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그란카브리오 전기차 폴고레

2025-05-17

예쁜 걸 보면 스마트폰부터 꺼내게 되어 있다. 우연히 좋아하던 연예인을 보거나 네덜란드 어디서 멋진 건축물을 볼 때도 사진이나 영상부터 찍어두는 것이다. SNS에 올리거나 누굴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까.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를 오랜만에 봤을 때의 심정도 그랬다. 뭘까, 이 아름다운 피사체는? 이렇게까지 예쁘면 이건 자동차가 아니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탈리아 소도시 한가운데 놓인 중세 아트피스(art piece)라도 납득할 만했다.

이 차를 세워놓고 촬영하는 동안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사람도 여럿이었다. 손을 잡고 걸어가던 중년 부부는 어떤 브랜드인가 궁금해하면서 보닛 위에 있는 로고를 한참 바라보았다. 윗도리를 벗고 운동에 열중이던 20대 남자들은 지붕을 열고 지나가는 이 차를 보면서 그냥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와, XX 저 차 뭐야 XX 멋있네!” 너무 진심이라 웃음이 나오는 정도의 감탄사.

마세라티는 원래 이런 브랜드였다. 모르는 사람도 돌아볼 정도로 아름답지만 아무나 가질 수는 없었다. 가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금 더 직관적이라고 해야 할까. 관능적이라고 해야 할까. 필요해서 사는 차도, 머리로 생각해서 사는 차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하면 입이 떡 벌어지게 웅장한 소리를 냈다. ‘멋지다’ ‘우렁차다’ ‘짐승 같다’라는 말 정도로는 수식할 수 없는 소리였다. 차를 모르고 소리를 모르는 누구라도 들으면 흥분시킬 수 있는 본능적인 소리. 마세라티도 이 소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엔진 사운드 디자인 엔지니어는 물론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를 자문위원으로 초빙해 악보까지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윙~ 맥빠진 전기박동 대신

내연기관 음역대 그대로

페달 밟기는 마치 악기 연주

마세라티 패기·정체성 살려

럭셔리 그 이상의 매력

하지만 이것도 2018년 즈음까지의 이야기. 2018년 이후 6년간 마세라티의 글로벌 판매량은 약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다양한 이유로 성장한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는 좀 의아한 정도의 역성장이었다. 2013년 즈음에는 축제 분위기였다. 그때 출시한 엔트리급 세단 기블리의 대성공으로 글로벌 판매량이 2배 이상 늘었다. 2012년에 6288대에 그쳤던 글로벌 판매량이 2016년에는 4만대를 넘었다.

너무 많이 팔려도 곤란해지는 것이 럭셔리의 숙명. 기블리의 대중적 성공은 브랜드에 독이 되었다. 특유의 럭셔리가 희석된 것이었다. 새로운 고객과 만나는 대신 진짜 팬들을 잃은 것인지도 몰랐다. 이후 이렇다 할 신차도 없었다.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졌다. 그랬던 마세라티가 대표 모델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의 전기차 버전 폴고레를 출시한 건 지난 4월28일이었다. 일말의 기대도 없었던 봄의 한가운데서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를 시승한 바, 마세라티를 잠시 잊었던 팬이라면 반드시 시승해보기를 미리 권해두고 싶다. 좀 조심해두는 것도 좋겠다. 이 칼럼을 끝까지 읽고 나면 무턱대고 계약부터 넣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폴고레(Folgore)는 마세라티 최초의 전기차에 붙는 이름. 이탈리아어로 ‘번개’라는 뜻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에 이렇게까지 직관적으로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어를 붙일 수 있는 브랜드가 마세라티 말고 또 있을까? 과거의 영광과 미래로의 도전을 한 대의 자동차에 명쾌하게 응축해냈다.

보닛 위에는 마세라티의 로고 삼지창의 존재감이 여전했다. 마세라티의 삼지창은 포세이돈의 무기를 형상화한 것. 포세이돈은 제우스의 작은형이자 제우스에 필적하는 힘으로 바다와 폭풍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제우스, 하데스와 함께 3대 신으로 꼽히기도 한다. 마세라티의 내연기관이 거친 폭풍이나 파도처럼 들렸던 데에는 이런 인문학적 배경이 무의식처럼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 매혹적인 소리를 전기차에서 어떻게 구현했을까? 전기모터는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여느 전기차의 가속페달을 아무리 깊숙이 밟아봐도 ‘윙~’ 하고 맥빠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조용하고 정숙한 실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축복이겠지만, 내연기관의 직관적 뜨거움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진화였다.

그래서였을까? 내연기관 시대를 제패했던 브랜드들이 전기차를 만들 땐 매력적인 소리를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어떤 강박마저 느껴졌었다. 레이스카 소리를 심어놓거나 우주선이 워프할 때 낼 법한 소리를 창조해냈다. 어떤 브랜드는 무슨 전자오락처럼 다채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넣어두기도 했다. 그래도 새로움은 잠시. 그저 오락 같아서 곧 질리고 말았다.

하지만 마세라티는 고집스럽게 해냈다. 그냥 내연기관 마세라티에서 날 법한 소리를 섬세하게 재현해 심어두고는 끄거나 선택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없다. 마세라티 전기차에서는 이런 소리가 나니까 너희는 받아들이라는 식인데 전혀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반갑게 들뜬다.

마세라티 내연기관이 내던 그 멋진 소리와 매우 다르지만 핵심은 공유하는 듯한 소리.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저음역을 담당한다. 가속페달을 밟고 움직이는 정도에 따라 관악기와 타악기를 넘나들며 중음과 고음이 시시각각 다르게 변주되는 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자신감일까? 철 지난 고집일까? 질문에는 의심이 섞여 있었으나, 가속페달을 밟았다 떼기를 반복하면서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좋아서. 악기 같아서. 유일하니까. 마세라티는 마세라티답게, 선택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패기와 정체성을 살렸다.

주행 감각도 흥미롭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폴고레의 최고출력은 778마력, 최대토크는 약 137.7kgf·m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 2.8초. 최고속도는 시속 290㎞다. 가격은 2억8380만원부터다. 여러모로 비현실적인 수치지만 이걸 도로 위에서 다 쓰라는 뜻은 아니다. 넉넉하다 못해 사치스러운 정도의 힘을 갖고 있으니 감당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흠뻑 즐기라는 뜻이다. 오른발로 관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은 소리를 즐기면서, 재즈 세션의 한 축을 담당하거나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마음가짐으로 운전 자체를 만끽하라는 마세라티의 초대장이다.

자동차는 복잡미묘한 공산품이다. 만드는 방식과 역사에 따라 사치품의 영역이기도 하다. 마세라티는 당연히 후자. 머리로 실용성을 따지는 차가 아니라는 뜻이다. 0.001초의 승부를 겨뤄 승리하기 위한 스포츠카도 아니다. 이름 그대로 ‘그란투리스모’라는 정의에 가장 가까운 차다. 여기에 지붕을 열 수 있기 때문에 ‘그란카브리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란투리스모는 영어 그랜드투어(Grand Tour)를 이탈리아어로 쓴 것이다. 그랜드투어는 17세기 유럽 귀족 자제들, 주로 영국 귀족들이 견문을 넓히기 위해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지를 2~3년 동안 여행하는 일종의 장르였다. 장기 배낭여행처럼 수행하는 식은 당연히 아니었고, 가정교사와 수행비서가 동반하는 호화스러운 여행이었다. 자동차 장르로서의 그란투리스모도 비슷하다. 장거리를 최대한 호화스럽고 빠르게 주파할 수 있는 고성능 자동차를 의미하는 단어다.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레이스에서 이기기 위한 차를 만든다. 마세라티도 레이스를 숱하게 제패했지만,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야말로 마세라티의 심장일 것이다. 빠르고 호사스러운 장거리 운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차. 하루에 서너 시간을 내리 달렸어도 내릴 땐 아쉬워지는 감각. 세상에 부침 없는 성장이 있을까? 극복하고 나면 그저 드라마일 뿐이다. 알아보는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마세라티의 힘. 마세라티는 지지 않았고, 그들이 가장 잘하는 걸 다시금 진화시키는 방식으로 보란 듯 돌아왔다.

▲정우성

유튜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파크’ 대표, 작가, 요가 수련자. 에세이집 <내가 아는 모든 계절은 당신이 알려주었다> <단정한 실패> <산책하듯 가볍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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