렀는데 사장님이 최근 극우 집회에서 연설한 유명 역사 강사의 유튜브를 큰 볼륨으로 듣고 있더란다. 그동안의 의리 때문에 그냥 나오지는 않았지만 앉아 있는 동안 심한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무심코 탑승한 택시에서 운전자가 극우 성향의 주장을 늘어놓자 무서워서 목적지에 닿기도 전에 내려버렸다는 체험담도 있다. 한 식당 사장님은 어느 날 윤석열을 규탄하는 몇몇 손님의 바로 옆 테이블에서 몇몇 청년이 윤석열의 석방을 축하하는 건배주를 하더란다. 저러다 싸움이라도 벌어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털어놓는다.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서도 “화가 난다” “불안하다” “무섭다”는 표현이 부쩍 늘어났다. 이 정도면 그나마 다행이고, 심지어 “내전이다” “목숨을 걸자”는 댓글까지 등장하면 나는 황급히 진정을 시키다가 방송을 중단했다. 사막 같은 세상에서 진보적 시민에게 연대와 우정의 오아시스가 되고자 했던 나의 작은 채널이 험악해지는 것은 몹시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윤석열이 석방되고 헌법재판소 탄핵 선고가 지연되는 중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암살설까지 등장하자 우리 사회가 집단적 공황에 빠져들었다. 한 아침 유튜브 방송에서 야당 의원이 나와 신변의 위협을 느낀 사례를 털어놓는다. 불안해진 시민들은 마치 냉장고의 상한 음식물을 버리듯이 서둘러 자신의 주변을 검열하는 위생 조치를 하고, 소통의 플랫폼을 비공개로 전환하며 스스로 고립되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때 술 취한 운전자가 광란의 질주를 했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 중앙의 가드레일이 무너진 것은 아니어서 절망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법 기술자를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이자 법관마저 흔들리고 그 뒤를 검찰이 순순히 따라간 것은 충격이었다. 검찰의 배후에는 아직 용산에 살아 있는 내란의 잔존 세력이 사법 카르텔을 동원해 내란의 연장을 도모한다는 합리적 의심도 배제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풀려난 내란의 우두머리가 무슨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내전의 위험 구간에 진입했느냐에 대해 나는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30%대 이상의 두꺼운 중도층이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거대 양당의 파벌주의가 서로 충돌할 때 그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 구역이 아직 충분히 존재한다. 더군다나 중도층의 대다수가 계엄에 반대하며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 태도를 분명히 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회복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한국에는 종족적·인종적 갈등에 기댄 종족주의형의 정체성 정치가 출현하지 않았다. 반북·반중 혐오 정서가 위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인종주의적 폭력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중국인 관광객이나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우려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세 번째는, 여전히 물리적 폭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국회에 백골단이 등장하는가 하면 서부지법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한국에는 공권력을 위협할 민병대나 자경단과 같은 무장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네 번째로 정부의 공공서비스와 행정의 질이 여전히 우수하다는 점이다. 올겨울의 정치적 격동에도 불구하고 정부 기능에는 큰 손상이 없었다. 오히려 구속된 윤석열의 부재 때문에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공개되고, 대왕고래 석유와 가스 탐사가 중단되었으며, 의대 정원 증원이 동결되는 등 행정이 속속 정상화됐다. 윤석열이 없으니 행정이 더 투명해졌고 잘 돌아가더라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시민공동체를 보유한 선진국이자 문명국이라는 점이다. 영화 <서울의 봄>이 회자되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노벨상을 수상한, 문명이 폭발한 바로 그해에 군대를 동원한 내란은 어차피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러니 한국은 윤석열을 탄핵하고 내란 잔존 세력을 청산하고 나면 더 견고한 민주사회로 나아갈 잠재력이 풍부하다. 민주주의 규칙과 시민의 일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의심을 통해 폭동의 위험을 예방할 필요는 있겠으나 두려움은 극복해야 한다. 아직 한국은 내전에 진입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