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만 지키고 종로는 버릴 텐가

2025-11-17

정쟁에 휩싸인 종묘(宗廟)를 지난 16일 오후에 가봤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제법 있었다. 판매소 앞에 줄을 서 10분가량 기다려야 티켓을 구할 수 있었고, 들어서자 외국인과 단체관광객 등으로 북적였다.

현재 종묘 경관 논쟁은 인근 세운상가 개발로 밖에서 볼 때 종묘가 안 보인다는 게 아니다. 종묘 핵심 공간인 정전(正殿)을 등지고 남쪽 도심을 바라볼 때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경관이 훼손된다는 거다. 그래서 실제로 해보았다. 국가유산청은 수목(樹木)선 위로 빌딩이 올라오면 경관 침해라는데, 현재도 오른쪽 나무 사이로 멀찍이 건물이 듬성듬성 보였다. 논란의 세운 4구역은 그보다 가까워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대략 9시 방향에 보일 것 같았다. 다만 정면이 아닌 사선 방향으로 빌딩이 좀 보인다 해도, 그게 과연 종묘의 역사성을 퇴색시키는 것인지는 다소 의문이었다.

20년째 방치 슬럼화한 세운상가

종묘 유적 지킨다며 주변은 외면

'문화재 이기주의'에서 탈피해야

솔직히 거슬리는 건 눈보다 귀였다. 대형 스피커를 타고 쩌렁쩌렁 울리는 라이브 트로트 노래에 역사 유적의 고즈넉함은 산산히 깨졌다. 길 건너 세운상가 앞 공터에서 열린 ‘XX협회 신인가요제’란 행사 때문이었다. 상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거 자주 하죠. 여기 오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대개 중장년이잖아요”라고 했다. 8차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종묘-세운상가 부근에선 시위도 잦고, 종교·문화 행사를 내건 이벤트도 빈번해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젊음·힙함·핫플과는 거리가 먼 쇠락한 도시의 풍경이었다.

세운 4구역 정비계획안 고시(10월 30일), 대법원 서울시 조례안 유효 판결(11월 6일) 등에 이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참전하면서 최근 휘발성이 커졌지만, 종묘 보호와 세운상가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20년째 이어져 온 난제였다. 여태 한국 사회는 문화재 보존에 무게를 두곤 했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 등을 거치며 역사 유물이 대거 손상됐고, 70·80년대 개발 지상주의에만 매몰됐다는 자기반성이 작용한 듯싶다. 이에 유적 주변의 서울 구도심 개발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고, 그 중심에 있던 게 종로 세운상가였다.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 준공된 세운상가는 한때 삼보컴퓨터, 한글과컴퓨터 등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극심한 노후화에 흉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2년 전엔 상가 외벽 일부가 떨어져 상인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16일 둘러봤을 때도 특히 세운상가 주변 좁다란 판자촌 골목은 선뜻 지나가기 힘들 만큼 슬럼화돼 있었다. 김종길 세운 4구역 주민대표는 “2009년 이후 9년간 문화재위원회로부터 숱하게 심의를 받았지만, 그들은 ‘불가’라고만 할 뿐 어떤 절충안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여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등 여러 논점이 있지만 종묘와 세운상가 양측 갈등의 핵심은 ‘높이’다. 세운상가는 100m 이상 지어야 사업성이 나온다고 하고, 종묘 측은 경관을 보전하기 위해선 55m(종로변)를 넘겨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초고층 빌딩을 짓는 건 개발업자의 배만 불리는 일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높게 올리지 않고 세운상가를 거듭나게 할 묘안이 있던가. 박원순 전 시장의 ‘재생 프로젝트’는 이미 실패로 귀결되지 않았나. 20여 년간 비토만 하는 건 ‘종묘만 온전하면 그 바깥이 무너지든 말든 난 상관없어’라는 문화재 이기주의는 아닌지 되묻고 싶다.

종묘는 조선 왕실의 사당이다. 한마디로 제사 지내는 곳이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건 조상의 음덕을 받아 현재를 잘 살고자 함이다. 다만 지나치게 과한 제사는 자칫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니 이를 삼가자는 게 최근 분위기다. 이에 따라 허례허식 탈피, 제사 간소화도 나왔다. 종묘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선조를 기린다며 후손의 터전을 망친다면 과연 어떤 조상이 이를 반길까. 과거가 현재를 옭아매선 지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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