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살던 집서 여생을 마치고 싶은 시골노인들

2024-09-24

민족 최대 명절의 하나인 추석 연휴가 끝이 났다. 귀성객들이 떠나 어른들만 남은 마을에서 장차 누가 노인을 돌볼지 생각해본다. 2023년 평균 기대수명이 83.6세인 데 비해 건강수명은 73.1세라니 ‘구구팔팔이삼사(99세까지 팔팔하다가 2~3일만 앓고 죽는다)’라는 말과는 달리 10여년 가까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건강상 일상생활이 곤란한 노인들도 요양원 가기는 싫다지만 가족이 돌볼 수 없으면 결국 집을 떠나 시설에서 쓸쓸한 인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평생을 고된 농사일로 골병이 든 노인들은 더이상 일을 할 형편이 안되면 경로당에 모여 세월을 보내는 게 낙이다. 누가 며칠 보이지 않으면 으레 병원에 입원하거나 요양원으로 가셨다 한다. 낙상사고로 큰 수술을 받은 한 노인은 다행히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고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와서 청소와 목욕 등을 도와준다. 생활이 어려운 노인에게 적은 비용으로 돌봐주니 고맙지만 등급을 받기가 쉽지 않고 서비스 시간도 하루 4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사고가 나면 등급을 받지 못한 노인들은 병원을 거쳐 시설에 입소하게 된다. 올해 봄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느 노인은 간병비 부담 때문에 여섯명이 함께 쓰는 좁은 병실에서 불편하게 지낸다. 집에는 만권장서를 쌓아두고 평생 글을 쓰던 분이지만 책 읽을 공간조차 마땅하지 않다. 집으로 가고 싶지만 의식주며 안전을 걱정하는 자녀들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기약 없는 세월을 시설에서 보내고 있다.

2023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가 973만명에 독거노인 200만명과 치매노인 100만명 등 돌봄이 필요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보험연구원의 연구결과(변해원 외·2024) 가족간병을 걱정한다는 응답자가 77.4%나 되지만 이에 대비하는 사람은 36.1%, 간병보험 가입자는 14.4%에 불과하다. 물론 장기요양재가서비스(2008년)와 재가노인서비스(2010년), 노인맞춤돌봄서비스(2020년) 등 다양한 의료 지원과 복지 제도가 있지만 이들 서비스에 대해 아는 사람이나 혜택을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지방소멸을 막는다고 청년들의 환심을 사는 일에 급급하지만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란 말처럼 지역에 사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누가 찾아오겠는가?

지난 3월22일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대통령은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재택의료 활성화와 장기요양서비스 다양화 등 의료요양서비스에 대한 개혁 의지를 밝혔다. 그동안 돌봄 위주의 노인 지원에 방문의료 등을 접목해 의료와 요양·복지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커뮤니티 케어를 통해 집에서 늙을 수 있도록(aging in place) 지원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의료 여건상 방문의사제도가 작동하지 않고, 사업 주체와 재원이 다른 관련 사업들을 연계하지 못하고 있다.

답은 수요자 입장에서 의료 지원과 돌봄 관련 사업과 제도를 정비하고 행정과 재정으로 책임 있게 뒷받침하는 데 있다. 특히 노인이 많은 농촌은 시설과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공의료와 요양시설을 확충하고 노인통합돌봄모델을 찾는 일도 과제이다. 과연 노인이란 누구이며, 가정과 나라 발전을 위해 어떻게 살아온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라. 요양원 가기 싫어하는 노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존엄한 삶과 은혜를 갚는 도리이자 어쩌면 더 외롭게 늙어갈지도 모르는 우리들의 행복을 위한 안전벨트가 되지 않겠는가.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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