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여정
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 | 이송찬 옮김
이김 | 432쪽 | 2만2000원

지구는 무엇이 특별하기에 생명을 잉태한 행성이 됐나.
호주 시드니대학교의 과학사 교수이자 생물철학자인 저자는 ‘환경이 생명을 만들었다’는 관점을 뒤집어 “생명이 ‘살 만한’ 지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38억년 전 탄생한 유기체, 남세균은 광합성을 하며 산소를 내뿜었다. 산소는 수십억년간 쌓여 대기를 형성하고 지질을 변화시켰다. 그사이 세포에 불과했던 생명은 분화를 거듭하다가 다른 존재로 변이했다. 행동과 사고를 할 줄 알게 된 존재는 대대로 유전적·문화적 특성을 전수하며 종(種)을 형성했다.
미생물-식물-새를 거쳐 인간이 속한 영장류까지. 저자는 생명의 나무의 큰 분기들을 짚어가며 이들이 지구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선정한 ‘2024년 최고의 논픽션 50선’에 오른 이 책은 저자의 ‘의식 3부작’ 완결편이다. 그는 전작 <아더 마인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만난 문어의 의식을 탐구했고, <후생동물>에서는 동물 전반의 의식을 논했다.
이번에도 호주 샤크베이 등 각지에서 생명체를 관찰한 저자의 경험담이 녹아 있다. 그는 새들의 정교한 둥지 짓기에, 케냐 마사이 마라에서 본 치타 무리의 아름다운 연대에 감탄한다. 타종의 특출남을 말하면서도 인류가 지구의 지배적인 종이 된 이유를 인간의 문화와 언어에서 찾는다.
과학자가 아닌 과학 논문을 탐독한 철학자의 관점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그는 이 땅을 거쳐간 모든 생명체의 합주물인 지구에서, 인간이 비인간동물을 대할 때의 윤리적 태도를 제시한다. 지구의 환경을 전례 없이 빠르게 변화시키게 된 인류에게는 공존을 고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내가 저 동물로 태어난다면, 태어나기를 택하겠는가?’라는 기준으로 ‘살 만한 삶’이 생명체에게 보장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