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마당놀이 모듬전’ 내달 30일까지
‘원조 스타’ 윤문식·김성녀·김종엽 출연
공연 시작 시간은 15분 남았는데 배우들이 시끌벅적하게 무대로 진입했다. 배우들은 하나에 4000원 하는 엿을 팔았다. 현금을 거의 쓰지 않는 시대지만,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의 원형 무대를 감싼 객석의 관객들은 어딘가에서 주섬주섬 현금을 꺼내 엿을 사서 곧바로 먹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본공연이 시작됐다. 배우들이 돼지머리 올라간 고사상을 내왔다. 배우들이 절했고 관객도 나와 절했다. 공연 중 먹는 사람, 화장실 가는 사람, 뒤늦게 입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수선하지는 않았다. 무대 위 배우들이 춤과 노래와 흥으로 분위기를 충분히 휘어잡기 때문이다.
마당놀이에 ‘시체 관극’(시체처럼 꼼짝 않고 관람하기. 뮤지컬·연극 등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관람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뜻함)은 당치 않다. 공연이 마무리될 즈음엔 춤을 추는 배우들이 관객 손을 잡아끈다. 막춤이든 어깨춤이든 추고 싶은 사람은 추면 된다. 좋아하는 배우와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관객이 무대에 난입하는 커튼콜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고, 공연 전과 후의 구분이 없다. 내향인이라면 1열은 피하는 것이 좋다. 배우들의 ‘집중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마당놀이 모듬전> 기자간담회에서 손진책 연출은 연극이 영어로 ‘플레이’(play·놀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관객은 마음만 열고 오면 된다. 아무런 사전 준비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마당놀이 베테랑 배우 윤문식은 “마당에서 탯줄 태우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상여 나갔다. 마당은 ‘바로 오늘 여기’다. 좀 건방지게 얘기하면 가장 한국적으로 잘 만들어진 놀이문화가 마당놀이”라고 말했다.
<마당놀이 모듬전>은 <심청이 온다> <춘향이 온다> <놀보가 온다> 등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마당놀이 대표작을 엮은 ‘종합선물세트’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첫날밤을 보내려는 순간 지팡이 짚은 심봉사가 눈치 없이 끼어들고, 심술쟁이 놀보의 잔치에 장원급제한 이몽룡이 나타나 엄벌을 내리는 식의 뒤죽박죽 이야기가 펼쳐진다.
1981년 MBC 창사 20주년 기획으로 처음 선보인 마당놀이는 공연장 문화체육관에서 정동길까지 관객이 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기에, 요즘 각광받는 ‘이머시브 공연’의 성격도 있었다. 2010년 30주년 기념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던 마당놀이는 2014년 국립극장에서 부활해 연말연시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이번 마당놀이는 2020년 <춘풍이 온다> 이후 4년 만의 공연이자, 국립극장 마당놀이 10주년 기념작이다.
특히 마당놀이 원조 스타 윤문식(81)·김종엽(77)·김성녀(74)가 각각 심봉사, 놀보, 뺑덕으로 특별출연한다. 김종엽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 휠체어에 올라 연기했고, 결혼식도 1984년 마당놀이 무대에서 했다. 윤문식은 아내와 사별한 슬픔을 마당놀이 무대에서 달랬다. 14년 만에 마당놀이에 서는 노장들은 54회의 장기 공연을 ‘원 캐스트’로 소화한다. 아울러 김준수·유태평양·이소연 등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들이 주역으로 나선다.
고전에 바탕하되,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 마당놀이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윤문식은 이번 공연에서 로제의 ‘아파트’ 한 소절을 부른다. 비상계엄이 내려졌다 해제된 다음날 공연에선 “다들 밤새 평안하셨냐”는 인사말부터 나왔다. “나라 꼴이 이런데 노래가 나오냐”는 한 배우의 타박에 “이럴수록 더 크게 노래해야 한다”고 되받는 대목이 이어졌다. 심봉사가 심청을 위해 젖동냥할 땐 “저출산이라 젖 구하기 어렵다”는 한탄도 나온다. 다만 한 여성 관객이 자신에게 젖동냥하는 대목에 불쾌감을 느껴 공연 이후 항의했고 제작진은 해당 부분을 수정했다.
손진책 연출과 함께 마당놀이 원조 제작진인 박범훈 작곡가는 “국악의 특징은 가무악(노래·춤·기악)의 어울림이고 그 대표가 마당놀이”라며 “마당놀이 음악은 들려주는 소리가 아니라 보여주는 소리”라고 말했다. 국수호 안무가는 “객석 1면만 사용하는 프로시니엄 무대와 달리, 마당놀이는 4면의 관객이 이해하는 춤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문식은 마당놀이의 특징을 익살스럽게 설명했다. “제가 충청도 사람인데요, 처음에 대전 공연 가서 정말 고생했어요. 관객이 ‘니들은 놀아라, 난 볼 테니’ 하는 거예요. 아무리 재밌어도 안 웃어요, 집에 가서 웃지. 그게 3년 만에 깨지더라고요. 놀이문화는 관객과 어울려야 발전하고 상승합니다.”
<마당놀이 모듬전>은 2025년 1월30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