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는 지금, 종교의 미래를 목격한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공개 직후 글로벌 영화 부문 1위, OST는 빌보드 200 차트 8위에 오르며 K-pop 기반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진정 흥미로운 이유는 그 성과 너머에 있다.
이 세계관에서 콘서트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팬과 아이돌이 함께 벌이는 감정 정화 의식, 즉 현대식 의례, '굿'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과는 콘텐츠 트렌드라기 보다는 SF적으로 보면 '미래 종교 시뮬레이션'의 프로토타입이다.
신은 어떻게 다시 만들어지는가? SF는 종종 신의 부활을 경고하거나 실험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는 인간 진화를 돕는 기술적 신이고, 워해머 40K의 카오스 신들은 인간 감정의 축적이 낳은 감정 신이다.
이렇게 SF의 시선에서 보면 종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상상력의 구조물이다. 그리고 신은 항상 그 사회의 환경을 바탕으로 태어난다. 광야에서 태어난 기독교의 야훼는 엄격한 심판과 계약의 신이며, 계절 순환의 인도에서 태어난 불교는 윤회와 무상에 기반을 두었다. 아즈텍 문명의 신들은 왜 그렇게 피와 태양을 갈망했을까? 중앙아메리카 고산지대의 가혹한 기후 속에서 잔혹한 신을 만들어냈다.
반면 그리스 신들은 바다, 섬, 도시국가로 구성된 다중적 환경에서 질투하고 사랑하고 경쟁하는 인간적인 신들로 나타났다. 이처럼 종교는 감정과 환경의 산물일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신은 자연의 잔혹함과 공동체의 불안을 다루기 위해 생겨났다면, 현대의 팬덤과 콘서트는 디지털 시대의 정서 불안을 다루기 위한 의례가 된다.
현대의 온라인 사회는 더 이상 지역이 아니다. 전 세계가 동시에 불안하고, 동시에 고립되어 있다. 즉, 시간은 압축되고, 감정은 실시간으로 집단화된다. SF적 관점에서 보면, 이 새로운 환경은 '글로벌 무속'이라는 특이한 문화 생태를 낳는다. 이런 조건 속에서 K-pop 공연은 디지털 속 집단 무속 의례이자, 감정 기반 퇴마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K-콘텐츠의 정서 구조와 무속
같은 기간 '오징어 게임'도 여러 국가에서 넷플릭스 1위를 고수했다. 또한, 2025년 현재까지도 넷플릭스 TV 부문 역대 시청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아리스 인 보더랜드'나 '신이 말하는 대로' 같은 데스게임 장르에서 인물과 배경이 한정적인 것과 달리, '오징어 게임'은 세대, 계층, 젠더를 가로지르는 보편적 '한'을 교차적으로 드러낸다.
그 '한'은 분노에서 끝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정'을 나누고, 그 감정은 배신, 희생, 눈물로 이어진다. 이 감정 구조는 한국적 무속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전 세계인에게 통하는 상실과 연결의 리듬으로 번역된다. 90년대 '퇴마록'이 귀신을 타자화하고 퇴마사를 영웅화했다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영화 '파묘'는 퇴마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파묘'의 귀신은 외부 악이 아닌 조상과 공동체 내부의 은폐된 죄와 기억이다. 무덤을 파헤치는 행위는 물리적 제거가 아니라, 억눌린 감정을 드러내는 '굿'이다. 더 나아가 '파묘'는 식민의 그림자와 아시아의 공동 정서를 불러낸다. 한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는 탈식민의 '한'을 감각적으로 건드리며, 귀신은 국가적이고 초국가적인 기억의 형상이 된다.
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주는 퇴마 구조와도 연결된다. 귀신을 쫓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공동체와 개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울어주며 함께 보내는 공진화의 감정 구조가 작동한다. 그들은 SF적 관점에서 보면 미래 사회에서 종교와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실험하는 시뮬레이터다.
이렇게 한국 콘텐츠는 '세계인의 보편적 한'을 건드리고, 마음을 사로잡는 정으로 풀어내는 감정 기술을 갖고 있다. K-콘텐츠의 성공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닌, 감정의 구조를 다루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일본 소니가 제작하고, 미국 넷플릭스가 방영했으며, 한국 감독과 성우가 참여했고, 전 세계 팬들이 동시에 감상했다. 게다가 한국 아이돌의 외형과 음악을 기반으로 한 가상 아이돌이 등장한다. 형식 면에서 이 작품은 국가, 플랫폼, 장르의 경계를 해체한 SF적 프로토타입이다. K-정서를 기반으로 한 초국가적 감정 시뮬레이션의 성공을 보여준다.
신은 돌아왔다. 이번엔 팬덤의 이름으로. 디지털을 통해.
필자소개/ 윤여경
문화기획자이자 비영리 문학단체 퓨쳐리안 대표, SF 스토리텔러. 지난 4년 동안 30여 명의 일반인들(소설가 지망생 및 과학자, 북한이탈주민)을 출판 데뷔 기획했다. 이들 중 많은 데뷔 작품이 문학상 수상이나 문화유공자, 문학 나눔 선정으로 연결됐다. 2017년 '세 개의 시간'으로 제3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제6회 CISFC 과학소설 국제교류 공로 훈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응급실 로봇 닥터'등이 있고, 한국 최초의 챗GPT 소설집 '매니페스토' 기획을 총괄하는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예술적 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작가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