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독거노인 위한 ‘에스크로 보호막’ 시급하다

2025-06-30

현정석 제주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논설위원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고, 그중 상당수가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가는 독거노인이다. 문제는 이들이 금융자산을 보유한 경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재산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독거노인은 인지 기능 저하와 치매, 거동의 불편, 디지털 기기 활용의 어려움 등 제약이 많다. 병원비 결제, 대중교통 이용 등 일상적인 소비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다. 더욱이 고령 독거노인을 향한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부당계약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독거노인이 법적으로는 ‘의사능력자’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판단력이 떨어진 ‘의사무능력자’ 상태에 놓이기 쉽다. 독거노인의 경제활동을 제도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회색지대’가 생기게 된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독거노인에게는 일상적인 소비뿐만 아니라 법적인 경제활동에도 큰 제약이 따른다.

우리나라는 2023년 65세 이상 치매 환자가 124만명을 넘고, 이들의 평균 자산은 2억원이다. 전체 자산은 153조원 규모로, 2050년에는 48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치매 머니’가 사회 전체의 큰 위험이 된다. 현재의 법적 제도는 이러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 신탁이나 성년후견인 제도는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으며, 독거노인 다수는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맞춤형 에스크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보내고 물건을 받아야 하는 인터넷 거래에서는 거래 위험이 매우 크다. 거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 전자상거래는 믿을 수 있는 제3자를 끌어들이는 ‘에스크로(escrow)’ 시스템을 고안했다. 에스크로란 중립적인 제3자가 자금을 일시 보관하고, 거래 조건이 충족될 때만 이를 이전하는 구조이다. 에스크로를 독거노인의 경제활동에 접목하면 독거노인을 보호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에스크로 시스템은 고령자의 경제행위를 두 영역으로 나누어 설계할 수 있다. 첫째는 상속, 증여, 부동산 처분 등 고위험 법률행위다. 이 경우 공증된 제3자의 이중 확인이나 법원의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한다. 둘째는 병원비나 공과금, 생필품 구매 등 소액 결제의 경우에는 ‘다중서명 기반 디지털 에스크로 지갑’이 적용가능하다. 고령자의 전자지갑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결제할 때는 본인 외에 공공기관이나 사회복지사 중 1인의 추가 전자서명이 있어야만 인출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이상 거래 탐지 기술이 결합되면 강력한 보호가 생긴다. 심야 고액 송금이나 낯선 계좌로의 이체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거래를 중단하고 경고를 보낸다. 인공지능 기반 인지 추적 기술을 활용하면 금융 행동의 변화로 치매 초기 징후를 포착하고, 사기를 예방할 수 있다.

일본은 이미 가족 신탁, 성년후견인 제도, 가족 서포트 계좌를 통해 고령자의 자산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거나 믿을만한 가족이 없는 독거노인의 경제 활동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는 미흡한 상태이다. 우리나라가 고령자도 안전하게 경제적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반의 맞춤형 보호 장치, 즉 에스크로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