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 다니는 것만으로 캠페인” ‘기후위기 교과서’ 이렇게 만들어졌다

2024-09-03

올해 처음 기후위기를 다룬 고교 사회과 교과서 2종이 지난달 교육청 인정을 통과했다. 과목명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세계>다. 한 학기 동안 수업하는 사회과 융합과목으로 인간과 기후변화, 기후정의와 지역문제,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생태전환, 공존의 세계와 생태시민 등 총 4개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인정을 통과한 기후위기 교과서 2종 중 천재교육에서 만든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세계>에는 6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필자 중 한 명인 윤신원 서울 성남고 교사는 지난 2일 전화인터뷰에서 “기후위기는 자연 현상이면서 동시에 사회·경제·정치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며 “이번 교과서는 자연과학에서 시작하는 기후위기 담론을 인문사회과학과 잇는 중간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기후위기 교과서가 나오기까지 3년6개월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2021년 2월 출범한 ‘지리교사 네트워크’에선 기후위기, 생태시민, 환경을 다룬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같은 해 7월 지리교육계는 교육부에 ‘기후위기와 지속가능한 세계’를 과목으로 제안했다. 4개월 뒤 교육부가 사회과 융합선택과목으로 채택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다만 교과목 명칭 일부가 ‘기후위기’에서 ‘기후변화’로 바뀌었다. 윤 교사는 “학생들이 기후문제를 위기로만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의 해법을 찾게 한다는 차원에서도 나쁘지 않은 과목명으로 생각해 수용했다”고 했다.

윤 교사는 2022년부터 교육과정 연구진과 함께 과목의 성격과 목표, 성취기준 등을 마련하는 데 참여했다. 당시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세계> 교육과정을 보면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의 다양성을 이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후재난의 실제 파악’ ‘기후변화에 따른 불평등 문제의 해결 방안 모색’ 등이 담겼다.

본격적인 교과서 집필은 지난해 이뤄졌다. 윤 교사는 “처음 생긴 과목이어서 교과서 밑그림부터 그리는 작업이 간단치 않았다”고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후변화를 둘러싼 현실은 교과서 제작의 가장 큰 난관이었다. 해마다 수정이 어려운 교과서 특성상 한 번에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윤 교사는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기후위기시계’ 같은 경우 교과서 출판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한다”며 “기후변화를 둘러싼 학계 논쟁도 워낙 변화무쌍해서 교과서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좇아가야 하는 상황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올해 교과서 심의 과정에서 ‘조금 더 최신 정보로 넣어달라’는 주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교과서 필진들이 수정하는 절차를 반복했다고 한다. 올해 4월 청소년기후행동이 제기한 기후 헌법소원 공개변론도 사례로 막판에 포함됐다.

교과서는 고교생들에게 기후위기를 둘러싼 회의론, 부정론, 낙관론 중 어느 하나의 입장이 정답이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윤 교사는 “학생들이 현실의 문제점에 공감하게 하는 데 주력했다”며 “그럼에도 서로 차이만 인정하고 끝나면 안된다 생각했다”고 했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쟁적인 사안들은 ‘활동자료’로 제시했다. 학생들은 활동자료를 통해 각기 다른 이해당사자가 돼 주장과 논리를 구성해본다. 교과서는 생태전환적 관점을 제시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와 화력발전소 주변 식당 운영자의 입장에서 기후 정의를 생각해보도록 한다. 또 학생들이 온실가스 배출 1위 국가 원수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한다. 윤 교사는 “각각의 지역에서 발생하는 기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학생들이 자기 고민을 시작하게 하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세계> 교과서 표지의 처음 시안은 빙하가 녹은 곳에 사는 북극곰이 그려진 이미지였다. 그러나 “고등학생에게 북극곰으로 기후위기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에 저자들은 연도별 지구 온도를 표시한 ‘가열화 줄무늬’를 출판사에 제안했고 최종 채택됐다. 윤 교사는 “학생들이 가열화 줄무늬가 표지인 교과서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기후위기 캠페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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