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부터 실험미술까지…韓대표작 한자리

2025-04-02

1970년 4월 4일 서울 인사동에서 문을 연 현대화랑은 1972년 ‘황소의 화가’ 이중섭의 작품을 전국 각지에 수소문해 모아 15주기 기념 회고전을 연다.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 덕에 당시 100원이었던 입장료만으로도 큰 수익을 올렸던 박명자 현대화랑 회장은 수익금으로 이중섭의 작품 한 점을 사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 박 회장은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과도 친분이 깊었다. 박수근은 박 회장에게 ‘네가 결혼하면 그림 한 점을 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51세에 작고한 화가의 약속은 아내 김복순 씨가 지켰다. 김 씨는 박 회장에게 ‘굴비’를 선물했고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박 회장은 경기 양구에 박수근미술관이 문을 열자 소장하고 있던 ‘굴비’를 포함해 동시대 작가의 작품 55점을 기증한다. 박 회장이 기부한 ‘굴비’는 초창기 예산 부족으로 박수근의 주요 작품을 소장하지 못하고 있던 미술관이 소장한 첫 유화 작품으로 기록됐다.

4일 개관 55주년을 맞는 국내 최장수 상업 화랑 갤러리현대가 쌓아온 시간의 기록들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를 이룬다. 갤러리현대는 작가 발굴과 후원이라는 화랑의 본질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김환기·유영국·박서보·이우환·백남준·김창열 등의 가치를 알아봤고 박현기·이강소·이승택과 같은 실험미술가들을 발굴했다. ‘55주년 :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라고 이름 붙여진 특별전은 얼핏 수수해 보이지만 더도 덜도 없이 정확하게 갤러리현대의 정체성을 설명해준다.

특별전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인 현대화랑과 신관 전체에 걸쳐 1·2부로 나눠 열린다. 다음 달 15일까지 열리는 1부 전시만 해도 공개되는 작품이 총 230여 점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며 전시 공간별로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등 스타일도 다채롭다.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은 모두 갤러리현대와 인연이 깊은 작가들의 작품이다. 본관은 ‘한국 1세대 서양화가’로 분류되는 이중섭·박수근·도상봉·임직순을 비롯해 한국 추상을 대표하는 김환기·장욱진·이대원·최영림 등 24명의 대표작 50여 점으로 꾸며졌다. 현대화랑이 문을 연 1970년부터 1975년까지 매년 개인전을 열었던 ‘라일락 화가’ 도상봉, 박 회장이 현대화랑 설립 전 근무했던 반도화랑의 운영자이기도 했던 ‘색채 화가’ 이대원은 특히 인연이 깊은 작가들이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결합한 독자적 화풍으로 주목받은 천경자와 박생광, 박래현의 작품도 본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관에서는 2세대 화랑주인 도형태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관여한 뒤 전개된 한국 실험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도 부회장이 유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한국 국적의 해외 거주 작가들, 이른바 ‘디아스포라’ 작가 12명의 작업들도 이곳에서 소개된다. 전후 일본에서 살며 한국 실험미술의 원류를 개척했다고 손꼽히는 곽인식과 곽덕준의 작업을 시작으로 한국 미니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알려진 박현기의 대표작 ‘도심을 지나며(1981)’ 등이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진다. 특히 곽덕준을 세계에 알린 작품 ‘대통령과 곽’ 연작 10점을 한 자리에 모으고 이승택의 ‘비조각’ 연작 108점을 전시장 3개 면에 걸쳐 가득 채운 시도는 미술 애호가라면 놓치기 아쉬울 장관이다.

전시는 다음 달 22일부터 시작되는 2부 전시로 이어진다. 2부에서는 현대화랑이 1970년대 후반부터 집중해온 재불 화가들과 198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소개한 완전한 추상 양식의 대표 화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될 전망이다. 도 부회장은 전시에 대해 “현대화랑의 모토는 언제나 ‘한국 작가를 해외에 알리자’는 것이었다”며 “현대화랑에서 갤러리현대로 확장한 지난 여정을 보이는 동시에 작가군을 넓혀가며 미래로 나아가는 현주소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무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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