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평] 드라마 <정년이>에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이 겹쳐 보여

2024-11-15

tvN 금토 드라마 <정년이>는 방영 이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원작은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로 세 명의 주인공 윤정년, 허영서, 권부용이 성장하는 서사를 잘 드러내 호평을 받았다. 2019년에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해 2022년까지 3부에 걸쳐 완성된 원작은 용두용미라는 평을 들었고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다룬 부분도 화제였다.

드라마로 제작되는 과정에 맨 처음 들려온 이야기는 주연에서 권부용이란 캐릭터를 아예 삭제했다는 것이었다. 권부용은 정년이의 성장 과정에 매우 중요한 관계를 맺으며 집안에서 요구받는 결혼 등 여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이겨내는 인물이다. 그리고 동성에 더 끌리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드라마로 각색하면서 이 부분을 삭제한 것은 페미니즘과 동성애에 대한 혐오 정서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일어났다.

그런 상황에 기획 단계부터 초반 대본 연습까지 MBC에서 진행하다가 tvN으로 옮기면서 소송이 벌어진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 과정에 연출을 한 정지인 PD가 MBC에서 퇴사했을 뿐 아니라 제작인력이 대부분 동반 이동해 가압류를 신청한 것이다.

이렇게 여러 구설수 속에 방영을 시작한 <정년이>는 예상보다 가파른 시청률 상승을 보여줬다. 첫 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전국 4.8%에 불과했지만 4회 이후 10%를 넘어선 뒤 매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온라인 화제성도 높아 작품과 주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덩달아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그럼에도 <정년이>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앞서 적은 ‘권부용’의 삭제뿐 아니라 이야기 전개 중에서 원작에서 다룬 페미니즘 서사를 교묘히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제작사가 연출진이 최근 빗발치고 있는 ‘혐오’에 굴복해버렸다는 주장이다.

이런 답답한 상황은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확인된다. 동덕여대 학생들이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에 반발해 투쟁을 시작한 사건이다. 학생들이 몰래 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것에 맞서 교내 본관 농성과 100주년 기념관 등에서 항의하자, 학교 측은 대화 대신 공권력을 요청하는 과잉 대응 중이다.

그런데 민주적인 절차를 요구하는 동덕여대 학생들의 목소리를 조롱하는 ‘혐오’가 독버섯처럼 튀어나오고 있다. SNS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현 상황을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하는 몰지각한 혐오 발언이 번지는 것이다. 특히 다른 대학 남학생의 목소리라며 논리 없는 비아냥거림을 올리는 이들이 있어 현실이 더 처참함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각종 혐오를 부추기며 세력을 형성하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여성 그리고 여성주의에 대한 혐오다. 성차별과 성폭행 사건은 끊이지 않고 이를 솜방망이로 처분하면서 유사 사례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모으는 손가락 모양이나 ‘완경기’와 같은 단어들이 페미니즘을 상징한다고 말도 안 되는 사이버 테러와 불매 압박도 거듭되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 <정년이>와 최근 동덕여대 사건은 모두 ‘혐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무엇일지 보여주는 것 같다.

<정년이>가 높은 흥행 속에 마지막 회를 끝냈다 해도 찜찜함을 가릴 수 없다. 물론 이건 드라마일 뿐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공격과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동덕여대에 투입된 경찰이 학생들에게 ‘나중에 결혼하고 아기 낳고 육아도 해야’라며 설득했다는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 민낯인가.

배문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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