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이 제 발로 찾아온 ‘적색 수배자’를 풀어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수배자는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 조직을 운영해 약 120억원을 가로챈 조직의 총책인 강모(31)씨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만 약 100명이다. 당시 대사관은 현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강씨를 그대로 돌려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22일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하면, 지난해 11월 강씨는 여권 연장을 위해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을 방문했다. 당시 강씨는 인터폴 적색 수배 상태였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강씨는 배우자 안모(29)씨와 함께 로맨스 스캠 조직을 운영하며 피해자 약 100명을 상대로 12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대사관 소속 경찰 영사는 강씨에게 적색 수배 사실을 통보한 뒤 별다른 조치 없이 귀가시켰다. 당시 강씨가 여권 발급이 왜 안 되는지 묻자 “수배 사실이 있다”고 알려줬다. 이에 강씨는 귀국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대사관 측은 출국 시 밟게 될 절차와 체포 가능성을 안내한 뒤 한국의 담당 수사관과 직접 통화 연결까지 해주고서 풀어줬다. 당시 울산남부경찰서 김필진 경위는 강씨의 강제 송환 또는 신병 확보 방안을 문의했다. 하지만 대사관 측은 “수배자라고 해서 (현지) 경찰을 불러 체포하는 것은 무리다”고 답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이 “대사관이 강씨의 도주를 오히려 도와준 것 아니냐”고 묻자 김현수 주캄보디아 대사대리는 “당시 경찰 영사의 판단에 인터폴 적색 수배는 즉각적인 체포영장의 성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강씨는 대사관을 빠져나간 뒤 자수하지 않고 잠적했다. 대사관은 약 3개월 동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다가 올해 초에야 현지 경찰에 사건을 통보했다.
강씨 부부는 지난 2월 초 현지에서 체포됐다가 6월 초 한 차례 석방됐다. 법무부는 7월 말 수사 인력을 보내 현지 경찰과 함께 강씨 부부를 체포했다. 현재 이들은 캄보디아에 구금된 상태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캄보디아 측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지만 무산됐다. 전날 캄보디아 법무부 차관과의 면담에서 송환을 재차 요청했다.
문상혁 기자, 울산=김윤호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