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되는 부정적 존재가 아닌
풍부한 경험·지혜 가진 주체로
사회적 인식 근본적 변화 필요
세대 간 조화의 시대로 나가야
영국의 정치평론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1726년 출간한 ‘걸리버 여행기’는 주인공 걸리버가 소인국과 거인국을 차례대로 방문한 이야기이다. 이들 두 국가는 걸리버의 눈에 전혀 딴 세상으로 비춰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주류인 사회에서 노인이 주류가 되는 사회 즉, 노인국으로 이행하고 있다. 통계청의 최신 전망에 따르면, 현재 20% 수준인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 비중은 2070년 47.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유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30번째 정도로 고령화된 국가이지만 2045년부터는 일본을 추월해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전망이다.
노인 인구 비중이 낮은 과거에 노인은 가족과 사회에서 연장자(年長者)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그 비중이 높아져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양 부담이 가중되면서, 노인의 지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연령 차별주의와 세대 간 갈등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총인구 중 노인 인구가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 즉 미래 ‘노인국’의 모습은 어떨까?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노인국에서는 생산 활동의 주축이 건강한 노인층으로 전환될 것이다. 수적 열세에 놓인 젊은 생산인구는 특화된 산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배치될 것이다. 사무실, 사업장, 공장 등 모든 직장은 연령 무관한 고령 친화적 근로환경으로 재설계되어 어떠한 연령층도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 정년제도는 폐지되어 개인의 건강과 의지에 따른 자율적 근로가 가능해지며, 사회보장제도도 성숙하여 ‘노후 빈곤’은 구시대 산물이 될 것이다. 일하는 방식 역시 노동과 여가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보편화될 것이다.
소비 주체는 당연히 노인 인구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고령 친화적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사활을 걸게 되며, 노인 소비자의 선호도가 시장을 좌우하게 된다. 광고계에서도 활력 넘치는 노인 모델이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이처럼 노인층이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면서 복지수혜자에서 납세자로 전환되어, 사회보장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즉, 노인국에서는 노인들이 생산과 소비 및 납세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다.
노인국에서는 건강수명과 평균수명 간 차이가 거의 사라질 것이다. 후기 고령 인구마다 사이보그가 배치되어 주치의로서 그리고 신체적·정서적 돌봄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인공지능(AI) 기반 개인 맞춤형 의료시스템이 구축되어 실시간 건강모니터링과 즉각적인 의료대응이 가능해진다. 예방중심 의료체계로 의료비 부담도 대폭 경감될 것이다. 사망 시까지 대부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므로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나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다.
노인국에서는 긴 인생에 적합하도록 대학 이상 고등교육을 세 번 받을 수 있다. 정규교육 후 20년 주기의 재교육 제도화로 45세, 65세 등 생의 주요 전환기마다 2∼4년의 전문교육 기회가 보장될 것이다. 온라인 중심의 학습 플랫폼은 생활과 교육의 경계를 허물어, 평생학습이 일상화될 것이다. 대학은 다양한 연령층의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간으로서 재구조화될 것이다.
노인국에서 대중교통은 무인화되고 세금만으로 운영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연령층은 무료로 시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노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경로석의 개념은 자연스레 희미해지고, 임산부와 영·유아를 위한 배려석이 경로석을 대신할 것이다.
이러한 미래 노인국의 모습이 상상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밝은 노인국 건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근본적 전환이 시급하다. 노화로 인해 생산성이 낮거나 부담이 되는 부정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생애 연속 선상에서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지닌 사회의 주체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노인 스스로도 자아존중감을 바탕으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 노년기는 생의 마감을 기다리는 시기가 아니라 생의 또 다른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연령 평등의 가치를 토대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노인국 구조에 맞게 체계적으로 재구축해 나간다면, 우리가 맞이할 노인국은 모든 세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더욱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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