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하나의 사건에 각기 다른 세 가지 시점의 사진이 있다. 첫 번째는 1883년 진수식 때 찍힌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 군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의 사진. 훗날 한반도의 패권을 노린 러·일 전쟁에서 이 군함은 1905년 패색이 짙어지자 울릉도 앞바다에서 스스로 침몰하는 길을 택했다. 그 뒤 돈스코이호에 금화가 가득하다는 소문이 번져나갔다. 침몰 당시 탈출한 러시아 해군 병사가 금화를 지니고 있었다는 울릉도 주민의 목격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군이 필리핀에 보물을 묻어두었다는 비슷한 소문 등이 보태지며 이 상상력을 부추겼다.
그 와중에 두 번째 사진은 침몰 후 약 100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찍힌다. 2003년 한국해양연구소는 5년 동안의 해저 탐사 끝에 울릉도 앞바다에서 이 군함으로 추정되는 선박을 발견했다며 사진 자료를 공개한다. 물론 금화의 흔적은 사진 속에 없었다. 그러나 사진이 증거로 제시되는 순간 소문은 사실이 된다. 결국 2018년 이 군함을 인양해 수익을 나누겠다는 회사가 등장해 10만 명의 투자자를 유치한 코인 사기극이 펼쳐졌다. 세 번째 사진에 해당할 김신욱의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 연작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역사적 사실과 소문의 허상 사이에 존재하는 장소를 추적해온 김신욱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사기극이 아니라 시각 이미지에 붙들린 가짜 믿음에 관한 것이었다. 동시에 21세기에 보물섬이라는 유령이 어떻게 출몰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시각적 탐사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는 이 유령의 단서를 찾아 러·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흔적이 담긴 울릉도와 한반도 남단, 바다와 섬들을 탐색한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보물이 있다면 분명 외지고 깊숙한 곳에 있을 터. 그러나 그 소문의 진상들을 따라 외딴 섬 중에서도 육안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후미진 곳에서 작가가 마주하는 것은 태평양 전쟁을 위해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군사시설이거나 광복 후 자행된 제주 4·3사건의 흔적들이었다. 이를테면 태평양 전쟁 당시 수세에 물린 일본군이 최후의 저항지로 삼고자 제주도의 가마오름 속에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요새 같은 곳들이다. 유령이 실재한다고 믿게 만든 이미지들을 단서 삼아, 김신욱은 허상을 걷어내고 이 장소들의 실체를 다시 사진으로 드러낸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