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깊어질수록 나뭇가지 끝 꽃은 지고, 연초록 이파리들이 새롭게 커간다. 늘어진 복숭아꽃 가지 위에서 딱새 한 마리 맑고 높은 목청으로 노래한다. 머물고 있는 수행도량 뜨락에 수령 30년쯤 된 붉은 영산홍과 자산홍, 하얀 철쭉들 10여 그루 구해 심었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얼굴엔 미소 절로 가득하고 마음엔 활짝 꽃이 피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스님은 왜 꽃나무를 심으세요?”
스님이 대답했다. “꽃을 보며 화내는 사람은 없지요! 모든 사람이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어요. 꽃처럼.”
마음 비워야 꽃이 아름다운 법
분별 욕심을 버리고 둘러보라
모두가 날 향해 꽃을 들고 있다

30년 전쯤 초의선사가 심은 영산홍 한 뿌리를 구해와 미황사 대웅전 앞 화단에 정성껏 심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는 일이 서툴러서인지 나무가 몸살을 해서 여러 해 노심초사하며 가까스로 키워냈다. 봄이면 붉은 영산홍 꽃이 고귀하고 아름답게 피어났다. 나들이 온 사람들은 활짝 웃으며 앞 다투어 사진을 찍었다. 스님이 애써 차를 달여주지 않아도 꽃과 향기가 저절로 손님 대접을 했다. 그뿐이랴, 부처님오신날 따로 꽃 공양을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꽃 앞에서는 내남없이 활짝 웃는다. 저마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고, 함께 온 사람들과 번갈아 온갖 포즈를 취하며 기념촬영을 한다. 친한 이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주거나 SNS에 금방 올리기도 한다. 사진에 찍힌 꽃이라도 꽃을 보면 꽃만큼 웃게 된다.
불가에 ‘영산회상 염화미소’라는 말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연꽃을 들어 보였는데, 가섭존자만이 미소로 대답한 장면을 지칭하는 말이다. 심오하고 어려운 문답 대신 꽃을 들어 진리를 전하고 빙그레 미소로 받아들이는 이심전심의 모습이다. 이 순간 꽃을 든 부처님이나 미소 짓는 제자나 마음은 같은 지점에 있다. 그 마음은 분별로 인한 욕심이나 꺼림도 아니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도 아니고,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 정보로 얻은 어쭙잖은 알음알이도 아니다. 일체의 분별이 사라진 ‘0’인 마음 그대로이다. 그 마음을 본성이라 하고, 늘 깨어있는 중도의 마음이라 한다. 이렇게 언제나 중심을 잡는 사람이 도인이고 깨달은 사람이다.
틱낫한 스님을 함께 모셨던 권선아 선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새 책을 번역해서 출판하는데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이다. 국내에서는 출간되지 않은 틱낫한 스님의 『How to Live When a Loved One Dies(가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상실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한 틱낫한 스님의 치유서이다.
가제본 책을 읽다가 나에게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겪었던 큰 아픔이 두어 번쯤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 번은 출가한 지 2년이 채 안 되어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셨던 때의 기억이다. ‘이렇게 빨리 떠나실 줄 알았다면 출가를 더 미루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은 세 번의 백일기도로 외려 수행 의지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두 번째는 수행의 큰 스승이던 서옹 스님의 입적이다. 그때는 큰 스승의 부재가 수행에 얼마나 큰 장애인 줄도 모르고 그저 망연할 뿐이었다. 이태가 지난 후에야 스님이 남겨주신 숙제를 더 미룰 수 없어서 호기롭게 ‘참사람 수행 운동’을 시작했다. ‘아, 그때 조금만 더 지혜로웠더라면 더 많은 사람의 어려움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있었다. 당시 스승의 부재로 인한 큰 아픔은 고우 스님, 틱낫한 스님, 달라이라마 존자와 같은 큰 스승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틱낫한 스님으로부터는 온전히 걷는 법, 숨 쉬는 법, 먹는 법, 땅과 나무와 새들을 만나는 법, 깨달음을 전하는 법까지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자비의 미소를 짓는 방법도 배웠다.
사랑하고 흠모하는 만큼 소중한 분의 떠남은 폭풍이 나무를 흔드는 것처럼 서럽다. 틱낫한 스님은 “고통스러운 감정이 올라올 때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감정을 보살펴야 합니다.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폭풍이 몰아칠 때 나무 꼭대기에 있는 잎과 가지는 거세게 흔들립니다. 나무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아주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나무의 몸통으로 시선을 가져오면 그것이 매우 평온하고 고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튼튼하고 견고하며 흙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폭풍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가르쳐주셨다.
마음의 몸통과 뿌리는 욕심과 감정과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이전의 평온한 본성의 마음이다.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전 ‘0’의 마음이라야 꽃을 보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꽃을 든 부처님의 마음과 빙그레 미소 짓는 제자의 마음자리가 과연 어떤 경지인지 의문을 품어보라. 분명한 것은 세상 모든 대상이 나를 향해 꽃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봐라! 꽃이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