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사고로 형사 재판에 넘겨져 판결을 받은 의사가 연평균 38명이라는 국책 연구기관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는 연 수백명에 달한다는 의료계 주장과 거리가 있는 수치다.
보건복지부는 14일 이러한 내용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를 공개했다. 복지부 용역으로 이뤄진 이번 연구는 의료사고 사법 리스크를 정부 차원에서 파악하기 위한 첫 시도다.
보사연 연구진이 법원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돼 2019~2023년 판결받은 사례는 172건으로 집계됐다. 피고인 수는 192명(의사 170명, 치과의사 12명, 한의사 10명)이었다. 해마다 38.4명이 의료사고로 재판에 넘겨진 셈이다.
해당 수치는 의료계 자체 분석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다. 앞서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은 2022년 보고서를 통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된 의사 수가 연평균 752명(2010~2019년 기준)'이라고 밝혔다. 보사연 연구진은 해당 보고서를 두고 "비의료인 전문직을 명확한 구분 없이 포함했고, 입건된 피의자 수를 재판에 넘겨진 기소 인원으로 잘못 집계했다"고 지적했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192명의 1심 선고 내용을 보면 벌금형이 34.9%(67명)로 가장 많았다. 다음이 무죄(28.6%)-금고형 집행유예(22.9%) 등이었다.
진료 과목으로 보면 정형외과(15.6%)-성형외과(15.1%)-내과(10.9%) 순으로 많았다.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같은 필수의료 과목의 형사처벌 부담이 제일 클 거란 인식과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사 기소 건수만큼 중요한 게 선고 결과와 진료 과목 분포"라면서 "1심에서 실형 대신 벌금·무죄 선고가 많다는 건 환자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기과인 정형·성형외과가 형사 재판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의료사고가 특정 과목에 대한 기피 이유가 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근무한 의료기관 유형은 병원(95명)이 최다였고, 의원(46명)과 한의원(9명), 종합병원(8명)이 뒤를 따랐다. 근무 형태별로는 봉직의가 가장 많았다. 피해자는 신체적 손상(60.4%)과 사망(38.5%) 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의료사고를 둘러싼 환자·의료진 간 불신과 갈등, 이로 인한 소송 등의 문제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정부는 지난 3월 발표한 2차 의료개혁안을 통해 의료사고안전망 구축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의료사고 특화 형사체계 개선 차원에서 수사 장기화를 방지하기 위한 의료사고심의위 구성, 중대 과실 없는 필수의료 관련 사고의 불기소 권고 등이 담겼다.
연구진은 "(분석된) 판례 대부분은 업무상 과실 유무만 판단할 뿐, 과실 정도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 과실 정도에 따라 형사처벌 특례를 달리 적용하려면 법률 등을 서둘러 신설하기에 앞서 그간의 우리 법 현실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연구는 판결문 분석만 이뤄진 만큼 검찰 수사 자료를 비롯한 종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추가 연구 등이 과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