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기 대선으로 차기 정부의 미디어 정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미국에서 거세지는 '레거시 미디어' 규제 완화 움직임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블랙아웃(재전송료 갈등), 지상파 소유 지분 완화 등 한국과 유사한 쟁점을 둘러싼 논의가 미국에서도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글로벌 규제 흐름 변화는 한국의 미디어 정책 재설계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FCC, 방송 규제 전면 재검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난달 방송·통신·기술 전반의 낡은 규제를 정비하겠다는 'Delete, Delete, Delete(Delete Docket)'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브렌던 카 FCC 위원장이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의 연장선에서 추진되고 있다. FCC는 오는 28일까지 공개 의견을 수렴한 뒤 재전송 동의권, 방송사 소유 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관련 규제 형평성 등 핵심 정책의 폐지 또는 수정을 본격 검토할 예정이다.
미국 위성방송 사업자 에코스타도 이에 발맞춰 지난 10일 FCC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에코스타는 재전송 협상이 결렬돼 지역 지상파 채널을 송출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상황에서 동일 네트워크의 타 지역 채널을 대체 송출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전미방송협회(NAB)도 동일 시장 내 방송국 복수 소유 제한 완화를 요구하며,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는 소유 규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마트한 미디어 규제 재설계”…차기 정부 과제로 부상
미국의 규제 완화 흐름은 한국 미디어 제도 개편 논의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에서도 유료방송 재전송료 갈등, 프로그램 사용료 산정 기준, 블랙아웃 발생 시 대체 채널 편성 문제 등 구조적 문제들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FCC의 규제 개편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정책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어, 국내 콘텐츠 유통 환경 전반에 외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전통 방송 중심의 규제 체계에 고착돼 있다. OTT,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FAST), 스트리밍 기반 콘텐츠 등 신유형 서비스에 대한 제도적 정의나 규제는 사실상 공백 상태다. 플랫폼 간 형평성, 기술 환경 변화, 콘텐츠 유통 등 산업 전반에서 구조적 대응 한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는 “최근 미국의 미디어 규제 완화는 플랫폼과 콘텐츠 간 관계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한국 미디어 산업도 재전송료 분쟁, 블랙아웃, OTT 규제 공백 등 유사한 과제를 안고 있어 에코스타의 유연한 접근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지금, 공공성과 산업 경쟁력, 플랫폼 간 형평성을 고려한 스마트한 미디어 규제 재설계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