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26일 방송된 '특집 : 더 리얼' 3부작 중 첫 번째 '육군 상사 염순덕 피살 사건' 편입니다. 특별히 프로파일러 표창원이 이야기꾼으로, 장도연이 이야기 친구로 나섰고, 그룹 위너 강승윤, 배우 옥자연 또한 리스너로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시신으로 돌아온 남편
때는 2001년 12월 11일 오후 5시 반. 경기도 가평의 한 군인 아파트야. 평소라면 온 가족이 모여 도란도란 저녁식사를 할 시간인데, 이날 선주 씨네 집은 조금 어수선했어. 오늘은, 1년에 몇 번 없는 남편의 회식이 있는 날이거든. 혼자 두 아들을 키우는 아내를 위해,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달려오던 남편이었어. 바로 이 분이 선주 씨의 남편이야.


'맹호부대의 양관식' 염순덕 상사야. 그는 맹호부대로 알려진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의 군수 보급관이었어. 이날은 상관의 환영회가 있는 자리라, 염 상사도 빠질 수 없었어. 그런데, 그날 밤. 늦어도 밤 11시까지는 돌아오겠다던 염 상사가 새벽 1시가 되도록 오지 않는 거야. 급하게 나가느라, 핸드폰도 집에 두고 갔어. 그렇게 새벽 4시쯤 됐을까. 누군가가 선주 씨네 현관문을 두들겨. 남편의 부대 사람들이었어.

"그날따라 집으로 부대 사람들이 새벽에 오니까. '무슨 일이 생겼나?'라는 생각이 직감으로 들었죠. '남편이 어디 다쳤어요?' 그랬더니 '그냥 가서 보시면 돼요'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어디 있냐고 제가 그랬던 거 같아요. 근데 갑자기 바깥으로 저희 가족들을 다 데리고 나갔는데. 봉고차 앞에 세우더니, 봉고차 뒷문을 이렇게 여시더라고요."
-박선주, 염순덕 상사 아내
부대 회식을 갔던 남편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거야. 사고 당일 맹호부대 헌병대는 염 상사의 사망을 이렇게 판단했어.
"군인 아파트 자가로 혼자 걸어가다 사고 장소에서 뺑소니 차량에 충격. 두개골 골절 등으로 현장 사망."
-당시 맹호부대 헌병대의 수사 기록 中
맹호부대 헌병대는 염 상사가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판단했어. 당시 현장 상황을 보여줄게.

두개골이 산산조각 났을 정도로 안면부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고 해. 얼굴과 머리를 제외한 다른 부위에선 상처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어. 교통사고로 이렇게 안면부만 다친다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날이 밝자, 상황이 180도 달라져. 전혀 예상치 못한 물건이 발견됐거든. 바로 이거야.

피 묻은 대추나무 몽둥이야. 사건 현장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다리 밑에서 발견된 거야. 조사 결과, 몽둥이에 묻은 혈흔은 염 상사의 DNA와 일치했어. 부검 결과에서도, 염 상사가 이 몽둥이로 안면부를 여러 차례 가격 당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어. 이후 맹호부대 헌병대는 이렇게 입장을 바꿨어.

"불량배 및 우범자가 금품 강취 목적으로 범행을 시도했다가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자 후환이 두려워 살인한 것으로 추정."
-당시 맹호부대 헌병대의 수사 기록 中
사건 당일 염 상사의 소지품 중 지갑이 사라졌어. 그래서 헌병대는 금품을 노린 강도의 우발적 살인이라 주장했어. 그런데 이번에도 걸리는 게 있어. 당시 염 상사의 바지 주머니에 현금 16만 3천원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거든. 정말 강도가 염 상사를 살해한 걸까?
여기까지가 2001년 맹호부대 헌병대의 수사 내용이야. 그런데 24년이 지난 2025년. 누군가가 염 상사의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주장을 제기해.

"범인은 군 내부에 있을 확률이 큽니다."
바로 프로파일러 표창원 소장이야. 그는 염 상사를 죽인 범인이 군 내부에 있을 거라 주장해. 지금부터는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시선으로, 염 상사의 사건 당일 행적을 되짚어 볼거야.
▲ 육군 상사 염순덕 피살 사건
이날 염 상사는 저녁 7시쯤 동료들과 한 고깃집에서 1차 회식을 했어. 회식이 끝나기 30분 전, 염 상사와 같은 여단의 수송관인 홍 준위가 회식 자리에 합류했어. 이후 밤 9시경 일행들은 모두 귀가하고, 염 상사와 홍 준위만 시내 중심가로 향했어. 거기서 기무부대 소속 이 중사와 마 중사를 만났고, 그들은 닉스앤녹스라는 술집으로 향했다고 해. 그리고 밤 11시쯤 염 상사는 닉스앤녹스를 나와 홀로 집으로 향했고, 약 40분 뒤 시신으로 발견됐어.

닉스앤녹스에서 마지막 술자리를 함께 했던 군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그 이유는 바로, 현장에서 발견된 범행도구 대추나무 몽둥이 때문이야. 범인은 이 크고 무거운 몽둥이로 염 상사의 얼굴과 머리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어. 이렇게 둔기로 안면부만 공격하는 건 오랫동안 쌓인 감정의 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이야. 게다가 범인은 흉기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어. 범인은 닉스앤녹스를 떠나 집으로 향하는 염 상사를 쫓다가, 길에서 대추나무 몽둥이를 구한 뒤, 범행장소에서 범행을 저지른 걸로 보여.
평소 염 상사에게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범인이, 이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정이 폭발해서, 염 상사를 쫓아가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커. 그럼, 범인의 감정이 폭발한 시점은, 염 상사의 사망 시각과 멀지 않을 것으로 추정돼. 다시 말해서, 범인은 염 상사가 사망하기 전, 그와 마지막 술자리를 한 군인들 중 평소 갈등관계가 있는 인물일 확률이 높아.
2001년 맹호부대 헌병대는 염 상사의 사망을 처음엔 교통사고, 그 다음엔 강도 살인이라 주장했지. 하지만 표창원 소장은 군인에 의한 타살이 유력하다고 생각해. 2001년 당시, 아내 선주 씨의 생각은 어땠을까?

"그때 당시 저희 집에 자주 왔다 갔다 하시던 형사 분이 있는데, '잘 지내시죠? 더 진전이 없어서 죄송해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셨고, 고맙게 생각했죠. 왔다 갔다 해주시니까. 헌병대는 왔다 갔다 안 해주는데 그래도. '그냥 지나다 들렀어요' 이렇게 하면서 들려주시고 그랬죠. (형사분이) 홍 준위를 많이 의심했어요. 홍 준위를 이제 범인인 것처럼 계속 얘기를 했었어요."
-박선주, 염순덕 상사 아내
2001년 당시 선주 씨는 뺑소니, 강도 살인 같은 헌병대의 수사 내용을 들어본 적도 없었대. 그래도 딱 한 사람, 선주 씨 가족을 찾아와 안부를 묻고 친절하게 수사 진행 상황을 말하던 이가 있었어. 그가 바로, 가평경찰서 이 형사였어. 군·경 합동 조사단에서 염 상사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야. 이 형사는 의심이 되는 사람으로 홍 준위를 지목했다고 해.

"항상 머릿속에 저희는 의심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홍 준위가) 최종적으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저희가 그렇다고 직접 수사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이고. 헌병대에 의존해 수사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좀 힘들었습니다."
-이 형사, 2001년 당시 염 상사 사건 담당
수송관 홍 준위. 그는 사건 당일 1차 회식부터 마지막 술자리까지 함께 한 인물이야. 근데 당시 1차 회식에 참석했던 한 군인은 이런 진술을 했다고 해.
"홍 준위요? 원래 회식 인원은 아니었는데 누가 연락을 해서 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홍 준위가 1차 회식에 늦게 왔다고 했지? 애초에 홍 준위는 회식 멤버가 아니었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1차 회식이 끝나기 전에 합류했다는 거야. 그리고 이날 닉스앤녹스를 나가는 염 상사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이도 홍 준위였어. 좀 수상하지? 하지만 이 모든 건 정황일 뿐이야. 홍 준위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헌병대는 현직 군인에 대한 수사는 직접 하겠다면서, 홍 준위를 조사했어. 그리고 얼마 후 헌병대는 '홍 준위의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등 특이점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어. 왜? 염 상사의 사망 추정 시각인 밤 11시 40분 쯤에, 홍 준위와 함께 있었다고 진술한 군인이 등장한 거야. 바로 기무부대 이 중사.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날 마지막 술자리 닉스앤녹스에서 기무부대 이 중사와 마 중사는 먼저 일어났다고 해. 그리고 민간인 이 씨와 당구장으로 이동하는데, 어느새 닉스앤녹스에서 나온 홍 준위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는 거야. 그리고 네 사람이 함께 자정까지 당구를 쳤다고 진술했어.
맹호부대 헌병대는 함께 당구를 쳤다는 네 명의 진술을 확인했어. 그래서 홍 준위를 포함해 마지막 술자리에 있었던 군인들 모두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거야.
이후에 사건 발생 4개월 만에, 헌병대는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공식적인 수사를 종결했어. 가평경찰서에서도 수사 인력이 다른 사건에 투입되며,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 됐어. 이렇게 염 상사 사건은 미제 사건이 된 거지.
당시 이 형사의 심정을 들어볼게.

"(염 상사가) 저 하고도 나이가 비슷하고. 그리고 또 애들도 저희 애들하고 거의 같았어요. 그냥 안타깝죠. 저희가 뭐 직접 단독으로 수사가 됐으면, 빨리 좀 해결하고. 같이 합동 수사하다 보니까. 서로 생각하는 관점도 달랐고."
-이 형사, 2001년 당시 염 상사 사건 담당
그런데, 사건 초기에 군이 아내 선주 씨에게 한 가지 약속한 게 있었어. 장례를 서둘러 주면, 염 상사가 순직 처리 될 수 있게 돕겠다는 거였어. 부대 회식 후 귀가 중 사망한 거니, 염 상사를 현충원에 모실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거야. 선주 씨는 범인이 잡힐 때까지 장례를 미루고 싶었지만, 그 말만 믿고 서둘러 장례를 치렀어. 그럼, 군은 그 약속을 지켰을까.
오히려 군은 이제 막 장례를 끝낸 유족에게, 위로와 진상규명 대신에 관사 퇴거를 통보했어. 그러면서, 마지막 술자리는 지휘관이 주도한 게 아니라며, 염 상사의 죽음을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으로 처리했어. 그리고 현충원에 안장해 준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지.

"군에서 계속 나가라고 그랬어요 관사에서. 애 아빠가 12월에 돌아가시고 1월 말경에는 조사가 거의 종결, 미제로 남는다고 못 잡는다고 해서. 군은 그냥 빨리 끝냈으면 하는 그런 존재였던 것, 저희가 귀찮았던 존재였던 거 같아요."
-박선주, 故염순덕 상사 아내

"그 말을 어디다가 해요? 자기 마누라한테 나쁘게 했고 자식한테 잘못했으면 '아이고 그놈아, 잘 갔다' 이러지만. 그런 걸 모르고 7년 동안 살았으니. 얼마나 애타겠어요. 너무 착해서 빨리 데려갔는가 보다, 그런 말까지 나왔어요."
-한복란, 故염순덕 상사 장모
선주 씨는 전단 아르바이트, 식장 설거지, 될 수 있는 대로 일을 시작했어. 하늘에 먼저 간 남편이 걱정할까봐, 눈물을 꾹 참고 씩씩하게.
▲ 다시 시작된 수사
그렇게 15년이 흐른 어느 날. 선주 씨한테 전화가 왔어. 남편 사건을 재조사한다는 연락이었어.

"일단 의문이 많았죠. 이건 수사 초기에 조금만, 경찰이나 군 헌병들이 조금만 더 세심하게 수사를 했더라면 이렇게 미제사건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인데. 그것에 대한 수사 결과가 없어서, 의문이 있었던 거죠."
-김보현, 당시 경기북부경찰청 미제수사팀
2016년 초, 경기북부경찰서에서 미제 사건을 재검토하던 중에, 염 상사의 사건 기록을 발견해. 근데 아무리 봐도 이건 미제 사건으로 끝날 사건이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얼마 후, 선주 씨에게 또 한 번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져.

"저도 군 법무관 출신이니까 군 사건들을 현직에 있을 때도 다뤄봤고 뭐 그랬는데. 도저히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하나에서 열까지 순리대로 흘러간 게 거의 없고. 아주 악성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었죠."
-김정민 변호사
군 법무관 출신의 김정민 변호사는 염 상사의 사건을 보고, '이건 대한민국 군 의문사 중 역대 최악의 사건이다' 라고 생각했어. 염 상사는 마땅히 순직 인정을 받아야 할 군인이라면서, 선주 씨에게 남편의 순직 재심사를 권유하고, 변론까지 자청했어.
미제 팀이 2001년 수사 자료를 다시 확인해 보니, 당시 발견된 결정적 단서가 있었다는 거야. 먼지 쌓인 캐비닛 안에 잠들어 있던, 그날의 결정적 단서야.

바로 담배꽁초 2개. 2001년 사건 당일 사망한 염 상사의 머리맡에서, 2점의 디스플러스 담배꽁초가 발견됐어. 현장 수거 당시 바닥에 재가 남은 걸로 봐서, 누군가 바로 직전까지 피우던 걸로 보여. 이건 바로, 누군가 범죄 현장에 있었다는 이야기야.

"남은 재가 담배꽁초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 일정 시간 타들어 갔어요. 자연 연소가 돼서 타들어 간 게 현장 사진에서 확인이 돼요. 그렇다는 건, 멀리서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던지거나, 멀리서 던지거나 그런 게 아니라. 바로 피해자 옆에 있었다는 반증이죠."
-김보현, 당시 경기북부경찰청 미제수사팀
2001년 가평경찰서는 곧바로 이 디스플러스 담배꽁초 2점을 국과수에 보냈어. 그리고 홍 준위를 비롯해서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군인들과 전부 대조해. 2001년에 나온 국과수 결과는 이렇게 나왔어.
"증1호. 검색 대상자 홍 준위. 담배꽁초의 DNA 프로필과 서로 일치함."
담배꽁초의 DNA와 홍 준위의 DNA가 일치한다는 거야. 이건 결국, 그날 밤 사건 현장에 홍 준위가 있었다는 이야기지.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DNA가 발견됐어. 수사의 판도를 뒤집을 아주 결정적 단서가 2001년도에 이미 발견됐던 거야. 그런데 2001년 맹호부대 헌병대는, 홍 준위에게 특이점이 없다고 결론 내렸어. 나름 이유가 있었어. 헌병대 자료 파일에, 당시 담배꽁초에 대한 기록이 있긴 해.
"변사자가 음주했던 룸에 들어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재떨이에서 불상 경찰이 담배꽁초를 수거한 것으로 판단했음."
-당시 맹호부대 헌병대 수사 기록 中
맹호부대 헌병대는, 경찰이 이 담배꽁초를 사건 현장이 아니라, 닉스앤녹스에서 주워온 게 아니냐 의심한 거야. 헌병대가 경찰의 증거를 의심했던 이유. 어쩌면 이게 그 답이 될지 몰라.

또 다른 담배꽁초 2점. 하나는 디스플러스, 다른 하나는 한라산이야. 기록에는 분명, 사건 현장에선 디스플러스 담배꽁초 두 점이 발견됐다고 했는데.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누군가가 또 다른 디스플러스 담배꽁초와 한라산 담배꽁초를, 국과수에 감정 의뢰한 거야. 이 일이 당시 수사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앞에서 수집한, 사건 현장에서 수집한 담배꽁초들의 수거 과정이라든지 이런 건 정확하게 남아 있어요. 근데 나중에 수거해서 감정 의뢰했다는 담배꽁초들은 어디 지점에서 어떻게 수거했는지에 대한 어떤 기록이 없이 감정 의뢰된 부분이 있어요. 결과적으로는 그게 혼란을 줬죠. 수사에 혼란을 줘서. 앞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 대한 어떤 증거력을 '좀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하죠."
-김보현, 당시 경기북부경찰청 미제수사팀
의도적으로 증거물의 증거 능력을 훼손시킨다? 일명 '물타기'야. 누군가 의도적으로 증거를 물타기 한 걸까? 그렇다면 이 한라산과 디스플러스 담배꽁초, 국과수에 추가로 감정을 의뢰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아내 선주 씨가 가장 의지했던, 가평경찰서 이 형사야. 그한테 왜 뒤늦게 두 담배꽁초를 감정 의뢰했냐고 물었어.
"저희가 갖고 있는 게 그거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증거 될 만한 게 없으니까. 확인 차원에서 그걸 보낸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 형사, 2001년 당시 염 상사 사건 담당
당시 이 사건을 전담했던 그는, 보충할 만한 증거가 없을까 찾아보다가, 사건 자료를 모아놓은 캐비닛에서 이 담배꽁초 2점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했어. 그런데 당시 가평경찰서에 근무했던 다른 형사들은, 처음 발견된 담배꽁초 DNA가 용의자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해. 왜냐면 국과수에 증거물을 의뢰하고 결과물을 통보받는 일 전부, 이 형사가 전담했기 때문에. 심지어 경찰의 범죄정보관리시스템에 염 상사의 사건 기록을 입력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
이 형사가 정말 이 사건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에게 물었어.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뭐. 일반 민간인 수사하고, (사건 당시엔) 합동 수사를 하다 보니까. 그게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뭐. 하여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형사, 2001년 당시 염 상사 사건 담당
당시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는 이 형사에게, '꼬꼬무' 제작진은 사진 한 장을 건넸어. 사진 속 인물이 누군지 알아보겠냐고 묻자, 이 형사는 "누구예요?"라며 알아보지 못했어. 그 사진 속 주인공은 염순덕 상사였어.

2001년도 수사 담당자였던 이 형사는,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DNA가 나왔다는 사실을 유족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선주 씨는 2016년 재수사가 시작된 이후에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어.

"진짜 이 형사가 조작을 했어요? 맞아요? 왜요? 왜 이 사람이? 경찰이? 어떻게 이럴 수 있죠? 그래 놓고 저한테. 자기하고 우리 신랑하고 1살 밖에 차이가 안 나서. 수사 그렇게 애착 있게 했다고 그러던데. 그럼 그것도 다 거짓말이잖아요. 군인들을 위해서 한 수사잖아요. 우리 아기 아빠를 위해서 한 수사가 아니잖아요 이거는…"
-박선주, 故 염순덕 상사 아내
고마운 사람이었기에 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선주 씨는 눈물을 쏟아냈어.

"제발 좀 부탁드려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제발 범인 좀 찾아줘요. 왜 그랬는지 좀 찾아줘요. 집에 오는 길이었단 말이에요. 이렇게 될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진짜 나쁜 사람들이야."
-박선주, 故 염순덕 상사 아내
▲ 수상한 이 중사
2016년 재수사 과정에서 이 형사의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된 김보현 형사는, 그의 2001년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어. 그러다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됐어. 사건 당일, 당구장에 함께 있었던 민간인 이 씨는 이런 말을 했어.

"처음에 뭐 그렇게 소개를 시켜 달라고 그래서, 내가 이제 연락처도 주고 해서 만나서 식사했어요. 이 형사하고 이 중사하고.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전화 연락을 해서 만나게 해 준 적은 있어요."
-민간인 이 씨
이 형사와 만남을 가졌다는 이 중사. 2001년 사건 당일, 홍 준위 일행과 당구장에 갔었다고 진술한 기무부대 군인이야. 염 상사의 마지막 행적인 닉스앤녹스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용의선상에 있던 인물이야. 그런데 용의자와 담당 형사가 사적인 자리에서 만났다? 이건 부적절한 만남이지. 두 사람을 연결해 준 민간인 이 씨에 따르면, 기무부대 이 중사가 먼저 이 형사의 연락처를 물었다고 해. 김보현 형사는 민간인 이 씨에게 이 중사에 대해 물었어.

"(당구장에서) 이 중사는 언제 나갔는지는 기억이 없고요. 비상계단 쪽으로 나가는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 중사 하고 저하고 둘이 당구를 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넷이서 당구를 친 걸로 해달라' 그 부탁이었죠. 그래 그러마. 뭐 별것도 아니고. 어저께도 같이 술 마시고 그런 사람끼리. 무슨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왔겠냐. 당연히 믿었죠."
-민간인 이 씨, 2017년 재수사 당시 진술 中
민간인 이 씨는, 사건 당일 기무부대 이 중사와 수송관 홍 준위는 중간에 당구장을 나갔고, 다음날 기무부대 마 중사가 자신에게 거짓 알리바이를 요청했다고 털어놓은 거야. 마 중사를 통해 민간인 이 씨에게 거짓 알리바이를 사주한 사람. 바로 기무부대 이 중사였어. 주도적으로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담당 형사에게 접근했던 이 중사. 그는 대체 왜 그런 걸까.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두 개의 디스플러스 담배꽁초. 그중 하나에선 홍 준위의 DNA가 발견됐다고 했지? 그럼 나머지 하나의 DNA는? 맞아. 기무부대 이 중사였어. 홍 준위뿐 아니라 이 중사도 염 상사가 살해되던 그 날 그 시각, 사건 현장에 있었던 거야.
2001년 수사 당시, 홍 준위와 이 중사의 DNA가 살해 현장에서 발견됐음에도, 왜 이 사건은 미제로 종결된 걸까. 혹시 이 중사가 속한 기무부대가 어떤 곳인지 알아? 현재 정식 명칭은 국군방첩사령부. 2001년도 당시엔 국군기무사령부로 불리던 곳이야. 군 관련 정보를 수집, 관리하고. 군사 보안과 간첩 활동을 감시하는 업무를 담당해. 기무부대는 이런 정보력을 바탕으로, 군대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어. 그래서일까. 사건 당시 맹호부대 헌병대에 따르면, 기무부대의 비협조로 이 중사의 수사는 거의 불가능했다고 해.

"그 당시의 분위기가 기무사에서 거의 100% 비협조적이었습니다 뭐든지. 이 중사는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자기가 왜 해야 하냐?'라고 주장을 하면서 기무사령부 통제를 받아 가지고…"
-당시 맹호부대 헌병대 수사관
맹호부대 헌병대가 2001년 사건 당일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처음 추정했었지? 사실 그날, 헌병대보다 먼저 뺑소니 교통사고를 주장한 곳이 있었어. 바로 이 중사가 속해있는 500기무부대야. 여기는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염 상사의 사망 원인을 뺑소니 교통사고로 추정했어. 그리고 맹호부대 헌병대는 마치 베껴 쓴 것처럼, 똑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어. 그러는 사이 기무부대 이 중사는 홍 준위와 거짓 알리바이로 입을 맞췄고, 그날 입은 옷까지 전부 세탁했어. 기무부대와 헌병대가 뺑소니를 주장하는 바람에, 초동 수사는 엉망이 됐어.

"이게 이렇게 뒤틀린 계기는, 원인은 결국 그 가해자들 중의 한 명이 기무대 기무요원이었단 거거든요. 살인 사건이 이렇게 뒤틀린다? 이게 도대체 상상할 수 있는 일이냐. 이건 수사를 한 게 아니라 덮은 거예요. 군 수사기관이, 어떻게 해서든 이게 좁게는 기무사령부, 넓게는 국방부, 군에 엄청난 데미지가 될 거 같으니까 덮은 거예요."
-김정민 변호사, 군 법무관 출신
여기까지가 2016년 재수사팀이 밝혀낸 2001년 그날의 진실이야. 김보현 형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영원히 밝혀내지 못했을지도 몰라. 이제 지난 15년 미해결로 남아있던 이 사건의 마침표를 찍는 일만 남았어.
▲ 다시 미제로 남은 사건
김보현 형사는 홍 준위와 이 중사를 피의자로 전환하고, 가장 확실한 증거인 피 묻은 대추나무 몽둥이를 확인하기로 해. 2001년엔 기술이 부족해서 몽둥이에 묻은 지문을 채취하는 게 어려웠어. 하지만 2016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잖아. 만약 살해 도구에서 피의자의 지문이나 DNA가 나온다면 그걸로 끝이야. 김보현 형사는 기대를 안고, 대추나무 몽둥이를 국과수에 재검정 하기로 했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어찌 됐건 피해자가 군인 신분이고 그렇다 보니. 범행 도구를 (맹호부대) 헌병에 인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헌병 수사관의 이야기대로 찾아가서, 찾아보기도 하고. 그분을 직접 모시고 가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발견을 못했죠. 그래서 이후 옮긴 창고 이런 데에 대해서 저희가 다 수색을 해봤는데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김보현, 당시 경기북부경찰청 미제수사팀
경찰이 맹호부대 헌병대로 넘긴 대추나무 몽둥이가 사라진 거야. 군이 대추나무 몽둥이를 분실한 게,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살해사건의 가장 중요한 단서인 범행도구를 소홀히 관리한 건 사실이야. 이로 인해, 범행도구에서 범인의 단서를 찾는 건 영원히 불가능해졌어.
이제 남은 건, 홍 준위와 이 중사. 두 피의자의 자백뿐이야. 증거가 없으니까. 먼저 김보현 형사는 군검찰에 이 중사에 대한 구속 수사를 요청했어. 이 중사, 과연 자백했을까?

2018년 2월. 유서와 함께 이 중사가 본인의 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어. 구속 수사가 임박해 오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그리고 그의 휴대전화에선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검색한 기록이 다수 발견됐다고 해.
재수사팀은 남은 한 사람, 홍 준위의 혐의라도 밝혀야 했어. 홍 준위는 그날, 술에 취해 아무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김보현 형사는 그의 말이 거짓이라 생각했어. 왜냐하면 2016년 재수사 당시 홍 준위의 휴대전화에서 이게 발견됐거든. 바로 사건 현장 사진.

염 상사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 현장을 포함해, 범인이 대추나무 몽둥이를 습득한 장소까지. 홍 준위는 이 장소들을 모두 촬영해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본인의 변호사에게 전송했어. 술에 취해 사건 당일 기억이 안 난다는 홍 준위가 말이야. 그의 말, 더 믿기 힘들지?
재수사팀은 지금까지 나온 증거들을 모아서 홍 준위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어. 어쩌면 그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그런데 검찰은 사건을 넘겨받은 지 3년이 지나서야, 홍 준위에 대해 '혐의 없음'이라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어. 홍 준위가 의심스러운 정황은 있으나, 그렇다고 염 상사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거야.
결국 재수사가 시작된 지 5년, 염 상사가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20년 만에, 이 사건은 또다시 미제사건이 되고 말았어. 단 한 번의 재판도 받아보지 못한 채.
▲ 끝나지 않은 싸움
누구보다 답답했을 아내 선주 씨. 이제, 아내 선주 씨에게 남은 희망은 딱 하나. 남편에게 군인으로서의 명예라도 되찾아주는 것이야. 비록 범인을 밝히진 못했지만, 재수사를 통해 찾아낸 증거들이라면, 남편의 죽음이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
국방부에 문의하고 자료를 넘기고 기다리고, 수년간 이 과정을 거듭한 끝에, 2023년 국방부는 염순덕 상사의 순직을 일단 인정했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어. 국가보훈부, 군인 재해 보상 심의회는 염 상사가 살해된 원인을, 직무와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해. 2025년 현재까지도.

"피의자 둘이 군인이었고 또 특히 한 명은 기무요원이었기 때문에 그날 그 자리에 술자리가 있었던 것이고. 갈등도 그래서 빚어진 것이다. 그리고 살해 동기도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게 상식인 거 같은데.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대라' 그러면 그 빼도 막도 못하는 증거는 누가 또 댔어야 되느냐. 군검찰이, 민간 검찰이 증거를 대야지. 그걸 피해자가 어떻게 댑니까. 수사권이 없는데."
-김정민 변호사, 군 법무관 출신
검찰도 확인 못한 범인의 범행 동기를, 유족이 직접 밝혀내야 하는 거야.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선.
이게 재수사가 시작되고 이 사건을 위해 노력해 온 분이 또 한 분이 있어. 바로 프로파일러 표창원 소장이야. 그가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건 재수사가 시작된 이후야. 그리고 2018년 국회의원 시절에 그는 선주 씨를 직접 만난 적도 있어. 그때 그는 선주 씨에게 한 가지 약속한 게 있어. '염 상사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끝까지 동행하겠다'는 약속이야.

그래서 표창원 소장은 염 상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어.

"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도 않은 채, 염순덕 상사의 명예가 실추된 상태로 비인간적인 요청들을 하면서 유가족들의 가슴이 찢어졌고. 군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표창원, 당시 국회의원, 2018년 국정감사 中

"염순덕 상사의 사망 자체가 순직 처리를 할 수 있는 가능성과 요소가 발견된다면, 적극적인 해석과 노력을 해 주십사 하는 그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정적이고 법적인 결정 이전에 염순덕 상사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지원이 혹시 없을까요?"
-표창원, 당시 국회의원, 2019년 국정감사 中
그는 지난 4개월간 '꼬꼬무' 제작진과 함께 수천 페이지의 염순덕 상사 사건 기록을 전부 재검토했어. 그리고, 지금까지 어느 수사기관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단서를 찾아냈어. 24년간 묻혀있던 진실의 조각을 하나씩 공개할게.
▲ 염 상사가 남긴 진실
먼저 '꼬꼬무' 제작진과 표창원 소장은,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찾기로 해. 바로 이거야.

플로피 디스크는 2000년대 초반까지 주로 사용했던 이동식 저장매체야. 남편의 가방에서 우연히 이 디스크를 발견한 선주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관했다고 해. 20년이 훌쩍 지난 이 플로피 디스크. 내용물이 온전히 남아 있었을까? '꼬꼬무' 제작진이 전국의 복구 업체를 수소문해서,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복원에 성공했어.
복원된 이 서류들 분석해 보니, 염 상사 사망 1년 전부터 맹호부대에서 유독 강조한 내용이 있었어.

사건 1년 전부터 보급관인 염 상사에게 '유류', 즉 기름의 재고와 사용처를 면밀히 확인하라는 지시가 계속 내려왔어. 그러면 염 상사가 보급받아온 이 유류에 대한 실제 사용을 집행하고 재고를 관리한 담당자, 수송관이 누구였을까? 바로 맹호부대 수송관, 홍 준위였어.
2001년 헌병대 기록에 따르면, 염 상사와 홍 준위가 업무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해. 자세한 내막을 확인하기 위해 제작진과 표창원 소장은 당시 맹호부대 포병여단에 근무했던 군인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어. 하지만 대부분 취재 자체를 거부했어. 그런데 딱 한 사람,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있어. 전직 군인 A씨야.

"제가 15년이 지난 다음에 들은 얘기는, 수송부에서 기름 담당을 했던 병사가 제대 일주일 남겨놓고 염 상사한테 이야기를 해줬다는 거예요. '수송관(홍 준위)이 기름을 팔아먹었다'… 염 상사가 그 병사한테 들었으면, 염 상사가 가서 점검했겠지. 그거를 염 상사가 점검을 하고 나서, 이런 일(피살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연관이 되잖아요. '기름을 당신이 팔아먹었구나' '그건 내가 보고하겠다' 그러다 보면 갈등의 요인이 되지 당연히. 그래서 더 좀 감정이 격해져서 그날 술 먹으면서 좀 말다툼이 있지 않았나. 그럼 제일 감정이 많았던 사람은 홍 준위겠지. 기름 팔아먹어서 그거 보고하면 알려지면, 군법에 회부감이잖아요. 유류는 소량이고 뭐고 필요 없어요. 소량이든 다량이든 그냥 군법에 회부하는 거예요."
-맹호부대 전직 군인 A씨
유류는 군용물 횡령 중에서도 중대한 범죄라, 최대 무기징역에도 처해질 수도 있대. 그래서 오랫동안 맹호부대에서 근무했던 A씨는 염 상사에게 유류 현황을 철저하게 감독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 홍 준위가 기름을 빼돌리고 있다는 병사의 제보, 그리고 얼마 후 염 상사가 피살당한 사건까지. 이 모든 게 서로 무관하지 않을 거라 주장한 거지.
물론, 이건 전직 군인 A씨의 추측일 뿐이야.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어. 기무부대 이 중사의 범행 동기야. 이 중사와 염 상사의 갈등에 대해선 전혀 밝혀진 게 없거든. 그 마지막 퍼즐은 이곳에 있을지도 몰라. 바로 닉스앤녹스.
염 상사와 홍 준위, 이 중사는 닉스앤녹스에 약 1시간 30분 동안 머물렀어. 그때 숨겨진 진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 2001년 사건 수사 당시, 목격자 오 씨가 진술한 내용이야.

"2001년 12월 11일. 염순덕과 그의 일행이 함께 술을 마신 사실이 있는데, 분위기가 어색할 정도로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중사가 염순덕에게 밖에 나가서 얘기 좀 하자고 하여, 홀에 둘이 앉아 언성을 높이며 인상을 쓰고 약 15분간 대화를 하였고. 그 후 염순덕이 맥주병을 손으로 잡고 병나발을 불었으며, 홀에서 얘기를 하고 오고는 감정이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2001년 수사 당시 닉스앤녹스 직원 오 씨 진술 조서 中
닉스앤녹스 직원 오 씨에 따르면, 그날 홍 준위와 이 중사는 꽤 가까워 보였다고 해. 반면 염 상사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대. 그러다 이 중사가 염 상사를 홀로 데리고 나가서 15분간 인상을 쓰면서 언쟁을 했다는 거야. 대체 그 15분 동안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24년 전, 닉스앤녹스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찾아봤어.

"연말쯤 됐을 거예요. 아마 그래서 그날 제가 새벽까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직원)한테 전화가 와서, (군인끼리) 싸움했다는, 다툼을 했다는 얘기도 몸싸움을 했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은데요. 몸싸움했던 얘기는 제가 분명히 지금도 기억하는 게 들은 것 같아요."
-닉스앤녹스 직원의 지인
그날 닉스앤녹스 홀에서 이 중사와 염 상사가 언쟁 수준이 아니라, 몸싸움을 했다는 거야. 제작진은 지금까지 취재 내용을 김보현 형사와 김정민 변호사에게도 들려줬어.

"몸싸움이 있었다? 몸싸움이 있었다는 거까지는 저희가 몰랐어요. 그렇다면 더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여지가 있는 거죠. 몸싸움을 했다면, 그 과정이 있을 텐데. 살해 동기까지도 그 사건과 연관성을 충분히 추리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보현, 당시 경기북부경찰청 미제수사팀

"몸싸움이란 건 굉장히 이례적이에요. 기무요원하고 몸싸움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갈 때까지 간 거지. 거의 뭐 군생활을 포기하는 거 아니고서는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어요. 그만큼 갈등이 심했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그게 당시에 기록 속에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없어요."
-김정민 변호사, 군 법무관 출신
당시 기무부대 정보 수집관이었던 이 중사는 맹호부대 간부들의 비리 정보를 수집하고 감시하는 일을 했어. 만약 수송관 홍 준위가 유류를 빼돌리는 비리를 저질렀다면, 기무부대 이 중사는 그 내용을 알고 있었을 거야.
"홍 준위가 기름을 빼돌리고 그것을 염 상사가 알게 됐고, (유류 횡령을) 기무부대가 비호한 거 아니겠느냐. 그래서 마지막 갈등이 결국은 그 문제 때문에 불거진 게 아니겠느냐."
-김정민 변호사, 군 법무관 출신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추정이야. 이 중사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는 스스로 영원한 침묵을 선택했어. 그럼 그날의 진실을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까. 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줄 유일한 사람 홍 준위를, 표창원 소장이 직접 만났어.
▲ 24년 만에 만난 유력 용의자
2025년 5월. 표창원 소장이 홍 준위와 만났어.

"근데 저는 조사받으면서 그 얘기를 들었어요. 제가 기름을 팔아먹었다고. 아니 기름을 도대체 2000년 시대에 어디에다 기름을 팔아먹는 건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제가 기름을 싣고 부대를 나간 건 사실인데 왜 싣고 나갔냐면. 교회에 기름을 넣어야 합니다. 군 교회도 넣고 군 법당도 넣고. 그리고 기름을 수령하러 가면 드럼으로 가져가요. 경유 같은 건 차로 가는데, 일반 휘발유나 이런 거는 드럼통에 받아온단 말이에요. 그러면 드럼통을 싣고 가서 드럼통을 거기다 주고 거기서 받아온단 말이에요. (유류 때문에 염 상사와 싸웠다?) 전혀 그게 기억이 안 나요."
-홍 준위, 당시 맹호부대 수송관
홍 준위가 계속 부인하는 와중에, 상당히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어. 홍 준위가 커다란 '드럼통'에 기름을 담아 부대 밖으로 싣고 나간 적이 있다는 건 인정했잖아. 여기서 '드럼통'이 중요해. 이건 실제 사건의 일부야. '군 법당', 군 교회'도 마찬가지야. 사실을 일부러 섞어서 얘기하는 거야.

"근데 거기서 몸싸움이 있었다는 건 전혀 기억이 안나고요. 거기서 기억나는 건… 이 중사하고 염 상사하고 몸싸움했다는 거예요? 진짜 저는 전혀 몰라요."
-홍 준위, 당시 맹호부대 수송관
표창원 소장이 홍 준위의 말이 안 믿긴다며, 사실을 얘기해 달라 몰아가자, 홍 준위는 이런 말을 꺼냈어.

"제가 이제 확신이 간 거는, 이 중사 그 양반이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 죽였구나' 그때 느낌이 왔어요. 아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자살했구나.. 제가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게 처음엔 기억 안 나다가. 제가 여관 골목 이런 데서 쭈그려 앉아 있는데, 이 중사가 손을 잡고 간 거 같은 그런 기분이… 어디로 (데려갔는지는) 모르겠어요. 범행 현장으로 가는 길이었는지, 전 그 기억은 모르겠어요. 근데 전 그 기억이 나요. 참 기무(부대)가 웃기는 게, (이 중사가) 뭐 사고 쳤네, 뭐 수습을 한다고 얘기를 했다고 듣긴 들은 것 같아요. 뭐 수습을 하네 안 하네 뭐 그런 얘기를 했다고…"
-홍 준위, 당시 맹호부대 수송관

여기서 홍 준위의 보디랭귀지에 또 주목할 필요가 있어. 자기가 꺼림칙하거나 혹은 거짓말할 때, 습관처럼 손이 머리로 올라가는 행동이 나와. 그리고 언어 사용하는 내용을 보면, 그동안은 전면 부인이었어. 그게 제일 안전하니까. 그런데 표창원 소장이랑 서서 이야기하면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행동을 묘사했어. '쭈그려 앉아있었다'라 말하며 진짜 쭈그려 앉는 것처럼. 그러한 사건의 진실의 단면들을 조금씩 꺼내고 있는 거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2001년의 초동수사. 이제라도 그 단추를 다시 맞추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한 사람이 있어. 바로 이 형사.

"저희는 유류 문제에 대해선 몰랐던 거죠… 지금은 이제 (염 상사 피살) 원인이 있으니까,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원인만 저희가 알고 있었으면 수사가 더 빨리 될 수가 있었죠.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착잡하죠."
-이 형사, 2001년 당시 염 상사 사건 담당
이 형사는 2001년 사건 당시에는, 염 상사와 홍 준위의 업무상 갈등을 전혀 몰랐다고 털어놨어. 그리고 이 모든 맥락을 알게 된 지금 상황에선, 염 상사의 사망 원인은 군인 간의 공무상 다툼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한다는 거야. 이 형사는 당시 수사 담당자로서, 미진했던 과거 수사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유가족에게 사과드린다는 말을 전해왔어.
취재가 한창이던 지난 4월 23일은 선주 씨와 염 상사의 서른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어. 그래서 '꼬꼬무' 제작진이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 AI 기술로 구현한 현재의 염 상사 모습이야.


"이렇게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멋있게 늙었네요 진짜로. 자꾸자꾸 보게 되네요. 나이가 들었으면 이렇게 됐을 거라 생각하니까. 이런 선물을 받을 거라고 전혀 생각을 못했네."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족이 떠난 그 시간에 멈춰서 살게 된다고 해. 2001년 12월 11일. 그 시간에 멈춘 선주 씨의 시간도, 이젠 남들과 함께 흘러가기를. 그래서 새로운 하루가 찾아오길. 하늘에 있는 남편 염순덕 상사도 바라고 있지 않을까.
'꼬꼬무' 취재를 통해 확인된 홍 준위와 이 형사의 진술, 플로피 디스크의 복원된 문서 내용은 맹호부대 염순덕 상사와 유가족의 처우에 관한 각종 재판에 정식 증거자료로 신청될 예정이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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