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이 부는 요즘 같은 시대,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를 제대로 설명한 역대급 책이 나왔다. 본지가 2022년 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연재한 ‘향토밥상’ 기획기사를 한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이 책은 지유리·서지민·김보경 기자가 직접 발로 뛰어 발굴한 보석 같은 향토음식 65가지가 담겨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책을 읽다보면 내가 몰랐던 향토음식에 대해 알아가며 한편으로는 재미를, 또 다른 면에선 우리 음식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흔히 밥상에는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활양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한다. 어떤 식재료가 풍부한지, 그것을 어떻게 먹는지는 지역을 이해하는 창과 다름없다. 스마트폰 터치로 ‘낙곱새(낙지곱창새우볶음)’를 한시간 내로 주문할 수 있는 시대에, 향토밥상이란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향토밥상에는 맛뿐만 아니라 지역 역사와 문화가 함께 담겨 있어 더욱 가치 있다. 지방소멸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는 이때 그 지역의 독특한 향토음식을 발굴하는 건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책에선 향토음식에 얽힌 문화적 이야기를 세심하게 그려낸다.
책은 크게 지역별로 구분돼 있다. 인천·경기, 강원, 충청, 광주·전라, 대구·부산·경상, 제주 각각 지역엔 이름만 들으면 생소한 음식들이 많다. 툭툭 끊기는 구수한 메밀면인 인천 강화 ‘칼싹두기’, 좁쌀로 만든 건강 죽인 경기 양주 ‘연푸국’, 담백한 장맛에 깔끔한 뒷맛을 가진 탕인 강원 강릉 ‘꾹저구탕’, 주민들이 봄꽃보다 기다린다는 충남 논산 ‘웅어회’, 시래기와 진한 국물이 잘 어우러지는 전북 전주 ‘오모가리탕’, 귀한 성게알이 듬뿍 담긴 부산 기장 ‘앙장구밥’, 입이 짝 달라붙을 정도로 국물맛이 감칠맛 나는 제주 ‘접짝뼈국’ 등이 주인공이다.
책의 서평을 쓴 정세진 맛칼럼니스트는 “우리가 몰랐을 뿐, 한식의 세계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개성이 살아 있다”며 “이름만 들어선 짐작도 안 가는 음식들의 유래와 모양새·맛 등이 눈앞에서 본 것처럼 상세하게 펼쳐진다”고 말했다.
가슴 따뜻한 사람 이야기는 이 책의 꽃이다. 기자들은 취재할 때 ‘음식에 대한 첫 기억’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식을 만드는 이들은 어머니가 해준 음식의 손맛, 친구들과 바닷가에 갔던 기억, 술과 안주로 이웃과 허기를 달랬던 이야기, 결혼 후 처음 접했던 낯선 음식에 대한 추억들을 하나씩 펼쳐놓는다. 이렇게 음식은 어떤 이에겐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다. 이들 가운데에는 향토음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을 가지고 음식의 명맥을 이어가는 이도 많다.
‘흑백요리사’ ‘미쉐린 가이드’ 등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고급 음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실은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한들 우리 음식만큼 우리 입에 딱 맞는 음식은 없을 터. 우리 향토음식을 잘 보존하고 확산시킨다면 글로벌 시장에서도 큰 경쟁력으로 거듭날 것은 당연하다. 우리 음식을 사랑하고, 한식 없이 못 사는 이, 그리고 지방소멸을 막으려고 우리 농업·농촌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후회 없는 맛있는 ‘한권’이 될 것이다.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