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적 주말 행사가 있었다. 더운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주 빠뜨리지 않고 하는 행사는, 나는 아버지 손에 들리고 여동생은 엄마 손을 잡고 늦은 토요일 오후쯤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했다. 열어 놓은 장독에서 새어 나오는 조선간장 냄새 같은 익숙한 살림살이의 체취로 채워진 골목을 지나면서 열린 대문으로 이웃집 마당도 힐끔 훔쳐보다 보면 골목이 끝나고 큰 공터가 나왔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아스팔트 도로 옆 인도라 말하기에도 애매한 비포장 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다시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시작해서 생선 비린내같은 익숙한 냄새가 느껴지면 어느새 시장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우리를 발견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재래시장에 가면 또 다른 골목 세상이 펼쳐져 있다.
우리가 생활하던 골목길이 좁은 골목을 기준으로 좌우로 비슷한 모양과 색깔의 철문들을 가진 그만그만한 집들이 마주 보고 있었다면 시장의 골목은 반찬가게, 옷집, 이불집, 그릇가게, 신발가게, 철물점에 국밥집, 분식집 같은 식당가까지 갖추고 있는 일층 평면의 골목 미로로 이루어진 만물 백화점이었다. 안내 표지판도 없는 미로에서 아이쇼핑을 실컷하다가 익숙한 듯 길을 잃지 않고 시장 골목의 끝즈음에 다다르게 되면 지금까지 지나온 일층 건물이 아닌 3층 정도의 높은 건물이 나타나고 건물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동네에 하나 있는 목욕탕이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간 남탕에서는 가끔 비슷한 또래의 한 동네 여자애를 만나는 불상사(?)도 있었다. 온탕에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물 위에는 여러 사람의 몸에서 불어 저절로 탈락한 상피세포(?)들이 둥둥 떠다니곤 했는데 세신사 아저씨는 그물이 촘촘한 잠자리채를 들고 이물질들을 조용히 걷어내곤 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도 못할 비위생적인 풍경이었으나 당시는 아파트 문화도 없었고 다수의 서민 주택에는 샤워 시설을 제대로 갖춘 욕실이 없는 경우가 많았으니 그럴 수밖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이사 간 집에는 욕실이 생겼으나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리지 못하고 한동안은 목욕탕 나들이를 즐겼던 것 같다. 성격이 급했던 아버지는 엄마와 여동생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시장의 단골 만두 가게로 향하곤 했는데 막 쪄서 나온 만두를 호호 불며 짭조름한 간장에 찍어 먹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엄마와 여동생 몫으로 만두를 챙겨가긴 했지만 막 찜기에서 나온 김이 나는 뜨거운 시장 만두 맛은 아버지와 나만이 아는 맛이었다.
필자가 개원해서 20여 년이 넘도록 진료하고 있는 곳은 중소도시 외곽의 서민 아파트를 끼고, 단지 사이에 있는 골목을 따라 여러 가게와 좌판들이 펼쳐져 있는 아주 작은, 시장 골목이 있는 동네다. 처음 개원했을 때만 해도 학교가 끝나는 오후가 되면 아이들 소리가 치과에 가득했으나 지금은 이 지역도 아파트에 빈집들이 늘어가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던 활기는 사라진 지 오래고 내원하는 환자들의 연령층도 60~70대 이상이 대부분인 실정이다. 활력이 떨어진 건 사실이나 많은 환자가 단골이라 사는 얘기를 종종 나눌 수 있어서 좋은 점이 있다.
“왜 식당을 그만두셨어요? 사장님이 하실 때가 참 맛있었는데….” “허리 수술받은 뒤로는 몸도 힘들고 나이도 많거니와 자식들도 그만하라고 원성이라….” “네, 건강이 최고긴 하죠. 암튼 사장님 손맛이 최고였는데… 지금은 거기 손님도 많이 줄었던데….” 이런 대화들이 이루어지면서 동네 골목 상권에 대해서 걱정도 하고 추억도 나눈다.
골목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도시 태생인 사람들에게는 시골 외갓집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모던함과 편의성에 젖어버려서 과거로 돌아가서 살라면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골목이라는 향수가 불러일으키는 알 수 없는 아련함은 심지어 예술적 사유까지 끌어내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진작가 외젠앗제는 파리의 근대적 개발에 앞서 올드 파리를 구석구석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서 지금도 우리가 사진으로나마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가 있고 국내에서는 김기찬 작가가 서울의 사라져가는 골목의 정취를 채집한 사진첩이 여러 권 있다. 작게는 딸의 탄생부터 시집을 보내기까지, 옛 정취가 담긴 한 가족의 개인사를 사진첩으로 묶은 전몽각 교수의 『윤미네 집』이라는 작품도 있다. 특히 정서적 교감이 바탕이 되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뭉클함이 진해져 간다.
팽배해져 가는 개인주의와 소셜네트워크로 소통하는, 정이 소멸하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 골목에서 느꼈던 정(情)적인 교감일 것이다. 술 전 동의서를 표준 약관대로 받고 부작용을 설명하면서 술자나 환자도 서로 불편하고 딱딱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작금의 진료실 환경. 무분별한 SNS 광고의 홍수 속에서 잘못 교육되어 의료쇼핑으로 간(?)을 보러 오는 환자들.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인지 요즘 시장 골목을 조금 걷다가 퇴근하기도 한다. 공짜 눈요기에 말 한마디 잘 섞으면 주인장이 맛보라고 주는 마른 오징어채 몇 가닥 잘근잘근 씹으면서 집에 갈 수도 있다.
며칠 전에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광고를 보고 잠깐 외도(?)를 해서 다른 치과에서 진료를 받고 온 단골 환자분께서 “거기 괜히 갔어요, 멀쩡한 것 같은데 이쪽도 뜯어내고 치료 시작하라고 갈 때마다 부추겨서 불편해서 다시 왔습니다”하면서 이실직고(?)를 하셨다. 아무 말 없이 검사하고 나서 “말씀하신 부위는 아직 괜찮습니다” 라고 했더니 활짝 웃으면서 나가신다.
지금도 가끔 예전 목욕탕을 낀 시장 풍경과 온탕 옆 잠자리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꿈에서 추억한다. 우리는 모두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체를 모르는 심한 결핍을 느끼며 지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과거 골목에 살던 우리에게는 있었지만, 고층 아파트의 초고속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무엇을….
이번 주말에는 아내 손을 잡고 시장 데이트나 가볼까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도 사서 입원해 계신 아버지에게 들려 목욕탕 얘기나 실컷 하고 와야겠다. 아 참, 만둣집 간장도 챙겨가서 정서적 허기까지 단짠단짠 채워볼까 싶다.
■수 상 소 감 / 김정웅 원장================================
미래의 나를 위해 소중한 지금의 순간들을 묵묵히 만들어갑니다
아마도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여기저기에 남겨 두고, 아니 흘리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반복적으로 밀려 들어왔던 목욕탕의 이미지. 단순히 대중목욕탕 하나만은 아니었겠지만, 그 시절의 여러 단편 컷 들 중에는 확연한 이미지가 동네 목욕탕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에 마주하는 골목에 베인 정취였습니다.
수압이 센 높다란 샤워기 아래에 서서 눈을 감고 숨을 참으며 머리를 감던, 그때의 어리숙함이 불러온 촌스러움조차 아빠 미소를 절로 불러일으킵니다. 신기하게도 거품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정신없이 샴푸를 하고 있는 꼬마 아이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면서 말이죠.
나는 그때의 어리숙한 나를 지금 그리워하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두고 온 유년 시절에 떨어뜨린 파편들, 현재의 나는 분실된 유년을 아니 유년의 자아를 본능적으로 찾는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이나 슬픔이 있으나 사실 가져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지점에서 더 반짝일, 남겨 두고 온 여름날 해변의 조개껍데기처럼 그대로 남겨 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겁니다.
매일 반복되는 좁은 치과 진료실에서의 일상은 작은 진료 체어 옆에 앉아 소우주인 여러 환자의 입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그 반복된 일에는 가끔 연민에 가까운 안타까움이 공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공존에 흔적을 남기며 미래의 내가 추억할 또 다른 편린들을 만들어감에 무한한 우주의 애정을 가져 보기로 합니다.
지금의 나를 여기저기에 살짝 숨겨 놓는 작업, 이로써 현재를 기리는 방식은 미래 시점의 나를 위해 소중한 지금의 순간들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짝이던 많은 순간과 작별들의 시작과 끝은 정해지지 않은 삶의 궤도라는 것 또한.
치과 진료 공간에서 나를 슬쩍 흘려 놓기. 조금은 지루하고, 힘들기도 한 일상일 테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기 위한 또 하나의 히든 게임을 한번 해 보실래요?
저는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남겨보려 합니다.
먼 훗날 발견하더라도 그 자리에 두고 싶은 존재를.
핸드피스를 들고 오늘도 소우주를 향해 “아 해 보세요”를 주술처럼 무한 반복하는, 은하처럼 순수한 꿈을 꾸며 묵묵하게 진료에 힘쓰고 계신 모든 치과 선생님들과 함께 시작한다면 더 좋겠습니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주신 치의신보 관계자분들과 치의신보 애독자님, 여수시 치과의사회 회원님들 그리고 제 삶의 모든 순간에 조용히 곁을 내주고 있는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