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홈플(上)] 국민 생활 속 함께 한 홈플러스 '28년'…"롤러코스터 기업史"

2025-03-14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투자자와 소비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불안이 날이 갈수록 점증하고 있다. 대형 마트업계 2위에 자리하며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에 보탬이 되고자 고군분투했던 홈플러스의 지난 궤적을 살펴본다. 또한, 2015년 이후 MBK파트너스와 함께 한 홈플러스의 주요한 문제점을 되짚고, 다시 한번 도약의 날개를 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上) 국민 생활 속 함께 한 홈플러스 '28년'..."롤러코스터 기업史"

(中) '최강'의 MBK, '최악'의 위기..."홈플러스의 추락"

(下) "암초 지나 더 큰 암초" 만난 홈플러스...생존법은 결국 '이것'

【 청년일보 】 "홈플러스 플러스, 가격이 착해. 홈플러스 플러스, 행복이 더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TV 속 CM송의 주인공 홈플러스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홈플러스가 지난 4일 밤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기습 신청한 것이다.

특히, 홈플러스는 지난 28년간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형 마트업계 2위 자리를 지켜온 기업이었다는 점에서 이 파장은 시간은 지날수록 증폭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선택한 투자방식에 불안정한 요소가 산재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4일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 승인을 받은 이후에도 납품 대금 지급 연기·주요 상품 납품 일시 중단 등의 문제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홈플러스 사태를 이해하려면 유통업계에서 '홈플러스 탄생 비화'부터 MBK파트너스의 인수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한 시간적 이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변두리에서 업계 2위로"…국민 삶에 '보탬'된 홈플러스

홈플러스의 '뿌리'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홈플러스를 최초로 설립한 기업은 바로 삼성물산 유통부문이다. 구체적으로, 삼성그룹은 1991년 신세계를 그룹에서 분리시킨 후, 유통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1997년 9월 홈플러스 1호점인 대구점을 개점했다.

이때 삼성물산이 투자한 자본금은 약 3천억원으로, 1호점은 대한방직 대구공장 및 제일모직 대구공장 부지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당시 삼성물산은 이미 이마트와 까르푸 양강체제가 구축된 수도권에서의 경쟁을 피해 지방에서 최초의 홈플러스를 개점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홈플러스를 개점한 1997년부터 외환위기(IMF 사태)를 맞으며, 삼성물산의 유통사업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다.

결국 정부의 대기업 사업 구조조정 대상에 홈플러스가 오르게 됐고, 삼성물산은 1999년 4월 영국의 최대 슈퍼마켓 기업인 테스코(TESCO)에 경영권을 포함한 사업지분 49%를 넘기게 된다. 합작법인 '삼성테스코'가 이끄는 홈플러스가 탄생한 것이다.

이때부터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는 그 세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이커머스 시스템을 구축해 '훼밀리카드'를 최초로 발급했고, 2004년에는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에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1호점을 오픈했다.

2005년과 2008년에는 각각 아람마트·이랜드리테일(홈에버)를 인수하는 등 공격적으로 점포를 확장했다.

이 시기 이마트와 양강체제를 구축했던 까르푸와 국내 마트사업에 진출을 시도했던 세계 1위 업체 월마트가 수익성 악화로 국내 사업을 포기했던 것도 홈플러스에게는 큰 기회로 작용했다.

반면, 홈플러스가 업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사이 삼성물산은 되려 유통업계 진출 포기를 결정한다. 이미 점진적으로 홈플러스 지분을 줄여나가던 삼성물산은 결국 2011년 테스코에 자사의 지분을 완전히 매각한다.

테스코가 이끄는 '홈플러스 주식회사'가 출범한 이후에도 홈플러스는 세계 최초의 가상 스토어를 오픈하고, 업계 최초로 알뜰폰 사업에 진출해 '플러스 모바일'을 내놓는 등 탄탄대로를 걷는다. 서울의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구 대치동에 '365 Plus' 1호점을 개점하며 업계에서의 그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실제 당시 홈플러스의 연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약 7천억원 이상으로, 테스코 전체 영업이익의 약 7%를 차지할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 "승승장구의 끝은 '기업회생'"…MBK파트너스의 '무모한 인수'

이처럼 성공 가도를 달리던 홈플러스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홈플러스를 이끄는 테스코의 영국 본사에서 발생한 회계 부정 사태가 그 원인이다.

이 사건을 통해 테스코의 영업이익이 실제의 절반 이하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이에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자산 매각 등 자구책을 요구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신용등급을 정크(junk) 기업 수준으로 강등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국내 시장환경 역시 오프라인 유통업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결국 2015년 홈플러스는 약 7조2천억원(투자업계 추정가)의 매물로 매각 시장에 나오게 됐다. 이때 7조원에 달하는 자금조달 문제로 인수 후보로 거론되던 현대백화점, 오리온그룹 등 전략적 투자자(SI)들은 일찍감치 포기를 선언한다.

이에 홈플러스 인수전은 MBK파트너스, 어피니티PE, 골드만삭스PIA, 칼라일 등 금융자본만이 남게 됐고, 같은 해 9월, MBK파트너스가 우선 협상권을 갖게 된다.

문제는 7조원이 넘는 자본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였다. MBK파트너스는 당시 약 3조2천억원을 펀드와 투자자를 통해 마련하고, 약 2조7천억원은 홈플러스 부동산을 담보로 인수금융을 받아 조성했다.

구체적으로 당시 인수대금 구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먼저 ▲MBK파트너스 3호 블라인드 펀드와 공동투자자(Co-Investor)의 후순위 에쿼티 투자(2조5천억원)을 비롯해 ▲중순위 성격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7천억원) ▲국내 금융기관들이 참여한 인수금융(2조7천억원) 등이다. 이후 남은 약 1조2천억원은 국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저금리로 차환하게 된다.

MBK파트너스의 품에 안긴 홈플러스는 인수 직후인 2015년 1천억원 이상의 대규모 적자를 보게 된다. 그러나, 2016년 회계연도 기준 3천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두고 흑자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EBITDA 역시 6천억원 이상을 기록하며 청신호를 켰다.

같은 해에는 MBK파트너스 인수 이후 첫 점포인 파주운영점(142호점)을 오픈하고, 2018년 창고형 할인매장 '홈플러스 스페셜'을 오픈하는 등 사업 확장에 속도를 높이기도 했다.

MBK파트너스 산하의 흠플러스는 단기간 회복세를 보이는 듯했지만, 쿠팡 등 이커머스의 급격한 성장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홈플러스의 매출은 한때 9조원에 달했지만, 2017년 6조6천억원대로 줄었으며,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30천91억원에서 1천510억원으로 급감했다.

더구나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이러한 하락세가 더욱 빨라졌다. 홈플러스는 2022년 6조4천807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1천335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홈플러스는 영업 적자를 면치 못하며, 작년 기준 5천900억원에 이르는 누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홈플러스 인수 당시 사모펀드 운용사(GP, MBK파트너스)를 믿고 투자한 펀드 출자자(LP)에게 투자금을 상환해야 할 의무와 함께, 인수금융 조달 당시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채무를 상환해야 할 의무가 있는 MBK파트너스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간 홈플러스는 부동산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세일즈 앤 리스백(Sales and Leaseback, 매각 후 재임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약 4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상환했지만, 여전히 3조원이 넘는 상환금액이 남아있다.

결국, MBK파트너스는 자사에 대한 신뢰를 갖고 투자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정상적인 기업 운영을 통한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금 지급과 금융기관에 대한 상환 의무를 이행할 수 없음을 자인한 셈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한 주요 경제단체의 자본시장 전문가는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며 "MBK파트너스의 경우 자사가 가용하는 자금은 최소화한 상태로 LP 등 여타 투자자로부터 7조원대로 추산되는 막대한 금액을 '빚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사모펀드의 본질적인 목표가 아무리 '수익 극대화'에 있다지만, 대형마트라는 소비자 밀접형 업권에 진출할 때에는 보다 수준 높은 사회적, 도덕적 책임 의식을 갖고 이를 투자방식에 적용해야 한다"며 "홈플러스를 기업 회생을 받게 할 만큼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한 것은 MBK파트너스의 신뢰도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자본시장에 정통한 한 학계 인사도 "홈플러스의 기습적인 기업회생절차 신청은 투자자, 소비자 모두를 배신하는 행태"라며 "특히, 블라인드 펀드 방식으로 조성한 자금에 대해 투자한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블라인드 펀드는 투자대상을 정해 놓고 투자 자금을 모집하는 기존 펀드 방식과 달리 투자 대상을 미리 정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펀드를 설정하고 우량 투자대상이 확보되면 투자하는 펀드를 의미한다.

이어 "실제 신한은행, SC제일은행 등 일부 금융권은 당좌거래를 중지하고, 홈플러스 어음을 부도 처리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는 상황"이라며 "유통업권 악화 등 외부 요인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투자자와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자구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청년일보=김원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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