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긴축재정을 관철하기 위해 다음 달 8일 의회를 소집해 정부 신임을 묻기로 했다. 야권이 불신임을 벼르는 와중에 정부 붕괴 위험을 무릅쓰고 ‘승부수’를 던진 것은 그만큼 심각한 프랑스의 재정 상황 때문이다. 바이루 총리는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20년간 매 시간 부채가 1200만 유로(약 194억 원)씩 증가했다”며 “프랑스는 과도한 부채로 즉각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고 토로했다. 앞서 바이루 총리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재정적자에 대응하기 위해 440억 유로의 지출 삭감, 공휴일 축소 등을 포함한 내년 예산안 지침을 발표했으나 야당과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결국 긴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정권의 명운을 건 ‘신임 투표’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다.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나랏빚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의 재정정책은 정반대다. 이재명 정부는 다음 달 초 국회에 제출할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해 역대급 ‘확장재정’ 기조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 지출을 8~9%대 늘려 역대 최대 규모인 730조 원 안팎의 ‘슈퍼 예산’을 편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390조 원 내외로 예상되는 내년도 국세 수입보다 터무니없이 많은 지출을 감당하려면 적자 국채 발행도 불가피하다. 올해 국가채무가 사상 첫 1300조 원을 돌파할 정도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이자 부담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26일 열린 당정 예산안 협의회에서는 “정부가 성장, 민생 회복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재정 역할론’만 들끓었다. 심지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다음 주 열리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윤석열 정부가 도입한 공공기관 재정 건전화 계획을 폐기하고 공공 부문도 적극재정으로 방향을 전환할 방침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와 민생을 되살리려면 어느 정도의 확장재정은 불가피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혔듯이 국가 재정이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재정에만 의존해서는 경제성장 능력을 키우고 지속 가능한 재정을 확립하는 경제 선순환을 이룰 수 없다.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릴 과감한 구조 개혁과 규제 혁파는 뒷전에 두고 재정 중독에 빠진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빚잔치’ 청구서는 결국 국민들에게 날아올 것이다.