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너지공단은 에너지바우처 사업에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도입,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있다.
에너지바우처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여름·겨울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전기·도시가스·지역난방·연탄·등유·LPG 등) 구매비용을 이용권(바우처)으로 지원하는 에너지공단의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다.
기초생활수급 가구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이 사업은 최근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해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업을 모르고 신청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남아있어 이를 발굴하기 위해 AI의 힘을 빌린 것이다.
공단의 시도는 곧바로 성과로 나타났다. 각종 데이터를 AI 기술로 분석한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이어 사람이 세대를 방문해 밀착형 복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에너지바우처를 한 번도 받지 못한 8370세대에 6억8000만원을 지원했다. 해당 사례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정부혁신 우수사례, 국민이 뽑은 적극행정 우수사례에서 각각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에너지공단이 추진한 디지털전환(DX)의 대표 성과 가운데 하나다. 공단이 DX를 통해 얻은 결과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열수송관 관리, 업무 혁신과 관련해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수년 전부터 전사 역량을 DX에 쏟기 시작한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DX 가속 페달 밟는 에너지공단
“디지털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사 역량을 모아 달라”.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신년사를 통해 인공지능(AI) 도입, 디지털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에너지 효율향상, 취약계층 에너지복지 강화,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통한 탄소중립 실현 등 에너지공단의 핵심 업무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혁신을 끌어내자는 일성이었다. 공단은 기관장의 강력한 디지털화 추진 의지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수송 및 에너지복지 등 각종 업무 영역에 디지털 기술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DX 맞춤형 거버넌스도 마련했다. 부이사장·기후대응이사(CIO)로 분리되어 있었던 디지털 전환(DX) 추진 체계를 CIO로 일원화한 데 이어 'CIO-총괄부서(통계분석실)-사업부서' 구조로 협업체계를 표준화했다.
CIO 주도 아래 디지털 조직문화를 조성하고 정보화 체계를 기존사업부서 주도에서 개선통계분석실 주도로 개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공단은 이런 체계 아래서 매년 단기·중장기 DX 목표와 전략을 수립하고 목표 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5년간의 경영성과 점검 및 향후 경영환경 분석 등 체계적인 경영관리를 위해 수립·이행하는 중장기 경영계획에 디지털전략을 반영, 이행력을 한층 강화했다.
DX 추진 영역을 △국민을 위한 정부 △똑똑한 원팀 정부 △민관이 함께 하는 성장 플랫폼 △안심할 수 있는 플랫폼 정부로 세분화하고 각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을 발굴, 진행할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공단은 올해 업무 흐름을 분석해 반복되거나 불필요한 과정을 제거하고 신기술을 도입하는 디지털 전환을 추진한다. 내년엔 '비대면 협업·소통체계 강화, 데이터 공유 공개 등을 통해 지능형 의사결정 시스템과 스마트 업무환경을 마련할 계획이다. 2027년엔 생성형 AI를 학습시킬 데이터를 수집하고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해 업무 생산성을 향상한다. 그다음 해엔 AI 어시스턴트를 도입,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단일 창구를 구현한다는 목표다.
◇맞춤형 DX로 효율·안전·복지 모두 잡아
에너지공단은 DX를 통해 적지 않은 성과와 경험을 쌓고 있다. 에너지 복지, 안전 관리 등 주요 업무 영역에서 혁신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지역난방 열 수송관 지리정보시스템(GIS) 구축은 대표 성과 가운데 하나다.
아파트 등에 지역난방을 공급하는 열 수송관 사고는 난방 공급의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은 물론 안전에 큰 위협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전국 열 수송관을 촘촘하게 관리하는 체계를 확보하는게 중요하다.
공단은 전국 열 수송관의 GIS를 구축하고 동시에 데이터를 표준화했다. 9664km에 달하는 전국 열수송관의 93%를 GIS로 구축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수송관을 열화상 촬영하고 매설경로 조사를 증강현실(AR) 기술로 대체했다. 실제 매립된 배관의 모습과 위치를 가상으로 구현함으로써 열 수송관 매설 깊이를 일일이 조사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에 따라 업무시간의 약 20%가량을 단축했다. 열화상 카메라 촬영 시간 또한 연간 132시간 단축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열 수송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한 것이 가장 큰 성과로 지목된다.
앞서 언급한 에너지 바우처 사용 사각지대 발굴에는 총 423만건의 외부데이터, 2483만건의 내부데이터(에너지원, 지원금액, 주소 등)를 활용했다. 전기·가스·지역난방 등 에너지사용량과 주택관리공단 세대 정보, 지역별 날씨 등의 기상데이터를 망라해 다양한 분석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탐색적 데이터 분석(EDA)을 통해 예측모델 설계, 데이터에 기반해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있다.
그 결과, 에너지 사각지대가 기존 15만8000세대에서 12만3000세대로 감소해 사각 지대 발굴이 정밀화하는 동시에 안내 업무의 효율성이 개선되고 에너지바우처 사용률도 상승했다.
나아가 에너지바우처 상담에도 AI·클라우드 기술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에너지바우처 수급자가 약 126만 세대에 달하면서 콜센터 상담사 증원에도 불구, 응대율이 지속 하락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AI 상담 로봇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한 에너지 위기 가구에 직접 전화를 걸어 에너지 바우처 사용 방법을 안내하고 민원인의 전화는 민원 전화 데이터를 학습한 AI보이스봇이 응대한다. 공단은 이를 통해 전화상담실 인입 통화수가 8만건 이상 감소했고, 에너지바우처 사용률도 5% 이상 개선된 것으로 추산했다.
클라우드 기반 업무 인프라를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환으로 NHN의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기반 협업·소통 도구 '두레이'를 도입했는데, 업무 환경 개선에 대한 직원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메일·드라이브 등이 자동으로 연결돼 업무관리, 소통 편의성이 개선됐다. 마일스톤 및 보드 등을 활용해 쉽게 업무 현황을 파악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한 결과다.
생성형 AI기반 가상 비서 '쎄쌤'도 업무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가상 비서 도입 논의가 시작됐을 때 외산 엔진을 사용할 경우 내부 주요 자료 유출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공공기관 도입 선례도 없어 성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우려가 있었다.
공단은 보안인증(CSAP)를 획득한 네이버의 클로바 엔진을 도입한 뒤 질의에 대한 추가 학습을 못하도록 막고 규정 및 보고서 등 공단의 자료를 학습시킬 별도의 챗봇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과 사전협의를 통해 정부 기관 기준에 부합하는 보안 체계를 확보했다.
올해 2월 본격적으로 가동한 쎄쌤은 공단 자료를 주제별로 배우고 전문 답변이 가능한 수준으로 진화했다. 공단은 인사·계약·조직·출장 규정도 학습시켜 서비스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쎄쌤 도입으로 인한 규정 문의·검색과 관련한 업무 시간 절감 효과는 연간 81일에 달할 것으로 봤다.
에너지공단은 에너지 마이데이터를 한 곳에서·한 번에 제공하기 위해 한국형 그린버튼 플랫폼도 구축하고 있다. 그린버튼은 소비자가 전기·가스·집단에너지 등 에너지 사용량을 손쉽게 온라인을 통해 확인하고, 자신의 에너지 사용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다.
에너지 공급사별·에너지원별로 관련 데이터가 흩어져 있어 에너지 수요 예측이 어렵다는 지적이 따르면서 통합 정보 제공의 중요성이 커졌다.
공단은 3800여개 에너지다소비기업과 550여개 공공기관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 모니터링·분석해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등에게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곧 다양한 에너지 절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정보로 활용된다.
에너지공단 관계자는 “데이터를 표준화해 융합하고 이를 제공함으로써 에너지 수요 예측은 물론 다양한 에너지 절약 사업을 기획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 에너지 정보 개방도 속도
공단은 앞으로 에너지 데이터 품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개방의 폭도 넓힐 계획이다. 공단이 이른바 에너지 분야 마이데이터 중계기관으로 거듭나 에너지 데이터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다양한 에너지 신사업이 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 별로 흩어져있는 데이터를 한 곳으로 집결시키고 데이터 명세와 함께 국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해 나갈 예정이다.
또 디지털 기반의 업무 프로세스도 지속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기관간 데이터 연계를 확대해 각종 행정에 필요한 첨부 서류를 제로화해 나가고 있다. 각 기관이 수집·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연계해 국민이 서비스를 쉽고 간편하게 이용·신청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공단 관계자는 “계약과 관련한 종이서명은 클라우드 기반 전자서명으로 대체하는 등 계약서류 작성 및 서명과 관련한 모든 과정을 디지털화할 예정”이라면서 “공단 업무는 물론이고 공단 행정을 이용하거나 에너지 정보를 얻으려 하는 모든 고객의 편의를 극대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