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염전 노예’가 적발됐다. 최초 고발로부터 10년여 만이다. 특이한 점은 이번에 미국 정부가 관여했단 사실이다. 올해 4월엔 국내 최대 염전인 태평염전에 강제노동 혐의가 있다며 천일염 통관을 금지하는 인도보류명령(WRO)을 내리더니, 이달엔 미국 대사관에서 직접 염전노예 실태조사에 나섰단 보도까지 나왔다. 이를 두고 벽지(僻地) 특유의 지역 민관 유착관계가 강도 높게 비판받았지만, 관점을 국외로 옮기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인권을 근거로 삼는 서방 특유의 비관세 무역장벽이 본격적으로 국내 산업에 영향을 준 사례가 돼서다.
미·중 무역 갈등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시작됐지만,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바이든 정부에서도 대(對) 중국 견제는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2022년에 시행된 신장·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UFLPA)이다. 해당 법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이나 원료는 물론 이를 가공해 만들어진 제품까지 포괄적으로 강제노동의 산물로 규정한다. 표면적으론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막자는 조치지만, 실질적으론 중국이 지배 중인 태양광 패널이나 전기차 배터리, 자동차 부품 등에 대한 적극적 금수(禁輸) 조치다. 강제노동을 명분으로 앞세운 무역 전쟁이다. 구체적 수치를 살펴보자.

실제로 UFLPA에 의거한 선박 압류는 매년 증가 중이다. 시행 이듬해인 2023년엔 연간 4000건 수준이던 선박 억류량은 2025년엔 약 7200건까지 치솟았고, 억류된 선박이 최종 통관 불허되는 비율도 46.2%에서 82.1%로 껑충 뛰었다. 그렇게 억류된 물품 가액만 한 해에 14억 달러(한화 2조원 상당)에 육박하니, 신장·위구르 지역 물품만을 대상으로 삼은 표적 제재로선 상당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포괄적인 범위의 강제노동을 대상으로 발효할 수 있는 조치가 국내 염전이 겪은 인도보류명령(WRO)이다. 결코 가벼운 조치라 볼 수 없다.
값싼 소금조차도 인권을 명목으로 통관이 막힐 수 있다는 건, 비슷한 명분만 들이대면 언제든 동맹국의 핵심 수출품까지도 수입을 막을 수 있단 얘기다. 최악의 경우엔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국내 주력 수출 품목에서도 제2의 천일염 사태가 벌어지는 식이다. 물론 대기업 본사에서 강제노동을 지시하진 않겠지만, 복잡한 하청 구조 말단에서 고용허가제를 빌미로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노동착취 의혹이 계속 불거진다면 해명할 방법이 마뜩잖을 수 있단 얘기다. 국내 어느 기업이 협력사의 노동환경까지 별다른 결격 사유 없이 통제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국내의 ESG 논의가 유독 ‘친환경’에만 집중되는 사이, 서방에선 ESG를 내세운 실질적 무역장벽이 두터워지고 있다. 늦었지만 우리에게도 윤리가 아닌 실리 차원의 ESG 접근이 필요한 때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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