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4-05

2004년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에는 “탄핵 결정에 필요한 재판관 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재판관 9명 중 ‘노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이가 있었지만 정족수(6명 이상) 미달로 기각됐다는 의미다. 당시에는 헌재가 다루는 각종 사건들 중 탄핵심판과 위헌정당해산심판에 한해 소수의견 공표를 금지하는 법률 규정이 있었다. 헌재 선고 후 재판관들이 기각 6명 대 탄핵 3명으로 갈렸다는 얘기도 흘러나왔으나 헌재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다만 국회는 2005년 헌법재판소법을 고쳐 탄핵심판 및 위헌정당해산심판의 경우도 소수의견이 있으면 반드시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탄핵심판 실명제’라고 하겠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를 당하며 재판관들이 몇 대 몇으로 갈릴 것인지 관심이 컸다. 이듬해 2017년 3월 재판관 1명이 결원인 채 헌재가 선고를 단행했다. 결과는 8명 전원일치 파면이었다. 아무도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수의견을 내지 않은 것이다. 지난 4일 헌재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도 마찬가지였다. 전날까지도 8 대 0, 4 대 4, 6 대 2 등 온갖 예상 스코어가 난무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재판관 8명이 전원일치로 탄핵소추를 인용했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소수의견이 나오면 그것이 곧 불복의 빌미가 돼 국론 분열이 극심해질 것이란 재판관들의 우려가 담긴 결정으로 풀이됐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그런 적이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건 개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사건을 수사하던 특별검사팀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닉슨이 참모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 확보가 필요하다고 여겨 백악관에 그 제출을 명령했다. 닉슨이 ‘절대 불가’ 입장을 취한 것은 당연했다.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으로 갔다. 1974년 대법원은 표결 끝에 대법관 9명 전원일치로 “닉슨의 육성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특검에 증거물로 제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부 대법관이 소수의견 피력 의사를 밝혔으나 대법원장과 선임 대법관들은 “국론 분열을 막아야 한다”며 전원일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끝에 결국 관철했다. 판결 후 얼마 지나 닉슨은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윤 전 대통령이 헌재 선고로 파면되고 하루 지난 5일 북한 노동신문이 이 사실을 짤막하게 보도했다. 독재 국가인 북한 주민들이 보기에 지도자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점도 놀라운데, 그 지도자를 국회가 탄핵소추하고, 또 헌재 결정을 거쳐 파면까지 할 수 있다니 여간 신기하지 않을 것이다. 기사 내용을 보니 “재판관 8명의 전원일치로 채택된 결정에 따라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즉시 파면됐다”는 구절이 있다. 애초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없는 북한 사회에서 전원일치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 헌법재판관과 국민이 이해하는 ‘전원일치’와 북한 주민들이 받아들이는 ‘전원일치’는 전혀 상반된 개념일 듯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