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생각은 잡념’ 눈 감고 마주하니 비로소 보였다

2025-05-03

요즘은 집이 좀 더 넓었으면 좋겠다. 방이 딱 한 칸만 더 있거나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차도 한 대 더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 그런데 뱃살은 어떡하지? 조금 답답한 상태로 옷을 갈아입다가 거울을 보면서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 복근은 내 눈에만 보이나? 40대에도 키가 클 수 있나? 이미 황당한데 거기서 멈추지도 않았다. 영어 말고 컴퓨터 공학 같은 걸 전공했다면 어땠을까? 아, 퇴사는 하지 말걸 그랬나? 그러다 낮에 들었던 말 한마디가 갑자기 떠오르면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때 못했던 말을 혼자만 생각하면서 상상 속의 말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업로드한 영상에 달린 그 댓글은 살짝 미친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생각이 날뛰듯 하면서 머릿속에 지옥도를 펼쳐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현실이 아니었는데 마음은 진짜로 상하고 있었다. “나… 엉망진창이네?”

해마에 담긴 인생 모든 장면 중

일부만 선택해 삶이라 여기는 인간

내 안에 어떤 이야기가 투사됐는지

알아차린 순간, 전보다 자유로워져

잠깐잠깐 조용해지는 시간 만들어

많은 말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하자

오로지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 위해

결국 울적해지고 말았다. 내일이라고 나을까. 아무 욕망도 충족되지 않은 채 불행에 불행을 보태는 게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일까? 죽어라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왜 나만 이럴까? 좀 행복하면 안 되나? 이 많은 물음표에 답을 구하고 싶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서 명상가 환희지를 찾았다. 말이 나온 김에 왜 불행한 건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마구 물었다. 명상심리연구소를 운영하며 명상앱 ‘코끼리’ 메인 티처로도 활약 중인 명상가 환희지는 이 두서없는 질문에 하나하나 답해주었다.

“먼저 묻고 싶어요. 왜 사람은 항상 나아져야 하죠? 허무주의를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나아지려고 의식적으로 애를 쓰지 않아도 지금을 충분히 살고 있다면 그 자체로 조금씩 더 나아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 적극적으로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나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 열심히 하고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빚지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그 자체로 긍정해야 한다는 거죠.”

실은 모조리 막연했다. 넓은 집은 당연히 좋지만 이사를 내일 당장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무슨 피난처처럼 불안정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좋은 차는 이미 한 대 갖고 있다. 감춰진 복근을 보고 싶으면 (거울 앞에서 투덜대는 게 아니라) 차분히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갈 일이었다. 하물며 퇴사 어쩌고 하는 의심은…. 10년 전 일을 오늘 가정하고 새로 돌리는 시뮬레이션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대화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인간은, 제 관점에서의 인간은 그냥 이야기예요.”

“이야기에 빠져들고 좋아한다는 뜻인가요? 천일야화처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해마에 모아둔다고 해요. 모든 장면이 녹화돼 있는 거죠. 하지만 그 모든 장면들, 모든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있는 사람은 없어요. 전전두엽에서 내가 선택한 장면만을 편집해 세상에 영사하면서 인생을 경험하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은 해마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장면 중 일부를 전전두엽에서 스스로 편집해 완성한 한 편의 단편영화라는 뜻이다. 지금 사는 집에 만족하고 지금 소유한 차를 타면서 행복해하는 장면도 편집의 결과다. 이미 마땅히 존재하는 행복 대신 어떤 연예인의 고래등 같은 빌라와 복근을 시샘하는 나 자신도 스스로 불행한 마음을 이어 붙여 울적한 이야기로 완성한 결과였던 것이다. 생각이 이즈음에 이르니 오히려 희망이 보였다. 애초에 편집권이 나에게 있다면 좋은 장면 위주로 편집해 내내 행복해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명상이 중요하죠. 왜냐하면 알아차려야 하니까. 명상은 내가 내 안에 있는 어떤 이야기를 지금 이 삶에 투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해줘요. 질투와 불행이 내 낡은 결핍. 해묵은 이야기의 투사라는 사실을 알면 거기서도 좀 자유로워지죠.”

그래서 눈을 감아봤다. 접근이 가장 쉬운 건 호흡명상이었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명상법이다. 눈을 감자마자 온갖 잡념들이 치고 들어왔다. 부정적인 감정과 마음의 다툼들이 무슨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 생각은 잡념’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걸 주로 ‘알아챈다’고 표현한다. 다시 호흡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15~20분간 몇 번이고 반복하면 내면의 소리들이 서서히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다. 오로지 내 호흡에 집중함으로써 몰입과 집중을 찾는 방법이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잡념만 바라보다 끝나도 상관없다. 최소한 20분 내내 잡념으로만 가득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오늘 그랬다면 내일은 다를 수 있다. 매일의 경험이 쌓이면 생각의 흐름을 점점 더 능숙히 정제할 수도 있게 된다.

“명상을 하면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는 거예요.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많은 이야기 안에 나를 가둬놓고 사는데,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다 보면 내가 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분명히 보이거든요. 그때야말로 당신이 만들어낸 이야기에서 탈출할 기회를 얻어요.”

삶은 불확실하고 일상은 자극과 반응의 연속이다. 명상은 익숙한 반응의 습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준다. 조금 다른 일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일상이 쌓이면 인생이 된다.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는 행복해지려는 마음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도 있어요. 인간은 다 쾌락을 좇고 원하는 걸 갖고 마음대로 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쾌락의 만족은 반드시 불만족을 데리고 와요. 그래서 행복을 좇으면 결국은 행복해질 수 없거든요. 아이러니죠.”

하지만 순간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의 그릇은 계속 넓어진다. 목표에 이르는 길을 단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길은 목표는 정하되 생각하지 않고 지금을 충분히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다. 무수한 ‘지금’이 쌓이면 성취가 되는 것이다. 명상의 효과를 강조할 때마다 빌 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같은 현세의 위인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집중하고 몰입하면 당신도 성취할 수 있으니까. 명상의 선물은 ‘지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혼자서도 괜찮을까.

“시작할 땐 명상가들의 유튜브 채널이나 코끼리 앱 같은 곳에서 가이드 명상을 꾸준히 들어보세요. 잠깐잠깐 조용해지는 시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거든요. 조용해지면 내 마음속에 말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그 많은 말에 일일이 반응한다는 것도 알게 돼요. 음악도 듣고 싶고 휴대폰도 보고 싶죠. 그거에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그럼 갑자기 올라오는 우울감이나 무기력감 같은 감정에도 반응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사는 거죠. 충실하게.”

지금보다 넓은 집을 가지고 싶어서 지금 집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게 아니다. 복근이 갖고 싶다고 내 배를 싫어할 필요도 없다. 그냥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원고를 얼른 마무리하는 것. 남는 시간에는 운동화를 신고 30분이라도 뛰고 오는 것이다. 그런 태도로 몇 날 며칠을 살아내는 것이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로 살기 위해서, 내 꿈을 이루려고 눈을 한 번 감아 보는 것이다.

■정우성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하듯 가볍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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