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성 입증을 위한 임상재평가 만료일을 3개월 앞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퇴출과 부활의 갈림길에 섰다. 제약사는 임상재평가 결과 제출 보고기한 연장 여부를 기다리고 있지만, 일부 제약사는 연장 여부와 무관하게 재평가 실패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2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고 임상재평가 결과보고서 제출기한 연장 사유 타당성과 연장 기간 적정성 등을 심의했다. 이번 심의에서는 제약사가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임상 업무 공백을 이유로 요청한 콜린제제 임상재평가 기한 연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주로 뇌 기능 개선과 치매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된다. 뇌 세포막을 구성하는 성분인 콜린이 부족할 때 이를 보충해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합성을 촉진하고, 뇌 대사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전이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등 일부 시민단체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의약품 허가도 받지 못한 건강기능식품이라고 주장하면서 임상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했다. 또 콜린제제가 최근 고령화로 인해 처방량이 급증하며 정치권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자 이에 따라 효능과 비용 대비 효과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020년 6월 콜린제제 보유 업체를 대상으로 유효성을 입증할 추가적인 임상시험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제약사는 재평가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재평가 임상은 종근당과 대웅바이오 주도로 진행 중이다. 종근당은 퇴행성 경도인지장애와 혈관성 경도인지장애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대웅바이오는 치매 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수행한다. 가장 종료 시기가 이른 종근당의 퇴행성 경도인지장애 재평가 임상은 내년 3월 종료 예정이다.
제약사는 의정 갈등에 따른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로 임상 시험에 차질이 빚어진 점을 임상 재평가 최종 자료 제출 기한 연장 이유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임상시험에서는 대상 환자를 모집하고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전공의는 이 과정에서 환자 교육, 동의서 작성, 일정 조율 등의 실무를 맡는다. 또 임상시험 데이터 수집과 관리를 담당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이후 후기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 실무자 공백이 발생하며 임상시험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제약사 측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의료 공백을 이유로 임상재평가 마감시한이 연장된 만큼 콜린제제 역시 마감시한 연장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앞서 밀레포리움틴크D3 등 13개 성분 함유 주사제의 임상재평가는 자료 제출 기한이 12개월 연장됐는데 의료 공백이 연장 사유로 인정됐다.
콜린제제 임상재평가를 진행 중인 제약사는 자료 제출 기한을 최대 2년 연장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관련 규정인 '의약품 재평가 실시에 관한 규정' 제5조의2에 따르면, 임상재평가 자료제출 기한의 연장을 1회에 한해 요청할 수 있으며, 이때 2년을 초과할 수 없다.
지난 12일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은 공개되지 않아 어떤 의견이 오갔는지 구체적으로 파악되지는 않았다. 식약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나온 의견이 정리되는 대로 임상재평가 마감시한 연장 여부를 공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장 여부와 무관하게 콜린제제 임상재평가 성공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재평가 착수 당시 수출용 품목을 제외하고 255개에 달하는 품목이 대상에 올랐으나 임상 재평가 진행 과정에서 94개사 144개 이상의 품목이 자진취하 등을 선택했다. 현재 재평가를 진행 중인 제약사와 품목은 54개사 111품목으로 줄었다.
이는 콜린제제의 재평가 임상시험 실패시 발생할 수 있는 환수금액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 사이에 콜린제제 임상재평가 실패와 비용 환수를 예상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제약사는 보건복지부와 합의한 요양급여계약 명령에 따라 콜린제제 재평가 임상시험 실패시 보건당국에 임상시험 기간 동안 올린 처방액 20%를 되돌려줘야 한다.
지난해 콜린제제의 외래 처방시장 규모는 6226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지난 2018년 3088억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매출이 늘어난 만큼 5년간 처방액의 20%를 환수할 경우 제약사 환수 금액은 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대웅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비유동부채 중 계약부채 887억원을 인식했다. 올해 들어서만 189억원 증가했다. 대웅은 자회사 대웅바이오의 콜린제제 임상재평가 실패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납부할 금액 추정치를 비유동부채 계약부채에 포함시켰다.
종근당은 지난 3분기 말 비유동부채 중 환불부채 항목에 451억원을 반영했다. 올해 들어 202억원 늘었다. 콜린제제 판매로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나중에 환수해야 할 수도 있는 부채로 미리 인식한 것이다.
제약사는 콜린제제 환수협상 명령을 두고 총 5건의 집단 소송을 펼치고 있지만 지난 10월 종근당외 8명이 제기한 요양급여비용 환수협상 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기각 결정을 받는 등 현재까지 판결이 나온 6건 모두 패소했다. 막대한 소송 비용을 들이고도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패소를 이어가며 소송 이탈자도 늘고 있다.
종근당그룹은 소송 시작 당시 39개 제약사를 포함해 총 원고 47인으로 소송을 시작했으나, 1심 패소 이후 일부 항소 포기 등이 이어지며, 19개 제약사를 포함한 원고 26인만 소송을 유지했다. 대웅바이오그룹 진행 소송 역시 당초 39개 제약사를 포함해 원고 40인으로 소송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24개사와 원고 1인으로 소송 이어나가고 있다.
임상재평가와 집단소송에 따른 비용 부담도 있는 만큼 일부 제약사는 니세르골린, 은행엽제제 등 대체 제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23일까지 허가를 획득한 의약품 품목 수는 총 1156건으로, 은행엽건조엑스 제제가 총 88개 일반의약품이 허가되며 허가 품목 중 두 번째로 큰 비중(7.61%)을 차지했다.
허가 받은 88개 품목은 ▲엔브레스캡슐(씨엠지제약) ▲징코샷포커스온캡슐(대웅제약) ▲메모라임캡슐(성원애드콕제약) ▲메모리아캡슐(한국프라임제약) ▲기넥신메모케어캡슐(에스케이케미칼) 등 5개 품목을 제외하면 전부 고용량(240mg) 제품으로, 고용량 은행엽건조엑스 제제는 뇌기능 개선제 대체약제로 여겨진다.
지난 2020년 첫 허가 이후 지난 2022년까지 총 9개 품목 허가에 그쳤으나 지난해 6개 품목이 추가로 허가되고 올해 승인 건수가 급증했다.
전문의약품 영역에서는 뇌기능개선제 '니세르골린' 제제가 지난해 5개 품목이 허가를 받은데 이어 올해는 현재까지 44개 품목이 신규로 허가를 받았다. 출시된 지 50년 가까이 된 제제이지만 콜린제제 대체제로 부상하며 시장이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박종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의약품 재평가 실시의 경우, 제출기한을 1회에 한해 최대 2년 연장할 수 있어 2027.03월까지 임상 결과 확인을 연장할 수 있다"면서도 "임상적 효능을 입증하지 못한 경우 20% 환수는 불가피하다. 2027년까지 임상 지연될 경우, 해당 기간까지 판매 가능하지만 다른 품목으로의 대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