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R&D센터 가보니

지난 20일 오후 서울 금천구 LG전자 가산R&D센터의 HS기능성소재사업 연구실. 열기가 후끈한 ‘미니 용광로’ 옆에서 연구진들이 땀을 흘리며 유리 원재료의 열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부 온도 1500도에 달하는 미니 용광로는 경남 창원 LG전자 공장의 실제 용광로를 100분의 1 사이즈로 줄여 제작한 것이다. 칼슘·은·아연·탄산염 등 기초 소재를 조합해 용광로에 넣고 액체 상태의 ‘유리물’을 만든 다음 이를 식혀 잘게 가루로 분쇄하면 ‘유리파우더’가 완성된다.
김영석 HS기능성소재사업실장은 “유리는 성분 조합에 따라 특성을 무궁무진하게 다양화할 수 있는 물질”이라며 “우리는 LG전자 안에 있는 소재 전문기업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LG전자가 유리파우더 연구를 시작한 건 2006년부터다. 북미·유럽에서 주로 쓰는 전기 오븐레인지 내부에는 금속 표면에 유리질의 세라믹을 얇게 입히는 법랑 유리파우더가 쓰였다. 후발주자였던 LG전자는 레인지 내부에 묻은 음식물이 잘 닦이는 기능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유리파우더를 사다 쓰던 경쟁사들과 달리 LG전자는 직접 소재를 개발하기로 했다. 연구개발 끝에, 2013년 마침내 물세척만으로도 기름때를 쉽게 닦을 수 있는 ‘이지클린’ 오븐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자체 개발 유리파우더를 입힌 성과였다.
김 실장은 “가전회사가 냉장고에 쓰이는 철판을 직접 생산하는 격의,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라며 “내부에서도 ‘우리가 왜 이것까지 해야 해?’라는 반론이 많아서 제품 기술력을 높이며 설득했다”라고 설명했다.

유리파우더 기술력을 축적한 LG전자는 최근엔 기능성 신소재 사업을 키우고 있다. 지난 2023년부터 ‘LG퓨로텍’이라는 브랜드로 유리파우더를 판매하고 있다. LG퓨로텍은 플라스틱·고무 등을 만들 때 첨가하면 미생물에 의한 악취·오염·변색을 막는 항균 소재다. 최근에는 연어 육상 양식기업 에코아쿠아팜과 협력해 연어 양식·가공 환경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고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데 LG퓨로텍을 쓰기로 했다.
추가상품 개발도 한창이다. 물에 잘 녹는 유리파우더의 특성을 활용해 오염물 제거 기능이 뛰어난 세탁세제 원료(‘미네랄 워시’)도 개발 중이다. 계면활성제를 덜 사용해도 돼, 세탁시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실험을 위해 남극에 출장 다녀온 권유석 HS기능성소재사업실 선임은 “한 달간 세종기지 대원들에게 유리파우더로 세탁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세탁 효과 면에서 일반세제와 별 차이가 없다는 피드백을 받았다”라며 “남극에서도 친환경적인 세탁이 가능하단 걸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물고기 대상 독성 테스트에서 물고기가 유리파우더를 지속적으로 섭취하고도 수개월 간 생존했다고도 소개했다. 이를 역이용해 철·칼슘 등 무기영양염 등을 담아 해양 생태계 복원에 활용할 수 있는 ‘마린 글라스’도 개발했다. 해양 탄소 흡수원인 ‘블루카본’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LG전자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고성장하는 기능성 소재 사업을 빠르게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컨설팅기업 키어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유리파우더 시장은 85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김 실장은 “현재 경남 창원에 연 4500톤(t) 규모의 생산 설비를 갖췄으며 베트남에도 생산시설 확충을 검토 중”이라며 “사업 3년 만인 내년에는 첫해 매출의 10배를 낼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