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을 다니지 않고 전문학사·학사 학위를 취득하는 ‘학점은행제’가 부실 운영되고 있다.학점은행제는 교육부가 승인한 교육훈련기관의 강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이수하면 학위를 주는 제도다. 자격증 취득에 학사학위가 필요한 사람들이 이 제도를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점은행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교육부 산하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따르면 학점은행제 교육훈련기관은 현재 403개다. 1998년 제도 시행 이후 113만여명이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학사관리는 대학에 미치지 못한다. 일부 학점은행제 이용자들은 부정행위로 학점을 이수하는데도 이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비대면 시험에서는 ‘대리시험’도 성행한다. 아예 부정행위 방법을 가르쳐주는 브로커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회원수 58만명 규모의 한 온라인 편입 카페는 한 학점은행제 인정 교육기관과 제휴를 맺고 회원들에게 ‘학점은행제 무료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이른바 ‘플래너’가 전화상담 등으로 수강 기관을 추천해주고 정가보다 저렴하게 수강신청을 할 수 있도록 쿠폰 등을 제공한다.
이런 플래너는 이 카페 밖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학점은행제 플래너’ 등을 검색하면 “체계적이고 디테일한 무료 상담”, “학습 플랜(계획)을 돕고 학습자 상황에 따라 시간절약·비용 절감을 돕는다” 등의 홍보글이 쉽게 나온다.
플래너는 이용자들에게 상담 비용을 받지 않는다. 되려 강의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이러니 이용자들은 플래너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다. 전문가들은 플래너들이 특정 교육기관과 연계해 수강생을 소개해주고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일부 플래너의 활동은 교육기관 연결에 그치지 않는다. 시험 자료가 모여있는 사이트를 제공하고 ‘커닝 방법’까지 안내해준다.
기자가 26일 한 이용자의 계정을 빌려 ‘학습지원센터’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실제로 ‘시험 자료실’에는 총 9개 교육기관 별로 자료게시판이 개설돼 있었다. 교육기관의 명칭은 ‘C교육원’, ‘K교육원’ 등 모두 익명 처리돼 있는데, 여기에는 과목별 중간·기말고사, 각 주차별 ‘퀴즈’ 자료가 게시됐다.

게시판에는 ‘시험 응시 요령’이라는 공지도 있었다. 이 공지는 “각 교육원 행정팀·국가평생교육진흥원 원격 지원 시 절대 자료를 띄워놓으면 안 된다, 적발 시 모두 0점 처리된다”면서 부정행위 방법을 안내했다. “(시험용 PC 외에) 다른 노트북 등에서 교안·참고자료를 열라” “‘Ctrl + F(검색 단축키)’를 누르면 검색창이 나온다, 시험문제 단어를 검색해 응시하라” “커닝의심방지를 위해 반드시 시험 (답안) 제출 시 쪽지시험은 (시험 시작) 5분 이후, 중간·기말고사는 25분 이후에 제출하라”란 요령이 줄줄이 나왔다.

부실 시험 감독에 ‘대리시험’ 사례도
아예 다른 사람의 시험을 대신 치르는 사례도 있었다.A씨는 26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얼마 전 지인의 부탁으로 학점은행제 강의 시험을 대신 봤다”고 털어놨다. 본인인증 절차는 지인에게 받은 비밀번호와 공동인증서(옛 공인인증서)로 통과했다고 한다. A씨는 응시 과정에서 “웹캡 등을 이용한 실시간 감시 등 다른 감독은 없었다”고 했다.
A씨는 관련 강의를 전혀 수강해 본 적이 없었지만 플래너가 제공한 족보 사이트를 이용해 큰 어려움 없이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시험을 마치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는데 A씨는 부정행위자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시험 시작 25분이 지난 뒤 답안을 제출했다.
A씨는 “(이런 식으로) 여러 차례 대리로 시험을 봤는데, 이수 완료까지 대면시험은 전혀 필요치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도)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손쉽게 (대리시험이) 가능할 것 같다”며 “(대리시험을 보고) 적절한 일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고 털어말했다.
지난 2월에는 한 온라인 블로그에 ‘학점은행제 중간고사 대리시험 후기’라는 글이 게시됐다. 게시자는 ‘문제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내가 풀어 답을 보내줬다’고 썼다. 게시자는 ‘시험 대행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어 남긴다’며 카카오톡 오픈채팅(익명 대화방) 링크도 써뒀다.

전문가 “감독기관 평가 인증 시스템 마련·강화해야”···국평원 “사실관계 확인하겠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점은행제) 교육기관들도 학생을 모아 돈을 벌어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데, 일부 대학이 학생 모집이 어려워 아무나 학생으로 유치해 돈을 버는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 교수는 “제대로 된 교육 이수가 없어도 돈을 냈으니 학점을 부여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도 작용해 학점은행제 시장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감독기관인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교육기관들에 대한 평가 인증 시스템을 마련하고 강화해야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플래너와 연계한 수강생 모집은 금지돼 있어 적발 시 벌점 부여·경고 조치하고 있고, 누적 시 인증자격을 박탈한다”면서 “부정행위 지원이 있었던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사실관계를 확인해 실제로 이 같은 행위가 있다면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창업 선순환’ 돋보인 한양ERICA·인천대…‘문송’ 극복한 취업 강자 서강대 [2025 대학평가·학생성과]](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1/26/54cb187d-1ac8-493f-9e87-2d501e661aaa.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