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1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25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유치하겠다고 가장 먼저 나선 도시는 경북 경주시였다. 경주는 경북도와 함께 2021년 일찌감치 회의 유치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정작 공모가 시작된 지난해 4월, 제주시와 인천시가 잇따라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경주의 유치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 걸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와 인천의 마이스(MICE) 인프라가 경주보다 한참 앞서있기 때문이다. ‘마이스’란, 큰 규모의 회의와 여행, 전시 등을 가리키는 용어로 많게는 수만 명이 도시를 찾아 일정 기간 머물면서 다양한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뒷받침하는 하나의 산업이다. APEC 정상회의와 같은 대규모 국제회의를 치르려면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모일 수 있는 회의장은 물론, 이들을 먹이고 재울 식당과 호텔이 필요하고, 여기에 더해 공식 일정이 끝나고 그 도시와 나라의 역사ㆍ자연, 문화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독특한 장소도 필요하다. 이른바 ‘유니크 베뉴’다.
제주엔 무려 4300명 규모의 대회의장을 갖춘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 더해 올해 8월엔 6000석 규모의 회의실을 갖춘 제주MICE다목적복합시설이 준공을 앞두고 있다. 또 특급호텔만 무려 39개에 달한다. 인천도 못지않다. 인천엔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이 자리하고 있고, 마이스 인프라가 집중된 송도국제회의복합지구도 조성돼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모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고 경주가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 도시로 최종 선정됐다. 이유가 뭘까.
대형 컨벤션센터와 특급 호텔이 마이스 산업 경쟁력의 전부이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경주시가 APEC ‘정상회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국빈 공식 만찬을 호텔이 아닌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기로 한 데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드러난다. 경주시는 국립경주박물관이 회원국 정상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와 수준 높은 유산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봤다.
틀에 박힌 크고 세련된 시설들에서 벗어나 그 도시만의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들로 마이스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등장한 것이 이른바 ‘타운 마이스’란 개념이다. 작은 도시, 또는 마을의 시설과 상점, 서비스를 하나로 엮어 회의와 여행, 전시 등의 행사를 유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수만 명을 한꺼번에 받을 수는 없지만, 수십에서 백여 명 정도는 거뜬히 수용할 수 있으니 점점 인구가 줄면서 활기를 잃어가는 지방 중소도시에선 이 정도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실제로 충남 공주시 중학동 제민천 일대 마을에선 지난해에만 150건이 넘는 타운 마이스 행사가 열렸다. 컨벤션센터는 물론 번듯한 호텔 하나 없는 작은 마을에서 식당, 카페, 책방, 갤러리, 여행사 등 70곳에 달하는 업체가 힘을 모아 150명이 넘게 모이는 행사들도 치러냈다고 한다. ‘타운 마이스’ 프로그램으로 생활인구가 늘면서 가게들도 하나둘씩 늘어 죽었던 상권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 견줘 마이스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전북의 도시들이 눈여겨봐야 할 사례다. 마침 전주에 컨벤션센터가 들어선다고 하니 익산을 비롯한 주변 지역의 다양한 매력을 엮어 타운 마이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 둘을 연결한다면 수도권 대도시나 제주가 줄 수 없는 전북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윤찬영 대표는 익산역 앞 원도심에서 북카페와 함께 ‘문화살롱 이리삼남극장’을 운영하고 있고, 여행사 ‘한레일트래블’ 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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