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엔비디아 육성의 선결 조건

2025-04-10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실용주의와 국가주도의 신성장 투자를 내세웠다. 지난달 초 민주연구원 유튜브에 출연해 “엔비디아 같은 기업을 육성해 국민 지분이 30% 정도 되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라고 말한 것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대규모 국부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가 적절하냐는 논쟁은 일단 제쳐놓자. 중요한 것은 우리 현실에서 K엔비디아가 태어날 수 있느냐다. 가로막는 장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예외, 규제 혁파 필수

AI교과서 도입, 교육개혁도 과제

창조적 파괴 있어야 신산업 발전

먼저 노동의 유연화 문제다. 엔비디아는 보상도 많지만 ‘압력솥’에 비유될 정도의 강도 높은 근무로 유명하다. 주 7일 새벽 2시까지 일한다고 한다. 엔비디아가 소환된 것은 아무래도 인공지능(AI) 분야의 대표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가성비가 뛰어난 AI 딥시크를 선보여 충격을 줬다. 중국 기술기업의 근무 형태는 996으로 대표된다.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오후 9시에 퇴근하며 주 6일 근무하는 시스템이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의 임금 수준이 높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 예외도 하지 못한다. 나아가 주 4일 근무를 내세우면 어떻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가. 게다가 저출산으로 학생 숫자는 줄고 있는데, 그나마 최상위권 인재는 의대로 진학한다.

물론 적게 일하면서 창의력을 발휘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 시스템을 확 뜯어고치는 것이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는 올해 9월 오픈AI와 협력해 중등 교육 과정(10~11학년)의 모든 학생과 교사에게 교육용 AI인 챗GPT에듀를 제공한다. 한국은 올해부터 AI 교과서를 전면 도입할 예정이었지만 민주당이 지난해 말 이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가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다시 교과서 지위가 회복됐지만 시·도 교육청별로 입장이 다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디지털 과몰입 등을 이유로 도입에 반대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1대1 맞춤 교육이 가능하다. 가성비가 떨어지는 사교육은 AI로 대체되고, 교육 시장이 글로벌화할 수 있다. 부작용을 어떻게 줄일 것이냐의 문제일 뿐 변화 자체를 거부하기 어렵다. 교육 AI의 수준이 교육의 질을 좌우할 것이다. 자체 AI 교육 도구가 없으면 챗GPT에듀나 중국산 AI를 써야 할 수도 있다.

과도한 규제와 처벌도 문제다. 지난해 8월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텍사스 공장에서 전기기술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사 후 벌칙이 부과됐다는 것만 알려졌다. 한국에선 1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된다. 법 취지로 보면 테슬라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 부산지법이 하청업체 근로자의 사망으로 기소된 건설업체 대표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중처법에 대한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전문성이 부족한 원청업체가 전문성이 있는 하청업체에 업무를 맡긴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중대 재해에 가혹할 정도의 형사 책임을 묻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고 산업 재해는 막아야 하지만, 과도한 처벌은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불법 콜택시 사업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이재웅 전 쏘카 대표에게 4년 만에 무죄가 확정됐지만, 정작 해당 서비스는 2020년 타다 금지법이 시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신산업이 만개하려면 기존 산업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표를 중요시하는 정치권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이해관계를 조정해 신산업이 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선결문제는 외면한 채 K엔비디아의 국민 소유만 얘기한다면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적어도 정권을 잡겠다는 정치 세력이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 후보들 역시 “이재명은 안 된다”만 강조할 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없다. 윤석열 정부가 왜 구조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같은 무모한 정책을 폈는지에 대한 냉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미국과 중국 간 경제 전쟁이 시작됐다. 극적으로 봉합될 수도 있지만 초대형 경제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 방파제를 잘 쌓으면서 K엔비디아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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